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시텔?”
“그래, 아주 골치라니까.”
명품샵 여주인 말로는 한 달 전에 경매 받은 고시텔이 있는데 장기계약자들이 있어서 내쫓지도 못하고 아주 골치라고 했다. 장기계약자들의 계약이 끝나는 날만 기다렸다가 업종 변경을 할 거지만 그래도 그때까지는 관리할 사람이 필요하다는 거였다.
“어유, 언니는. 내가 그런 걸 어떻게 해? 화장실 청소랑 계단 청소, 그런 것도 해야 되는 거 아냐? 못 해, 못 해!”
엄마는 참 말도 안 된다는 듯이 잘라 말했다. 못 한다고 말이다. 참 상황 파악을 못 하는 엄마였다.
“해요! 해요! 할 수 있다니까요!”
혹여 명품샵 여주인의 맘이 변할까 나는 후다닥 뛰어가 엄마의 입을 틀어막았다.
그리하여 몇 분 뒤, 엄마와 나는 밖으로 나왔다. 명품샵 여주인이 건네준 쪽지를 무슨 보물지도인 양 들고서.
“택시!” --- p.39
“뭐야? 여성 전용이잖아!”
어쩐지 일이 너무 쉽게 풀린다 했다. 기대가 컸던 탓일까? 여성 전용이라는 간판을 보자마자 다리에 힘이 풀려버렸다. 털썩, 땅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엄마가 선글라스를 벗고 나를 내려다봤다.
“뭐가 문제야?”
엄마는 참 별일도 아니라는 듯이 말했다.
“여성 전용이라잖아!”
“그래서?”
“그래서라니? 여성 전용이라는 건, 여자만 들어갈 수 있다는 뜻이라구요.”
“너, 바보지? 치마 입으면 되잖아!”
엄마는 나를 향해 돌아서더니 확, 열어젖혔다. 밍크코트를. 그러고는 밍크코트 안에 입고 있는 치마를 내 앞에 들이밀었다.
“뭐야? 나한테 지금 그걸 입으라는 거야?”
초작렬 미니스커트였다. --- p.41
그렇다. 나의 완벽녀는 안경만 쓰면 지극히 평범한 여사원이 되고 마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 해도, 그녀는 나의 완벽녀였다. 아니, 그렇기 때문에 나만의 완벽녀였다.
그녀의 섹시하면서도 순수한 모습을 알고 있는 남자는 나밖에 없는 것이다!
앞으로도 그래야만 한다, 기필코!
출근 전이나 퇴근 후의 안경을 벗은 그녀의 모습, 그 완벽한 모습을 볼 수 있는 남자는 나, 황제뿐이다!
하루 종일 나는 그 생각만 했다. 어떻게 해야 그녀의 맨 얼굴, 그러니까 안경 벗은 모습을 나만 볼 수 있을까? 그녀는 안경만 벗으면 완벽녀가 된다.
말도 안 돼. 겨우 안경 하나로 사람 인상이 그렇게 달라질 수 있어?
그래, 그래. 그렇게 따지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나도 안다. 그러나 정말이다. 그녀는 안경을 쓸 때와 벗었을 때의 이미지가 완전히 다르다. 안경만 벗으면 ‘초특급 슈퍼 울트라 섹시&순수’, 그 자체가 된다. --- p.114
『여기는 은하스위트』가 웹진에 연재되는 동안, 많은 분들이 “재미있다”는 댓글을 달아주셨습니다. 그 댓글들을 보며 나는 울었습니다. 떠난 이들이, 정처 없어진 이들이, 한순간이나마 시름을 내려놓고 하하하, 그저 한번 웃을 수 있는 글이면 좋겠다……. 그런 마음으로 연재를 했으니까요.
그 댓글들을 보며, 처음 문학에 뜻을 품었던 시절을 떠올리기도 했습니다.
그 당시, 우리 다섯 식구가 모여 살던 다락방에는 보일러가 들어오지 않아 겨울이면 전기장판 위에 배를 깔고 누워 이불을 뒤집어쓴 채 언 손에 입김을 불어가며 글을 써야 했지요. 비록 가난은 나를 추위에 떨게 했지만 문학에 대한 열정은 나를 자유롭게 해주었습니다. 이곳이 아닌 다른 곳을 꿈꾸게 해주었습니다.
내가 꿈꾸던 그곳에 작은 방 한 칸이라도 마련해주자.
자꾸 떠밀려 다니기만 하는 이들을 위해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이란 어디서든, 아주 잠시라도 엉덩이를 내려놓고 쉴 수 있는 그런 방 한 칸 마련해주는 일이 아닐까?
그런 마음으로 『여기는 은하스위트』의 빈 방을 채웠습니다.
떠나야 했던 이들, 지금도 정처 없이 거리를 서성이고 있을 이들을 한 명, 한 명 불러 모았습니다. 그런 까닭에 『여기는 은하스위트』의 입주자들은 외모도, 학력도, 살아온 내력도 제각각입니다. 그러나 외모도, 학력도, 살아온 내력도 제각각인 그들은 아직 꿈꾸는 이들입니다. 꿈꾸는 이들은 싸우는 자들입니다. 싸우는 자들은 아직도 열심히 찾고 있는 이들이지요. 헛된 희망일지라도 오늘 속에서 내일의 씨앗을 발견하려고 하는 사람들입니다.
--- 작가의 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