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86년에는 김혜순 선생과 함께 처음으로 구장복을 복원해냈습니다. 이어 86아시안게임의 문화행사로 코엑스에서 왕의 복식을 비롯한 우리 옷들을 대대적으로 복원하여 공개하였습니다. 그때 이미 ‘왕의 복식’에 대한 연구 성과를 정리해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그러고도 또 20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습니다. 어쩌면 이 책은 벌써 오래 전에 나올 수도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한참의 세월이 흐른 지금 이 책을 마무리하면서 그 오랜 세월이 헛되지 않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낍니다. 우선은 이 책이 전문 연구자들은 물론이고 우리 옷에 관심이 있는 많은 사람들이 참고할 수 있도록 정리했다는 점입니다. 또한 최고의 예복인 면복에서 평상복에 이르기까지 왕이 착용했던 옷들을 종류별로 모두 복원 및 재현한 점입니다. 이러한 점에서 김혜순 선생의 노력과 노고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더군다나 왕의 복식은 말 그대로 ‘服’과 ‘飾’을 두루 갖추어야 하는 것이니 다른 많은 분들의 노고가 없었다면 이 또한 가능·! 舊· 않은 일이었을 겁니다. …
- 유희경의 「한국 복식사 연구에 대한 회고」 중에서 -
… 동서고금을 통해 왕실 문화는 안으로는 귀족과 평민의 본보기가 되고 밖으로는 국가의 위상을 드러내는 것으로 한 나라를 대표하는 최상위의 문화로 인식되어 왔다. 이중 왕실의 장엄함과 위엄을 표현하는 대표적인 것 중의 하나가 바로 복식이다. 특히 왕의 복식은 왕실 문화의 집약적 성격을 담고 있으며 각종 의례(儀禮)와 함께 궁중 문화의 구심점에 위치한다고 할 수 있다. 삼국과 고려를 거쳐 제도화된 왕의 복식은 유교적 가치체계에 의해 신분 질서를 엄격히 구분하고 의례와 절차를 중요시하던 조선사회에서 더욱 그 제도가 강화되었다. 조선에서 ‘복식’은 신분의 상하질서를 표현하며 계층의 구분을 표면화 해주는 수단이었기 때문에 복식의 구별이 더욱 분명해질 수 있었다. 조선에서 왕의 복식에 관한 제도는 당시의 사회, 정치, 경제, 문화를 상징적으로 반영하고 있으므로 시기별로 법제화된 복식제도를 통해 시대상을 알 수 있는 귀중한 유산이다. 왕의 복식에 관한 의제와 형태는 예전(禮典), 의궤(儀軌), 법전(法·! ·)과 같은 문헌 자료를 통해 파악할 수 있다. 복식과 관련해서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예전으로는『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국조속오례의(國朝續五禮儀)』,『국조속오례의보(國朝續五禮儀補)』, 『국조상례보편(國朝喪禮補編)』이 있고, 대한제국 때 편찬한『대한예전(大韓禮典)』이 있다. 먼저, 예전은 법전 편찬과 함께 제도화한 국가의례의 규범을 담고 있어 궁중복식 뿐 아이라 서민들의 의생활까지도 아우르는 조선의 복식제도 전반을 파악할 수 있는 자료이다.
- 김혜순의 「왕의 복식의 역사적 전개」 중에서 -
… ‘왕은 이러이러한 복식을 착용한다.’와 같은 명시(明示)적 언명은 그 배후에 다른 사람은 입을 수 없다는 배제(排除)의 논리를 담고 있다. 즉 왕이 입어서 왕의 옷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입음으로써 왕이 되는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왕의 복식이 하나의 상징(symbol)으로 사용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상징이란 도상(icon) 및 지표(index)와 더불어 기호(sign)의 일종이다. 기호란 인간이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거나 다른 사람의 생각을 읽어내는 의미 작용과 이를 통해 서로의 의사를 전달하는 소통(communication)의 수단이다. … 왕의 복식이란 왕이라는 ‘기의’와 형태와 문양을 갖춘 복식이라는 ‘기표’가 결합하여 생성된 하나의 ‘기호(sign)’이다. 즉 왕의 복식은 기의인 사회문화적 의미가 기표인 미적 형식을 형성하며, 형성된 기표를 통해 기호로서의 가치를 지닌다. 따라서 왕의 복식의 미적 가치는 기표 분석을 통해 파악할 수 있으며, 사회문화적 의미는 기의 분석을 통해 고찰할 수 있다.
