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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하다고 말해

미안하다고 말해

조 올로클린 시리즈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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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7년 03월 17일
쪽수, 무게, 크기 592쪽 | 724g | 140*210*35mm
ISBN13 9791158790585
ISBN10 11587905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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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파이퍼 해들리다. 그리고 나는 3년 전 여름방학의 마지막 토요일에 행방불명되었다.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었고, 도망친 것도 아니었다. 내가 죽었다고 믿지 않은 많은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했겠지만. 당신이 무엇을 보고 들었든 나는 낯선 이의 차에 오르거나 인터넷에서 만난 추잡스러운 소아성애자와 달아나지 않았다. 이집트의 노예 상인에게 넘겨지지도, 알바니아 갱에 납치되어 매춘부로 전락하지도, 호화 요트에 실려 아시아로 팔려가지도 않았다.
--- p.9

잠이 오지 않을 때는 강박 장애 증상과 비슷한 짓을 한다. 찬장 속 통조림들을 재배열한다든지, 벤치를 박박 문질러 닦는다든지. 통조림은 달랑 네 개뿐이다. 일반 콩, 소시지를 곁들인 콩, 바비큐 소스를 곁들인 콩, 그리고 굉장히 역겨운 치즈를 곁들인 콩. 참치와 사탕옥수수와 비스킷은 바닥나버렸다. 통조림들을 반듯하게 쌓아놓은 후에는 반창고와 두통약과 설사가 날 때 물에 타서 마시는 가루약 봉지를 천천히 세어본다. 설사약은 과일 맛이 나야 하지만 막상 먹어보면 쓰기만 하다.
찬장 안에는 그것들뿐이다. 피부 발진, 눈병, 치통, 위경련, 그리고 생리통이 찾아들면 그냥 참을 수밖에 없다. 무료함이나 외로움을 달래주는 약도 없고.
그나마 벌레가 없다는 건 불행 중 다행이다. 여름이었다면 내 다리는 벌레 물린 자국들로 뒤덮여 있었을 것이다. 그랬다면 보나마나 피가 날 때까지 긁어댔을 거고.
--- p.86

사람들은 자신들만의 정보로 꽉 차 있다. 그리고 그것은 피부의 땀구멍으로 배어 나오고, 또 입으로 뿜어져 나온다. 또한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매너리즘으로 드러난다. 얼굴의 경련으로, 그리고 몸의 경련으로. 수줍음이 많든, 물질주의적이든, 허영심이 강하든, 클리셰에 익숙하든, 경구와 《타블로이드》 신문에 집착하든, 그들은 수천 가지 다양한 방법으로 베일을 벗는다.
그리고 나는 거의 무의식적으로 그런 신호를 포착해낸다. 그들의 몸짓 언어를 읽어내는 것으로. 한때 나는 세상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의 발생 원인을 알고 싶어 했다. 왜 커플이 젊은 여성을 살해해 지하실에 묻었는지. 왜 십대 소년이 학교 운동장에 총알을 뿌려댔는지. 왜 여학생이 화장실에서 낳은 신생아를 쓰레기통에 던져버렸는지. 하지만 더 이상은 궁금하지 않다. 이제는 사람들의 머릿속을 꿰뚫어보고 싶지 않다. 너무 많이 아는 건 저주다. 너무 오래 사는 것과 너무 많은 걸 목격하는 것이 그렇듯. 문제는 바로 피로감이다.
--- p.142

“내가 얼마나 오랫동안 수화기를 손에 쥐고 앉아 전화벨이 울리기를 기다렸는지 알아요? 몇 주, 아니, 몇 달 동안 그렇게 살아야 했어요. 거의 1년 동안. 그러다 갑자기 딸은 죽었을 거라며 체념하게 되더군요. 그래서 기도도 그만두게 됐고요. 그 애가 살아 있을 거라는 믿음을 아예 접어버렸어요. 매정하게 딸을 포기해버린……. 여태껏 살아 있었는데도 말이에요. 집을 찾아오려고 그토록 애쓴 불쌍한 아이를 두고.”
그녀가 흐느끼기 시작한다. “그 앨 보고 싶어요.”
“그건 좀…….”
“내 딸 나타샤를 보고 싶다고요.”
“세월이 많이 흘렀습니다. 실종 당시의 모습과 많이 달라졌을 겁니다.”
“상관없어요. 그 앤 내 딸이라고요.”
드루리가 나를 돌아보며 도와달라는 눈빛을 보낸다. 하지만 비탄에 젖은 사람을 굳이 진정시키려다가는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 있다. 앨리스는 딸이 죽었다고 전하는 드루리를 믿지 못하는 게 아니다. 그녀는 태쉬가 아직 살아 있다는 비이성적인 희망에 집착하지 않는다. 그저 사과를 하고 싶을 뿐. 사과와 작별인사.
--- p.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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