- 심리학은 어린 시절의 경험이 미래의 삶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심지어 오늘날에는 감정적 동요상태가 뇌 속의 유전자 발현을 변화시킨다는 사실까지 밝혀졌다. 또 신경 생리학자이자 기억력연구가인 한스 마르코비치는 어린 시절의 외상성 경험이 어린이의 뇌 속의 생화학적작용을 왜곡시킨다는 사실을 발견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대체 훗날의 삶은 어떻게 된다는 것인가?
- 내면대화요법이 목표로 하는 것은 여러 종류의 내면의 목소리를 깨닫게 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의식된 자아 곧, 내면의 교향악단 지휘자를 강화시키는 것이다. 그것이 어떤 종류이든 대개는 하나의 중심목소리가 우리 인생을 지휘해나가는 것이 대부분이다. 우리는 이 중심목소리를 통해서 세상을 바라보고 무엇이 옳고 나쁜지를 생각한다. 그런데 이 중심목소리에 의해 전적으로 지배받는다면 우리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게 된다. 우리가 선택할 기회를 가질 수 있는 것은 존재의 다양한 면을 가치 있게 평가하는 의식된 자아를 통해서 뿐이다. 그렇다면 의식된 자아와 다른 목소리를 어떻게 구분하는가? 자신의 현재 상태가 의식된 자아인지, 아니면 다른 종류의 목소리인지 어떻게 인식할 수 있을까?
--- 1. 어린 시절 - 기쁨과 상처의 시간들 중에서
- 이와 관련된 예로, 53세의 부인이 지닌 내면의 아이와 대화를 나누었던 내면대화요법을 소개해 보겠다. 첫 번째 치유 시간에 부인은 내게 혼자 버려질 것 같아 너무 두렵다고 말했다. 당시 부인은 두려움이 너무 커서 심각한 위장장애가 생겼고, 음식을 거의 먹지 못하는 상태였다. 12살 어린 남자친구는 부인과의 성생활을 거부하고 그저 친구관계를 원했다. 그녀의 공포가 말 그대로 그녀의 속을 후비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부인한테 직접 “나는 두려워요!”라는 말과 “내 속의 아이가 또 두렵다고 해요!”라는 말을 해보고 어떤 차이가 느껴지는지 시험해보라고 권했다. 부인은 첫 번째 표현에서는 자기 자신 전체가 두려워하는 것 같았고, 두 번째 표현에서는 자신의 일부만 두려워하는 것 같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두 가지 경험을 하고보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래서 나는 부인에게 두려워하는 마음속의 아이와 대화를 나눠보라고 청했다. 부인은 곧장 자신의 내면의 아이를 위해 자리를 찾아주었다. 내면의 아이는 치료실 구석으로 가, 바닥에 앉아 겁먹은 눈빛으로 담요 사이를 내다보았다.
치료사:(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후) 나하고 얘기 좀 할래?
아 이:(겁먹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치료사: 굉장히 슬퍼 보이는구나.
아 이: 정말 그래요.
치료사: 무엇 때문에 그렇게 슬프니?
아 이: 엄마가 아무 말 없이 떠나가버렸어요. 식탁 위에 메모 한 장 써놓고 사라졌다고요. 정말 이해할 수가 없어요. 난 고작 다섯 살이고 엄마가 필요하단 말이에요.
치료사: 정말 안 됐구나!
아 이: 미치겠어요. 아빠도 나랑 같이 살기 싫대요. 갈 데는 할머니밖에 없는데, 우리 할머니는 정말 나쁜 사람이거든요.
치료사: 나쁜 사람이라고?
아 이: 말을 안 들으면 막 때려요. 국자로 정말 아프게 때려요.
치료사:(아이의 마음을 헤아리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아 이: 3년 뒤에 엄마가 새 아빠와 함께 나를 데리러 왔어요. 아빠랑 엄마가 막 큰 소리로 싸웠어요. 난 엄마를 따라가고 싶지 않았는데, 아빠가 죽고 말았어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엄마한테 갔어요. 엄마랑 새 아빠는 날마다 싸웠어요. 새 아빠는 술도 아주 많이 마셨고, 술 취했을 때마다 나를 건드렸어요. 특히 엄마가 일 나가고 없을 때 말이에요. 한번은 내가 도망쳐서 집안을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불을 다 켜 두었어요. 혹시라도 사람들이 밖에서 볼 수 있지 않을까 해서요. 하지만 아무도 날 보지 못했어요. 물론 엄마한테도 그 이야기를 꺼낼 수는 없었어요. 분명 나에게 욕지거리나 했을 테니까요. 정말 끔찍했어요.(울기 시작한다.)
치료사:(시간이 조금 흐른 뒤) 요즘은 언제 네 모습을 보여주니? 어떨 때 네 모습이 보이지?
아 이:(부인이) 혼자 있을 때면 항상 나타나요. 혼자 있으면 정말 무서워요.
치료사: 부인은 너하고 어떻게 지내니?
아 이: 날 항상 떠밀어내고, 내가 사라졌으면 해요.
치료사: 그럴 때 네 기분은 어떻지?
아 이: 그러면 난 더 무서워져요. 정말 끔찍하도록 무서워요.(흐느낀다.)
치료사:(시간이 조금 흐른 뒤) 그러면 부인이 네게 어떻게 해주면 좋겠니?
아 이: 내가 무서워할 때 안아주고 위로해주면 좋겠어요. 하지만 부인은 그렇게 하지 않아요.
