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라이켄의 숲에는 종종 사슴 한 마리가 나타나곤 했다. 그런데 사슴의 모습이 어찌나 위엄이 있는지 마을 사람들을 사슴을 볼 때마다 '파니 프론츠'라고 불렀다. 이는 독일어로 '뻐김 신사'라는 뜻이다. 이 사슴의 뿔은 스물여덟 가지로 갈라져 있었고 힘도 매우 셌다. 아마 그 힘은 사슴의 허리 부분에서 나오는 듯 싶었다. 아무튼 이 사슴은 줄라이켄 숲의 자랑이자 보물이었다. 숲 가장자리나 초원에 이 사슴이 나타나기만 하면 그 놀라운 뿔의 위엄과 위용에 감탄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사슴은 마을 사람들의 예찬을 받으며 무럭무럭 자라 어느 새 영리하다는 줄라이켄의 말만큼 커졌다. 저녁 무렵 황혼이 질 때면 때때로 마을을 향해 울어대기도 하고, 황혼을 등지고 산책을 하기도 했다. 어떤 때는 유유히 거리로 나와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기도 했는데, 어느 곳에 출현을 하든 항상 사람들의 이야깃거리가 되었다.
하지만 생각해보라. 이 특별한 사슴에 대한 이야기가 어찌 줄라이켄에만 머물수 있겠는가?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사람들의 이야기란 한 장소에 머무르는 것이 아닐뿐더러, 그 속성상 널리 퍼지는데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닌가. 이 '뻐김 신사'에 대한 이야기는 슈트리켈도르프 사람들에게도 전해졌고, 사슴의 명성은 열차를 타고 더욱 멀리 퍼져 크넥 아우프 크네켄이라는 사냥꾼의 귀에도 들어갔다. 돈 많고 사슴 사냥에 미쳐 있던 크네켄은 이 소문을 듣자마자 총신이 셋이나 되는 엽총을 손질하고, 서둘러 사냥 허가증을 발급받았다. 그리고 적당한 때를 골라 줄라이켄의 자랑거리를, 적어도 스물 여덟 가지로 갈라진 뿔이라도 손에 넣겠다면서 큰 소리를 쳤다.
---pp. 30~31
우리가 늘 경험하듯이, 무언가를 소유하고 있다는 생각을 자주 하면 그것이 진짜 내 것처럼 여겨질 때가 있다. 줄라이켄 사람들 역시 자신들의 것으로 생각하는 대상이 있었는데, 그것은 개구리 초원이라 불리는 풀밭이었다. 이곳은 그리 크지 않은 풀밭으로 늪지대처럼 축축했으며, 개구리들의 소란스런 울음소리와 염소들의 음매 하는 소리와 곤충들의 끊임없는 울음소리로 가득했다.
개구리 초원에는 양, 백마, 소들이 자주 산책을 나왔으며, 물이 고인 도랑에는 오리들이 모여들었다. 생명이 있는 줄라이켄의 모든 것들은 시간이 날 때마다 개구리 초원을 찾아와 한가로운 오후를 보냈던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 평화로운 이 초원에 사건이 벌어졌다. 쉬조미어에 사는 에드문드 피페라이트가 신발을 벗고 도랑으로 들어가 외모가 출중한 줄라이켄의 오리를 낚아채 간 것이다. 그의 말에 따르면 개구리 초원이 법적으로 쉬조미어의 땅이므로 그곳에서 잡은 오리 역시 쉬조미어 사람이 가져야 한다고 했다. 줄라이켄 사람들은 과연 어떻게 반응했을까?
--- pp 153~154
키가 크고 말이 없는 나무꾼, 요세프 발데마르 그리찬에게도 사랑이 찾아왔다. 그의 등에 날아와 꽂힌 것은 가느다란 사랑의 화살이 아니라 그의 직업과 어울리는 굵고 커다란 사랑의 도끼였다. 이 사랑의 도끼는 건강미 넘치는 여인, 카타리나 크낙에 의해 날아들었다.
어느 날 카타리나는 강가에서 무릎을 꿇고 몸을 바싹 구부린 채 튼튼한 두 팔로 빨래를 하고 있었다. 우연히 그 옆을 지나던 그리찬은 머리카락 몇 가닥이 내려와 있는 그녀의 붉은 얼굴을 보고는 단번에 마음을 빼앗겼다. 카타리나의 모습을 제대로 살펴보기도 전에 그의 등에 사랑의 도끼가 날아와 상처를 낸 것이다.
며칠 후 그리찬은 나무를 하러 산으로 가는 대신 새벽 5시에 목사님을 찾아갔다. 그는 꿈속을 헤매고 있는 목사님을 깨웠다.
"목사님, 제가 장가를 가려고 하는데요, 세례증을 하나 써주십시오."
꿈에서 깨어난 목사님은 그리찬을 매우 언짢게 쳐다보며 말했다.
"이보게, 자네가 사랑 때문에 잠을 못 자겠거든 다른 사람이라도 잠을 자게 내버려두게나. 아침 먹고 나서 다시 오도록 하게. 그나저나 이왕 온 김에 시간 있으면 저기 정원의 흙 좀 갈아주게. 삽은 마구간에 있네."
나무꾼 그리찬은 마구간을 흘깃 넘겨보며 말했다.
"흙을 갈면 세례증을 주시겠습니까?"
--- pp 146~1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