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신앙에서 가장 으뜸가는 신비는, 하나님이 우리에게로 다가오셔서 우리의 이름을 불러주신다는 사실이다. 이것이 우리 하나님의 본성이시다. 성경 이야기의 첫 출발도 아담과 이브와 함께 에덴 동산을 거니시던 하나님으로 시작된다. 심지어는 그들과 분리된 후에도 하나님은 “네가 어디 있느냐?”는 통렬한 질문을 던지시며 그들을 찾으신다. 이 질문은 메아리처럼 구약 전체를 관통해서 흐르고, 신약에서도 계속 반복해서 울려온다. 물론 하나님은 우리가 어디 있는지 아신다. 우리가 길을 잃었을 때나 다른 짓을 하고 있을 때에도. 그러므로 이 질문은 우리가 정말 어디 있는지 그 위치를 알고자 묻는 그런 질문이 아니다. 그보다는 우리 스스로 자신이 어디 있는지, 그 자리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의식하고 있는지를 깨닫기를 간절히 바라시는 하나님의 갈망에서 나온 것 같다. 이 질문은 우리가 어디 있든지 하나님의 임재를 의식하고 하나님의 사랑 안에 살아야 한다는 하나님의 초청이다.
3. 자신을 들여다보기_ 내 인생에 관심 갖기
진정한 두려움 속으로 들어갈 때, 우리는 진정한 갈망 끝에서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상대방이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자신을 드러낼 때, 우리는 그와 함께 거룩한 땅을 밟고 있음을 잘 알고 있다. 우리의 가장 깊은 두려움과 가장 깊은 열망이 교차하는 바로 그 자리에서 하나님은 자신의 임재, 은혜의 소망을 선물로 들고 우리를 기다리신다.
두려움을 직시할 수 있는 용기는 용감함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사랑받고 있음을 알 때 나온다. 천사가 나타나 겁에 질린 목자들에게 “두려워 말라”고 말할 수 있었던 이유는,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가 오신다는 좋은 소식은 곧 두려움의 한가운데에 사랑이 임한다는 의미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베드로가 물 위를 걸어 예수님께로 가다가 물 속에 빠져들면서 “주여, 나를 구하소서!”라고 소리쳤을 때, 예수님은 바로 손을 내밀어 그를 건져 주셨다. 두려움에 빠진 베드로를 사랑이 잡아주었고, 그는 안전했다. 가장 큰 두려움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를 만날 수 있도록 마음을 열 때, 우리는 두려움의 사람에서 믿음의 사람으로 나아가게 된다.
5. 풍경에 이름붙이기_수면 아래를 들여다보기
초창기 그리스도인들은 ‘십자가의 길’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를 따랐다. 단지 예수님께 대한 사랑과 헌신으로서가 아니라, 그들이 겪는 슬픔에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서였다. 원래 십자가의 길은 예루살렘을 향해 떠나는 순례 행로였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갈보리 언덕을 올라가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무덤에 장사된 몇 시간의 여정을 되짚어보는 길이었다. 우리가 고난 중에도 임마누엘, 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심을 경험하게 해주는 기도의 여정이다. 하지만 십자가의 길을 따라 걷고 싶어도 가난해서 또는 몸이 약해서 예루살렘까지 갈 수 없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래서 13세기 경에 각 교회는 십자가의 길에 나오는 장면들을 그림이나 조각으로 표현해 교회 벽 여러 군데에 걸게 되었다. 그림을 따라 가다가 멈추는 지점은 '기도처'라고 불렀다. 시간이 흐르면서 십자가의 길에는 열 네 개의 기도처가 생겼다. 이 중에서 성경에 나오는 장면이 몇 개 있고, 예수님의 고난에 대한 인간적인 이해를 표현한 게 몇 가지 있다. 기도처는 단순히 그 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표현하는 게 아니라, 고난을 통과한 예수님의 사랑의 깊이를 보여주고 우리도 기도로써 그에 응답하는 장소였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고난이나 우리의 인간적 고통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통과하는 순례의 여정이다.
11. 십자가 든든히 붙잡고_고난을 통해 나의 갈 길 발견하기
우리가 학대의 고통을 체험하건 중독에 빠져 힘들어하건, 중병에 걸려 고생하건 나이가 들어 상실을 경험하건, 그런 어려움은 마치 세상 끝처럼, 일종의 죽음처럼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그 고통을 통과해서 나아가며 일기장 속에서 하나님께 말씀드릴 때, 죽음 한가운데서도 생명을 향해 나아가는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상처와 상실을 극복해서가 아니라 고통을 우리 존재 자체와 통합했기 때문에, 완치는 안 되지만 치유는 늘 가능한 자리에서 통합했기 때문에 치유가 일어난 것이다. 그런 치유는 우리를 인간적 연약함에서 완전히 건져주지는 않지만, 하나님의 임재와 그리스도의 빛 안에서 그 연약함을 오히려 축복한다. 우리는 좀더 깊고 심오한 연약함을 통해 인생을 살아내는 자신을 발견한다. 이 연약함이야말로 자신만이 아니라 주변의 고통 받는 세상에 소망을 준다.
12. 생을 찾아서_ 치유를 위한 글쓰기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