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가장 깊은 곳까지 파고든 소설,『죄와 벌』
이성의 횡포로 살인을 저지르고, 사랑의 힘으로 구원받은
한 젊은이의 고난의 기록
세계 명작에 새로운 옷을 입혔다
19세기, 농노제가 폐지된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를 배경으로 한 젊은이의 살인, 그리고 구원에 이르는 이야기를 담은 작품『죄와 벌』. 세기를 뛰어넘어 사랑받는 이 문제작이 청소년 맞춤형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인간의 심연을 집요하게 파고들어 ‘악마적 작가’라고까지 불리는 도스토옙스키. 그의 작품들 중에서도『죄와 벌』은 어느 필독서 목록에도 빠지지 않는 걸작 중의 걸작이다. 그러나 긴 분량, 난해한 관념들의 나열, 상투적인 번역투, 문어체의 서술 때문에 청소년 독자에게는 물론 성인 독자에게도 쉽게 다가갈 수 없는 작품이었다. 그러나 ‘징검다리 클래식’의 『죄와 벌』은 깔끔하고 유려한 문체, 익숙한 언어들로 번역하여 고전에 대한 공포를 덜 수 있게 했다. 이제 이 책의 이름을 필독서 리스트에서 리뷰 리스트로 내릴 수 있을 것이다.
결국은 사랑과 믿음이 우리를 구원할 거야
『죄와 벌』의 주인공은 지적이고 오만한 대학생으로, 자신은 대다수의 사람과 분명히 구별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서슴없이 전당포 노파를 사회에 불필요한 존재, 죽어도 괜찮은 존재로 여겼다. 그런데도 막상 살인을 저지르고 나서는 심한 마음의 고통을 겪었다. 이는 주인공의 마음속에는 일말의 인간다움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그 인간성을 끄집어낸 사람은 가장 천대받는 계층의 여자인 소냐다. 라스콜리니코프는 소냐의 맑은 영혼에 감동하여 자수하고, 후에도 소냐의 사랑에 힘입어 죄를 뉘우친다. 철저히 무너져 가던 주인공을 구한 것은 그의 마음속에 있던 인간다움, 그리고 사랑이었던 것이다.
걸작이라고 불리는 작품들이 보통 그러하듯, 『죄와 벌』도 읽는 이에 따라 전혀 다르게 읽을 수 있다. 표면적으로 『죄와 벌』은 한편의 뛰어난 범죄 소설이다. 오만한 젊은이가 살인을 저지른 직후부터 내면의 갈등, 주변의 의심, 그리고 예기지 못한 상황들이 벌어진다. 이러한 내용들은 사건 중심이 아니라 대화 중심으로 전개되기 때문에 심리적 변화를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그러나 달리 보면 『죄와 벌』은 작가의 신념이 녹아 있는 종교 소설이기도 하다. 오만하고 지적인 주인공이 하필 가장 천대받는 하층민 소냐에 의해 구원받는다는 설정은 이 소설에서 가장 문제적이다. 소냐는 비록 몸을 파는 창녀지만, 내면은 누구 못지않게 맑고, 믿음이 강한 종교적 인물이다. 이는 도스토옙스키가 『죄와 벌』을 통해서 종교적인 믿음, 인간애의 중요성을 강조하고자 했음을 드러낸다.
현직 국어 선생님이 직접 쓴 풍성한 해설
‘푸른숲 징검다리 클래식’의 강점 중 하나는 작품을 보다 깊이 있게 이해하도록 돕는 장치, ‘제대로 읽기’ 페이지다. 작품을 다각도로 해석해 보는 이 페이지는 강혜원(서울 경기상고 국어 교사), 계득성(서울 신목고 국어 교사), 전종옥(서울 양강중 국어 교사), 송수진(경기 호평중학교 국어 교사) 등 현직 국어 교사들이 현장에서 경험한 청소년들의 요구와 필요에 걸맞은 내용으로 직접 썼기 때문에, 그 어느 해설보다 꼼꼼하고 풍성하다.
