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이 『바닥에서 살아도 하늘을 본다』라는 제목으로 처음 출간된 해는 1995년이었습니다. 그 후로 이미 15년의 세월이 지났습니다. 그동안 나라 사정도 많이 바뀌고 사람들의 살아가는 모습도 많이 바뀌었습니다. 그러나 그때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는 것, 한 가지가 있습니다. 방황하는 청소년들의 모습입니다. 15년 전, 이 책을 처음 내던 그때도 방황하는 청소년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을 품고 원고를 썼습니다. 지금도 같은 마음으로 이 책을 다시 출간합니다.
그간에 판을 거듭하면서 이 책을 읽은 청소년들이 큰 도움을 받았다는 기쁜 소식도 자주 접하곤 하였습니다. 바라기는 보다 많은 청소년들과 젊은이들이 이 책을 읽고 청소년 시기의 방황과 회의, 갈등과 좌절을 극복하여 삶에 대한 용기와 미래에 대한 비전을 품을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합니다.
- 저자 개정판 서문 중에서
시체 옆에 무릎을 꿇고 앉아서 훈이 엄마 얼굴을 쓰다듬으면서 통곡을 했습니다.
“왜 죽습니까? 살아야 한을 풀지. 애들 데리고 옛말 하고 살려면 살아남아야지, 죽어버리면 어떻게 합니까? 죽어버리면 아무것도 되는 게 없는데, 어째 힘없는 내 등에서 말 한마디 없이 죽소.”
얼마나 통곡을 했는지 모릅니다. 주먹을 쥐고 시멘트 바닥을 내려치다가 손등이 터져서 피가 흐르는데 그것도 몰랐습니다. 그 손으로 눈물을 닦아 손등이고 얼굴이고 피범벅이 되었습니다. 혼자서 울다가 얼굴을 쓰다듬다가 일어서서는 하늘에 대고 삿대질을 해가면서 예수님에게 항의를 했습니다.
“예수 필요 없어! 무슨 구주가 그래? 나를 빈민촌에 들여보냈으면 도와줘야지. 나를 밀어줘야지! 빈민촌에 들여 보내놓고 집집마다 환자이고 사흘마다 장례식인데, 힘없는 훈이 엄마 내 등에서 죽도록 가만히 보고만 있는 예수, 무슨 구주가 그래? 그렇게 무책임하고 무기력하고 의리도 없는 예수를 내가 어떻게 평생 섬겨? 그런 구주고 예배당이고 집어치우고 내 이놈의 세상, 뒤집어 버린다!” 그런 결심을 했습니다.
- 60 ~ 61쪽
실패하고 망하고, 하다가 안 되는 것이 제 특기이고 은사라는 것입니다. 저도 인정합니다. 사랑한다고 온갖 일을 다 하고 온갖 사업, 온갖 프로젝트를 다 만들었는데 계속해서 실패만 했습니다. 실패하니까, 하지 않아도 될 고생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누가 제 앞에서 와서 고생한 얘기하면, 번데기 앞에서 주름잡나 하면서 씩 웃습니다. 제 앞에서 고생한 얘기는 안 어울리는 일입니다. 고생했다고 들어봐도 제 듣기에는 산보하는 정도로 여겨집니다. 별 거 아닌 것 가지고 고생했다고 합니다. 제가 그만큼 고생을 사서 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실패와 좌절의 과정 속에서 저에게 남은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신앙고백입니다. 실패하고 고생하면 고생할수록 ‘하나님의 사랑이 아니면 나는 살아있지도 못할 사람이로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피부로 삶속에서 체험하게 됩니다.
- 73쪽
영어에 ‘언더스탠딩(understanding)’이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이해한다’는 뜻의 그 말을, 저는 참 좋아합니다. 사랑을 설명하는 데는 언더스탠딩이 적합한 것 같습니다. ‘언더(under)'와 ’스탠드(stand)'를 더한 말입니다. 풀이해보면 ‘사랑을 받아야 할 메마른 심령이 서있는 그 자리에 내려가서 같이 선다’는 뜻입니다.