- 변청자의 「왕의 복식 연구에 있어서 미적 가치와 사회문화적 의미의 상관성」 중에서 -
… 내가 지금 이야기하려고 하는 것은 과거 사람들의 의복은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편리의 수단이라기보다는, 그 자체로 하나의 독자적인 상징체계였다는 사실이다. 의복은 선남선녀들의 손끝에서 제작되지만 결국 그들의 손은 보이지 않는 무명씨(無名氏)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고 있다. 그 무명씨가 누구인가· 그 무명씨는 바로 시대정신(時代精神, Zeitgeist)인 것이다. 의복처럼 인간이 살아가는 시대정신을 정확하게 반영하는 것도 없다. 코코 샤넬(Gabrielle Chanel, 1883~1971)의 의상혁명은 한없이 복잡하고 불편한 의상의 속박으로부터 유럽의 여성들을 해방시켰지만, 그 의상혁명은 샤넬 개인의 창의성으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그녀는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적 의식의 변화를 선도했을 뿐이다. … 복식은 어느덧 문명의 언어가 되어갔다. 그러면서 복식의 언어성은 복식을 실용적 대상에서 심미적 대상으로! ?약시켰다. 그리고 복식을 만드는 질료의 공예의 발전사가 문명의 역사라 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 기나긴 역사의 정점에 “왕의 복식”이 있는 것이다. … “왕의 복식”은 최고권력자의 복장이라는 단순한 시각에서 벗어나, 복식을 통하여 인간이 구현하려고 했던 상징체계의 정화라고 볼 때, 그것은 모든 일반복식과도 연속성을 지니는 구조들의 종합태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하물며 그 복식을 만드는 장인들의 손길은 천하(天下)의 지성(至誠)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니, 천의무봉(天衣無縫)과도 같은 솜씨에 깃든 예술성은 “지성(至誠)은 여신(如神)이요, 천하의 대경(大經)을 경륜(經綸)할 수 있다”고 한 옛말을 상기시킨다.
- 도올 김용옥의 「통서通序」중에서 -
왕의 복식은 용도에 따라 제복(祭服), 조복(朝服), 상복(常服), 융복(戎服), 군복(軍服), 평상복(平常服)으로 구분하는데, 머리에 쓰는 관을 기준으로 다른 이름을 사용하기도 한다. 제복은 면복이라고 하는데 면복은 의(衣)와 면류관으로 구성되며 황제는 십이장복, 왕은 구장복을 착용한다. 이것은 의복에 장식하는 문양의 수와 면류관에 늘이는 유(旒)의 수 등에서 차이를 보인다. 조복은 통천관복, 원유관복이라고 하며, 강사포를 입고 통천관이나 원유관을 썼다. 통천관은 천자가 착용하는 관으로 우리나라에서는 고종 황제가 착용하였다. 상복은 익선관복을 말하는데, 곤룡포를 입고 익선관을 썼다. 황제는 황룡포, 왕은 홍룡포, 왕세자는 흑룡포를 입었고, 용보(龍補)를 달았다고 하여 용포(龍袍)라고도 한다. 융복은 흑립과 철릭으로 구성되며, 구군복은 전립을 쓰고 동달이와 전복을 입었다. 평상복은 사대부의 평상복과 유사하며 종류가 다양하다.
십이장복은 12가지 문양[十二章紋]으로 장식한 옷이라는 뜻에서 이름 지어졌으며, 이들 장문은 각 신분에서 갖추어야 할 덕목을 의미한다. 황제가 착용하는 십이장복에는 일(日) · 월(月) · 성신(星辰) · 산(山) · 용(龍) · 화(火) · 화충(華蟲) · 종이(宗彛) · 조(藻) · 분미(粉米) · 보(·) · 불(·)의 12가지의 문양을, 9장복에는 12장문 중 일 · 월 · 성신을 제외한 9가지의 문양을, 7장복에는 9장문 중 산과 용을 제외한 7가지의 문양을, 5장복에는 9장문 중 산 · 용 · 화 · 화충을 제외한 5가지의 문양을 새겨 이를 통해 신분을 나타내었다. 웃옷[上衣]에 해당하는 ‘의(衣)’에는 황제 6장, 왕과 황태자 5장을, 아래옷[下衣]에 해당하는 ‘상(裳)’에는 황제 6장, 왕과 황태자 4장을 그리도록 하였으며, 이로써 황제의 면복으로는 십이류면 십이장복을, 왕과 황태자의 면복은 구류면 구장복을 사용하도록 하였다. ‘의’는 십이장복의 가장 상징적인 복식으로 왕이 입는 포(袍)라는 의미이며, 현색(玄色)으로 만들어 ‘현의(玄衣)! ’라고도 한다.
- 「면복 : 십이장복 ‘의’」 중에서 -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