작가나 작품에 대한 해설은 물론, 현대를 살아가는 청소년들이 한 세기 이상 지난 명작을 왜 지금 읽어야 하는지, 현재적 시점에서 어떤 의미를 찾을 수 있는지 등 다양한 접근을 시도했다. 재미있고 풍성한 팁과 시각 자료를 함께 싣고 있어서 학습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것은 물론, 보는 즐거움까지 누릴 수 있게 했다.
내용 소개
위험한 계획
끼니조차 제대로 잇지 못하는 가난한 대학 휴학생 라스콜리니코프. 그는 살아 있을 가치가 없다고 여겨지는 전당포 노파를 살해하고 돈을 빼앗아 자신의 문제들을 해결하기로 결심한다.
‘이성이 시키는 게 아냐. 이건 악마의 짓이다!’
그는 계획대로 노파를 살해했지만 뜻하지 않게 살해 현장에 온 노파의 여동생마저 죽이고 만다. 그리고 집에 돌아오자마자 병으로 앓아눕는다.
악몽 같은 나날
라스콜리니코프는 범죄 직후부터 양심의 가책, 모든 사람들이 자신을 의심하고 있다는 생각으로 심한 고통을 겪는다.
‘주여! 한 가지만 말씀해 주소서. 사람들이 모두 다 알면서 시치미를 떼는 겁니까, 아니면 아예 모르는 겁니까? 도망가야 한다! 어서 도망가야 한다! 돈, 돈은? 아, 저기 책상 위에 있지. 그래도 날 찾아낼지도 모른다. 멀리 미국으로 갈까? 사람들은 내가 걸을 수 있다는 건 모르는 눈치야. 하지만 ‘그 일’에 대해서는 다 알고 있어. 눈빛을 보면 알 수 있지.’ -본문 중에서
라스콜리니코프는 자신도 모르게 예심판사 포르피리의 의즽을 살 만한 행동을 하고, 주위 사람들을 불신하게 되는 등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내면이 무너져 간다. 그러던 중 우연히 술주정뱅이 아버지와 계모, 그리고 배다른 동생들을 위해 몸을 파는 소냐를 만나게 된다. 소냐는 술주정뱅이 아버지와 계모, 배다른 동생들을 먹여 살리느라 몸을 파는 처지지만, 누구보다 신앙심이 깊고 영혼이 맑다. 라스콜리니코프는 범죄 후의 고통을 견디지 못해 소냐에게 모든 걸 털어놓는다. 그러자 소냐는 라스콜리니코프에게 자수를 권한다.
“일어나세요! 지금 당장 거리로 나가서 당신이 더럽힌 땅에 입을 맞추세요. 그리고 사람들이 다 듣도록 큰 소리로 ‘내가 사람을 죽였습니다!’라고 말해요. 그러면 하느님이 당신을 거듭나게 해 주실 거예요.”-본문 중에서
그들을 부활시킨 것은 사랑
라스콜리니코프는 자신이 범인임을 확신하고 있는 포르피리의 권유, 본인이 생각처럼 비범한 인간은 아니었다는 자괴감, 소냐의 사랑을 계기로 자수를 결심한다. 그는 8년형을 언도받고 시베리아에서 유형생활을 시작한다. 소냐는 언제까지나 그와 함께하기로 결심하고 시베리아에 따라가서 옥바라지를 한다. 그러나 라스콜리니코프는 여전히 자신의 죄를 진심으로 뉘우치지 못했다.
‘내 이론이 그렇게 기이한 건가? 아니다. 하지만 왜 남들 눈에는 추악하게 보이는 거지? 그게 죄이기 때문인가? 하지만 내 양심은 편하다. 스스로 권력을 구한 천재들이 법률을 뛰어넘는 첫걸음을 지켜 냈다면, 나는 그걸 견디지 못했을 뿐이야!’ -본문 중에서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소냐의 진심어린 사랑을 느끼고 라스콜리니코프는 그녀 앞에 무릎을 꿇는다. 그리고 선택받은 소수가 세상의 진리를 이끌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이 착각이었음을 깨닫고, 자신의 죄를 뉘우친다. 그러자 소냐와 라스콜리니코프의 앞에는 “새로운 생활을 향한 완전한 부활이 아침 햇살처럼 환하게 내리비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