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 왔어요?”그녀는 내게 물었고 나 역시 되물었다. 필리핀에서 온 그녀가 홍콩에서 생활한 지가 27년, 그러니까 가사도우미 27년 경력의 베테랑이었다.“그럼, 그동안 계속 한 집에만 계셨던 거예요?”수줍은 듯 웃는 그녀는 그게 조금 후회되기도 한다며 말을 이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비행기를 타고, 홍콩이라는 낯선 도시에서 찾은 첫 번째‘직장’에서 무려 27년을 지냈다고 하니 너무 놀랍게 느껴졌다. --- p.17
“캭…… 이건 아니에요……!!” 머리를 쥐어뜯으며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고 싶었다. 내가 자라를 먹었단 말인가? 배 안에서 자라 한 마리가 헤엄치고 다니는 것 같은 이 미끌미끌한 느낌. 숨을 못 쉬겠다고 얼굴을 찌푸렸더니 퐁 아줌마는 별일 아니라는 듯이 내 등을 두드리신다.
“괜찮아, 괜찮아, 다 몸에 좋은 거야.”‘꽈이랭꼬’라고 불리는 이 약은 자라와 각종 한약재를 몇 시간 동안 푹 고아서 젤리처럼 만든 것인데 가려움증이나 알레르기 등으로 피부에 문제가 생겼을 때 홍콩 사람들이 즐겨 먹는 일종의 건강보조식품이었다. --- p.23
“하지만 참기 힘든 건, 너무 비싼 렌트비야!!”한 달에 홍콩달러 1만 3천불에 빌린 집에서 살고 있다는 조시는 집세를 아끼기 위해 룸메이트를 구했다고 한다. 무료 신문에 광고를 내서 만나게 된 룸메이트는 같은 호주 출신의 여성이라고 말하는 그에게 이렇게 묻고 싶었지만 참았다. “너……혹시 게이?”직접적으로 묻는다면, 결례가 될 것 같았고, 또 게이가 아니라 하더라도 이들 문화에서는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짧은 순간에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 p.30
“그게 대체 뭐지?”미셀은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우선 그녀는 영화 〈화양연화〉를 보지 않았다고 했다. 으악, 홍콩 여자 미셀이 홍콩 감독 왕가위가 만들고 홍콩 배우 장만옥과 양조위가 열연해서 칸느 국제영화제에서 양조위에게 남우주연상을 안겨줘 세계적인 이목을 집중시켰던 그 유명한 홍콩 영화를 못 봤다니, 도대체 이게 말이 된단 말인가? “내 취향이 아니야.” 아주 무심히 한마디 툭 던진 후 그녀는 성큼성큼 걸어 나간다. --- p.33
“그런데……이런 거 물어봐도 돼?”지참금, 도대체 얼마나 하는 거야? 얼마 전 신문에, 이 문제로 예비 사위가 장인 장모를 찾아가 이야기하다가 언성이 높아져, 급기야 주먹다툼이 벌어졌다는 웃지 못할 사건이 보도된 적이 있다. 이제 겨우 스무 살이 된 신랑에게는 예비 장인이‘요구하는 금액’만큼의 지참금이 없었던 것이다.“어…… 마이크도 우리 집에서 엄마랑 그 문제로 얘기했는데, 우리 엄마가 바겐해 주셨어!!”‘바겐’이라는 단어에 큭큭 웃음이 나왔다. --- p.40
그때부터 캐서린은 시간이 날 때마다 한국 여행을 가게 되었고, 이병헌에 관한 잡지와 기념품을 수집하고, 그의 영화들을 꼼꼼히 챙겨보았다. 그리고 급기야‘홍콩 이병헌 팬클럽’의 회장으로 우뚝, 서게 된 것이다. 게다가 몇 년 전, 홍콩에서 열렸던 구찌 프로모션 행사장에서 초청인사 이병헌과 팬클럽의 대표로서‘상봉’하는 기쁨까지 누렸던 것. 아, 이 얼마나 가슴 두근거리는 스토리인지.“그 사람의 연기와 열정을 좋아하니까, 그의 국가와 문화를 아끼고 존중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야. 한국과 홍콩 간의 문화 교류를 추진하고 아티스트들의 공연 일을 돕는 것도 내가 좋아하는 배우에 대한 애정과 고마움을 표현하는 길이라고 생각해.” --- p.59
“여기는 새벽 6시 전에 문을 열어요.”공장 노동자나 청소부 같은 인부들은 그때부터 아침을 먹으러 오니까. 그때부터 밤 11시에 문 닫을 때까지 보통 5백 잔에서 많게는 1천 잔 정도를 만든다. 그는 1979년에 중국 대륙에서 일자리를 찾아 홍콩으로 넘어왔고, 그 후로 30년째 밀크티를 만들고 있다. 영화 〈첨밀밀〉에서 중국 청년 소군이 열 시간이 넘게 대륙 기차를 탔던 것처럼 제왕도 그렇게 처음 기차를 탔을 것이다. --- p.144
‘콩뉘(Kong Nui)’라는 속어로 불리는 콩녀는 홍콩에서 태어나고 자라서‘돈이면 만사 오케이’라는 삶의 철학으로 살아가는 젊은 여성들을 일컫는 속된 말이다. 물론 도시와 국가, 시대를 막론하고, 이런 식의 비난과 풍자는 어디에든 존재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굳이 된장녀, 된장남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홍콩에는‘잘 나신 바깥어른의 경제력으로 고급 차를 타고 다니며, 오전에는 딤섬과 차를 즐기고 오후에는 쇼핑몰을 순회한 후, 저녁에는 멤버십 클럽에서 우아하게 디너를 즐기는 사모님’을 뜻하는 타이타이(Tai Tai)라는 단어가 아주 오래전부터 있어왔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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