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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기 위해 사는 법

죽기 위해 사는 법

: 삶과 죽음의 은밀한 연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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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09년 12월 20일
쪽수, 무게, 크기 236쪽 | 364g | 153*224*20mm
ISBN13 9788993208597
ISBN10 899320859X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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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 나빠져서 병원 같은 데 있다 보면 마음이 흔들리게 마련이다. 창문을 활짝 열면 힐튼 호텔의 불빛이 보인다. 그 앞으로 차들이 줄지어 지나가고 사람들이 걷고 있다. 거길 걷고 싶은 생각이 든다. 그래서 속으로 중얼거린다. “저런 데를 걷는 건 아무 의미도 없다.” 그런데 그런 것마저 행복하게 느껴질 정도로 인간이 이상하게 변해버린다. 고독한 병실에서 바깥도 내다보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정신이 점점 막다른 곳에 몰려서 사람이 얼마나 외로워지는지를 실감했다. 그건 바람직하지 않다 싶었다. 농담이 아니다. 하지만 외로운 건 사실이었다. --- p.35

이번에 입원했을 때 의사들이 사인해 달라며 갖가지 서류들을 들고 왔다. “이게 뭔데?” 하고 물으니 “수술 동의서입니다”라고 한다. “안면성형이라. 이건 됐어, 안 해도 돼.” 처음에는 그렇게 대답했지만 계속 “얼굴은 고치는 게 좋아요. 괜찮습니다. 잘될테니까요”라고 해서 사인했다.
그러자 다음에는 다른 서류를 또 내민다. “검사를 위해 뇌 가까이에 구멍을 내려고 합니다. 사인해주세요.” 라는 것이다. “웃기지마. 누가 그러라고 했냐” 하고 화를 내자 의사는 이상하다는 얼굴을 했다. “사인하세요. 사인하세요.”하며 끈질기게 졸랐다. 하지만 사인하지 않았다. 이미 실컷 몸을 괴롭혔지만 무엇 하나라도 나 자신의 의견을 관철하지 않으면 퇴원했을 때 나라는 존재가 대체 뭔지 알 수 없어질 것 같아서였다.
의사와 대결하려는 건 아니지만 어느 부분에서 자신을 주장하지 않으면 그 누구도 아닌 단순히 숨만 붙어 있는 인간이 되고 만다. 그럴 바에야 죽는 게 나을 수도 있다.의사와 자신, 그리고 생사의 문제. 이 세 가지로 이루어진 삼각관계에서 균형을 잘 잡아 대응하지 않으면 무엇을 위해 사는지 잊어버릴 것이다. --- p.74

인생은 즐기는 거라고 하지만 내게 인생을 즐기는 법이란 사고 전처럼 사는 것이다. 쉴 틈 없이 바쁘게 사는 게 즐거울 수도 있지 않은가. 실컷 휴식을 취하고 골프를 치고, 그런 데서 즐거움을 느끼는 사람과는 애초부터 살아가는 목적이 다른 인생이다.
어떻게 사는가의 차이란 새와 벌레로 말하자면 날고 있을 때 날개를 퍼덕이는 횟수의 차이와도 같다. 갈매기처럼 거의 날갯짓을 하지 않고 느긋하게 기류를 타며 나는 게 있는가하면, 참새처럼 1초에 몇 십 번이나 날개를 움직이는 것도 있다.
나 같은 일벌이 1초에 한 번 밖에 날갯짓을 하지 않는다면 추락하고 만다. (중략)
그런데 사고를 당했다고 쉬엄쉬엄 일하면서 느긋하게 살아간다면 예전의 바보 같던 자신에게 면목이 없다. ‘바보는 죽지 않으면 낫지 않는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가 아니면 진짜 나로 돌아갔다고 할 수 없다. --- p.68

별 생각 없이 텔레비전을 보는데, 화면 가득히 기타노 다케시의 일그러진 얼굴이 나왔다. 순간 숨을 멈췄다. 사고 뒤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그가 드디어 기자회견장에 나타난 것이다. 다소 긴장했는지 한쪽 눈이 침착하지 못하게 움직였다. 혹시 뇌를 다친 걸까.
나는 완탕면을 먹다가 멈추고 가만히 화면을 바라보았다. 말은 제대로 하나? 조금 더듬지는 않나? 갑자기 헛소리를 하지는 않나? 귀를 쫑긋 세우고 기다렸다. 처음에는 긴장한 기색이었지만 일단 말을 꺼내자 완전히, 정말로, 그야말로 평소의 기타노 다케시 그 자체였다. 얼굴이 일그러진 것만 빼면 전혀 변한 데가 없고 바보가 된 것 같지도 않았다. 게다가 무심코 웃음을 자아내는 개그까지 덧불이곤 했다.
아마 그는 입원해 있는 동안 어떤 모습으로 사람들 앞에 나설지 생각했던 것이리라. 일그러진 얼굴을 사람들 앞에 내보이는 것은 어떤 의미로 자포자기한 예능인으로서의 숙원이었을까. 일그러진 얼굴로도 예전과 마찬가지로 사람들을 웃길 수 있을까. 오히려 텔레비전 일을 전부 내던지려는 기색까지 느껴졌다. 좌우를 둘러보면서 기자회견을 계속하는 그의 모습에는 어떻게 되든 알 바 아니라는 새로운 각오와 어딘가 냉철한 결의 같은 것이 맴돌았다. 화면을 집어삼킬 듯이 보고 있는 사이 나는 의도치 않게 감동해버렸다. “대단하네, 다케시 짱.” 하고 나는 완탕면을 앞에 두고 중얼거렸다. 이 책에는 비트 다케시가 사고로 죽을 뻔 했을 때부터, 병원에서, 나아가 오스트리아에서 재활치료 여행을 하던 중에 떠올린 여러 가지 생각들이 쓰여 있다. 당연히 독설이 만재하는 여타의 다케시 책과는 조금 다른 내용들이다. 그런 만큼 그가 죽음에 직면했다는 것을 비교적 솔직한 진심으로 이야기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죽을 뻔했던 사람은 그 뒤의 인생을 과연 어떻게 생각할까? 더군다나 사고 후로 아직 그리 많은 시간이 지나지 않는 기타노 다케시의 마음 속 생각들은, 같은 연배의 나로서도 무척 관심이 있었다. 참으로 쓸데없는 ?견이지만, 앞으로 그가 어떻게 될 것인지 소박한 의문을 가졌다. -나가쿠라 만지
--- pp.230-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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