교회를 오래 다닌 사람들은 한 가지 나쁜 버릇이 있습니다. 교회 밖에서 실망하고 죄 짓고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해서 같이 설움과 기쁨을 나누지 못하고 예배당 안에 그들과 분리되어 깨끗하게 앉아서는, ‘형제여, 자매여, 그 타락한 자리에서 살지 말고 교회로 들어오시오. 왜 그 죄악의 자리에 앉아 있습니까?’ 하고 교회당에 들어와 앉으라 그럽니다. 그렇게 하면 그 사람이 들어올 수 있는 영적인 깨우침이나 정신적인 힘을 가질 수 있습니까?
교회당 안에서 “들어오시오. 들어오시오.” 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 심령이 서 있는 삶의 자리로 내려가 그 자리에서 함께 더불어 웃고 울고, 기쁨도 슬픔도 같이 나누는 삶, 사랑이 필요한 영혼과 더불어 같이 산다는 것, 그것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 88 ~ 89쪽
기도 제목은 한가지입니다.
“비를 주십시오!”
하늘에서 비가 와 논바닥에 소금물을 확 씻어 주고 햇빛을 가려 주어야 모가 뿌리를 내립니다. 그렇지 않고 하늘에 햇볕만 쨍쨍 쪼이니까 논바닥까지 찼던 물이 뜨거워져 소금기가 끓어올라 모 뿌리가 다쳐 다 죽어버리는 것입니다. 비가 와야 되는데 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고 별만 총총하니까 얼마나 답답합니까?
제가 주민들 사이에 앉아서 기도를 하는데 초등학교 3,4학년 어린아이들도 학년별로 끼리끼리 둘러앉아서 하늘을 쳐다보면서 애들이 기도를 합니다. 그 어린 아이들이 고사리 손을 움켜쥐고 새까맣게 그슬린 얼굴로 “예수님, 비를 주시옵소서,” 하고 하쎴을 쳐다보고 기도하는데 저는 마음이 약해서 그걸 보니 얼마나 눈물이 나던지, 지도자인 제가 울 수도 없고 바닥 풀에 숨어서 울었습니다.
바닥 풀 속에 들어가서 주먹으로 갯벌바닥을 치다가, 가슴을 치다가 “예수님, 우리 어른들 기도는 안 들어주시더라도 저 애들 기도 좀 들어주셔야 되겠습니다. 저 애들 기도응답 못 받고 네 번째 심은 모가 다 죽어버리면, 우리는 어떻게든 살아나가겠지만 저 애들한테 하나님 살아계시는 것을 제가 무엇으로 설명을 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살아계셔서 우리의 합심하는 기도를 들으신다는 걸 보여주시옵소서.” 하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 147쪽
느헤미야는 조국의 현실을 앞두고 첫 번째는 기도했습니다. 두 번째는 회개했습니다. 세 번째는 신앙고백을 분명히 했습니다. 네 번째가 중요합니다. 네 번째는 그 민족의 현실을 고쳐서 형통한 역사, 바로 서는 민족이 되는 일에 써달라고 자기를 바쳤습니다. 헌신입니다. 자기 헌신입니다. 바치지 않고 다른 사람만 비판한다고 되겠습니까? 기도만 한다고 되겠습니까? 신앙고백이 아무리 분명해도 자기 인생을 헌신해서 바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처럼 좋은 시절에 이 민족과 교회와 이 백성을 새롭게 하는 일에 써달라고 헌신하는 결단이 있기를 바랍니다. 나 혼자 잘 먹고 잘 살고 출세하는 것이 아니라 느헤미야처럼 이 시대와 백성을 하나님의 이름으로 섬기는 일에 여러분을 헌신하는 결단이 있기를 바랍니다.
- 278 ~ 279쪽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