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묻는다. 산행이 힘들지 않느냐고, 그 힘겨운 산행을 왜 하느냐고! 물론 누구나 그렇듯 나 역시 힘겨운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 힘겨움이 다시 산으로 나를 이끄는 즐거움이자 그리움이라고 대답하곤 한다. 산을 올라 정상에 서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그 힘겨움 속에서 스스로를 발견하고 알아감이, 내 가슴과 소통하며 내 본질에 조금씩 다가가는 그 순간들이 행복하다고 얘기하곤 하는 것이다. 그렇다. 그래서 나는 행복하다. 그래서 행복하기 위해 나는 산을 오르는 것이다. --- p.40, 〈지리산, 세석평전에 내리는 비〉 중에서
늘 외로움과 그리움을 입버릇처럼 내뱉던 나였다. 혼자서는 밥 먹기도 싫어하던 나였다. 그런 내가 언제부턴가 밤이든 낮이든 어느 능선, 어느 계곡에 혼자 떨어져서도 행복해 했다. 그냥 내가 변한 것이려니 했었다. 정말 많은 시간이 지난 것이겠거니 했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어쩌면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저, 그전까지는 보려 하지 않았던 것들이 보이는 것뿐이라는, 알려고 하지 않았던 것들을 알게 되었을 뿐이라는 그런 생각 말이다. 그러나 변했었건 변하지 않았었건, 그 둘 모두는 똑같은 나, 내 자신이었다. 생각과 마음, 그리고 가슴과 머리…. 같으면서 같지 않았고, 같지 않으면서 같음을 알았을 때. 소통하게 되었다. 나 자신을 처음으로 알기 시작할 때, 소통은 그렇게 내 안에서 또 다른 나를 만나면서 비로소 시작되었던 것이다. 얼마나 많은 원망을 던졌던가! 얼마나 많은 아픈 맹세를 묻었던가! 그러나 산은 그럴수록 한 번도 나를 돌아보지 않았고, 나는 지쳐갔었다. 그런데, 기다렸다는 듯 산은 이야기했다. 그 무엇도 자신보다는 중요하지 않다고, 누구보다 자신을 사랑하라고. --- p.79, 〈설악산, 가을 그 안에서 길을 잃고〉 중에서
숲 속으로 걷는다. 맑은 그림자를 드리우며 햇빛은 나뭇잎 사이로 하얗게 흩어진다. 능선 너머로 아득히 들려오는 바람의 포효에 발을 멈추고 가만히 귀 기울이면, 어느새 달려온 바람은 파도치듯 나를 휘돌아 부서지고, 바람 뒤에 남겨진 숲은 바다가 되어 일렁인다.
눈 뜨기 힘겨운 강한 햇볕에 온몸은 이내 땀으로 젖어버렸다. 딛는 걸음마저 어느새 천근만근 무거워진다. 얼마를 더 걸을 수 있을까--- p.이 힘겨움은 대체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가! 하지만, 길 위에서는 흘리는 땀 한 방울 한 방울, 그리고 두 발을 조여 오는 고통, 이들 모두가 기쁨이고 보상일 것이다. 그처럼 삶 또한 그 자체로 행복일 것이다. 영원할 수 없는 삶. 이 길 위에서 언젠가는 끝이 날 나의 걸음. 그러나 늘 자신과 소통하며 항상 깨어 있을 수만 있다면, 그 고통과 한 방울의 땀에도 나는 감사해 하리라. --- p.144, 〈오대산 노인봉, 여름의 시작〉 중에서
이상하다. 한참을 내려왔는데도 이정표가 보이질 않는다. 미리 답사를 한 후배에게 어떻게 된 거냐고 묻자, 하산하는 길이 아닌 고대산-금학산 종주 길로 잘못 내려왔단다. 답사를 했는데도 길을 잘못 들다니, 이럴 거면 답사는 왜 했냐고 모두가 한마디씩 구박하지만, 이 녀석은 뒷머리만 긁적이며 깜박했단다. 이런 낭패가 있나. 그렇다. 산은 잠깐의 방심과 아무리 작은 자만이라도 이렇듯 크고 작은 대가를 치르게 한다. 산행시간이 짧은데다 이미 길을 안다고 신중하게 길을 살피지 않았으니, 길을 잃은 것은 당연한 결과이리라.
산은 정복하고 즐기는 대상만은 아닐 것이다. 산은 나 스스로 성찰하게 하고 자신을 깨닫게 하는, 어쩌면 스승 같은 그런 존재에 더 가깝지 않을까--- p.소통을 통해 나 스스로를 깨닫게 하는 산. 산과의 소통, 그것은 온몸과 마음을 열고 산과 하나가 되어, 자신도 그저 자연의 일부임을 가슴으로 알게 되는 순간, 바로 그 순간이라고 나는 믿는다. 그렇기에 내가 아직 온전히 소통할 수 없는 것은 가슴이 아닌 머리로도 깨닫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리라.
--- p.159, 〈금학산 - 알바의 추억, 민간인들의 산행〉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