치료사: 지금 부인이 우리 얘기를 듣고 있어. 너를 밀어내면 네가 더 무서워한다는 걸 알고 이제 생각을 많이 할 거야.
아 이: 그러면 정말 좋겠어요. 부인에게 바라는 게 또 있어요. 일을 너무 많이 하지 말고 나랑 동물원에도 가고, 같이 자면서 동화책도 읽어주면 좋겠어요. 슬프지만 않으면 나도 아주 재미있는 아이가 될 수 있어요. 부인도 나하고 재미있게 놀 수 있을 거예요.
치료사: 네 말을 믿으마.
아 이: 난 학교에서 늘 다른 애들을 잘 웃겼어요. 우스운 얘기도 잘 하거든요. 하지만 부인은 항상 너무 진지하기만 해요. 그리고 늘 재미없는 책만 읽고요. 해리 포터도 읽고, 재미있는 텔레비전 영화도 봤으면 좋겠어요.
치료사: 부인이 분명 네가 뭘 원하는지 들었을 거야. 부인이 어떤 말을 하는지 한번 들어볼까?
아 이: 나도 정말 궁금해요.
치료사: 날 믿고 같이 얘기해줘서 정말 고맙구나.
나는 부인에게 아이와 대화를 나눈 자리로부터 나와 원래자리로 돌아오라고 권했다. 부인은 내면의 아이가 얼마나 많은 옛 상처를 안고 있는지 알게 되자 큰 충격을 받았다. 난 부인에게 내면의 아이를 다정하게 대해줄 수 있는, 그래서 아이가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게 해줄 수 있는 훈련법을 하나 알려주었다.
--- 2. 내면의 아이 중에서
- 페트라는 아침에 뱃속이 거북한 느낌으로 잠에서 깨어났다. 그녀는 오늘 유치원 교사라는 새로운 직업을 위해 면접을 봐야 한다. 10년 동안이나 일을 하지 않고 자녀들을 돌보며 살림만 했던 그녀가 이 일자리를 얻게 될 것인지, 나이가 너무 많은 것은 아닌지, 우울한 기분으로 그녀는 거울을 보았다. 세상에, 이 눈가의 주름들이라니! 와인을 두 잔 더 마실게 아니라 일찍 잠자리에 들어야 했는데! 그녀는 옷장 앞에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온통 구닥다리들뿐이야. 미리 새 옷을 장만했어야 했는데! 아이들이 칭얼댔다. 페트라는 시간에 쫓겨 평소보다 목소리가 커졌다. 막내아들이 울기 시작했다. 그녀는 ‘난 정말 얼마나 매정한 엄마인가’ 생각하며 집을 나섰다.
유치원의 관리부와 새로운 동료들은 그녀에게 매료되었다. 어쩌면 일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승산이 높았다. 그래도 페트라는 그냥 운이 좋았을 뿐이며 때맞춰 날짜를 잘 잡은 것이라고 믿었다. 집에 가기 전 그녀는 커피를 마시며 생크림케이크 한 조각을 먹었다. 이번에도 페트라는 이런 시간을 즐기기보다는 자신을 끌어내리는데 열중했다. 과체중에도 불구하고 또 먹을 걸 자제하지 못했다고 자신을 비난하며 자책했다. 아이들은 저녁밥을 맛없다 하고, 남편 또한 내키지 않는 듯 피자 언저리를 베어 물었다. 페트라는 제대로 요리를 하지 않은 자신의 잘못이라고 느꼈다. ‘친구 마리아처럼 요리를 잘 해야 하는데’ 라고 생각하면서.
여러분에게는 페트라의 일상이 익숙하게 다가오는가? 스스로를 의심하면서 자신을 자주 비난하는가?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며 자신을 불리한 입장으로 내몰지는 않는가? 만약 그렇다면 여러분의 ‘내면의 비판가’의 감옥에 오신 것을 환영한다! 내면의 비판가란 누구인가? 그는 우리가 하는 일도, 하지 않는 일도 모두 비판하고 우리에 관해 경멸하듯 말하며, 우리를 정죄하고 우리의 모든 것을 추하고 부족한 것으로 나타내는 우리 안에 있는 목소리이다. 그는 우리가 현재의 순간을 온전히 경험할 수 없도록 방해한다. 비판가는 우리가 잘못을 저지르기만을, 그래서 그 잘못을 우리에게 무자비하게 들이댈 수 있기만을 고대하며 기다린다. 그로 인해 우리의 발전은 완전히 멈추게 된다. 그는 모든 성장과 창의성을 방해하며, 인간관계 속에서 생기는 수많은 고통과 수치심의 원인이기도 하다. 그가 좋아하는 일 중 하나는 여러분을 다른 사람과 비교하는 것이며, 당연히 이 비교에서 여러분은 다른 사람보다 나쁜 점수를 받는다. 만약 여러분이 비교라는 안경을 통해 삶을 바라본다면, 그것은 자신으로부터 고유한 존재성을 박탈시키는 것이다. 마치 백설 공주의 계모처럼 거울 앞에 서서 “거울아, 거울아, 세상에서 누가 제일 예쁘지?”라고 묻는다면, 거울 혹은 내면의 비판가는 틀림없이 훨씬 더 예쁜 누군가가 있다고 대답할 것이다. 이 비판가는 여러분 마음속의 그 어떤 소리보다도 여러분에게 많은 해를 끼칠 것이다.
--- 3. 내면의 비판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