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유니온이-스토트는 성서유니온 간사를 통해 신앙을 갖게 되었고 그에게서 매일 성경을 읽는 습관을 익혔다-이해하기 쉬운 이 책을 다시 출판하는 것은 적절하다. 성서유니온의 사명도 권위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 이 세대에서 개인과 공동체의 삶에 영향을 미치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책을 다시 내면서, 성서유니온은 당연히 존 스토트를 기린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는 우리가 말씀을 부지런히 연구하고 말씀에 기꺼이 순종하며 말씀을 담대하게 선포함으로써 말씀의 저자이신 하나님을 높이길 원했을 것이다.
---「특별판 서문」중에서
그리스도를 보는 분명하고 참되며 새롭고 고귀한 시각에 이르는 길은 단 하나, 성경을 통하는 길뿐이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라는 빛을 아름다운 여러 색으로 분리해 보여 주는 프리즘이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의 초상화다. 우리는 (성령의 은혜로)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생생하게 살아나고 우리를 만나며 자신으로 우리를 채우시길 간절히 바라며 그분을 응시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온전히 이해하려면, 하나님이 그분을 우리에게 주신 정황을 이해해야 된다. 하나님은 지리적으로, 역사적으로, 신학적으로 구체적인 정황에서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셨다. 더 간단히 말하면,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특정한 곳에(팔레스타인에), 특정한 때에(유대 역사의 절정기에), 진리의 특정한 뼈대 안에(성경에서 점진적으로 계시되고 영구히 기록된 진리의 뼈대 안에) 보내셨다. 따라서 이 책은 성경의 지리, 역사, 신학, 권위, 해석을 다룬다. 이 책의 목적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충만한 영광을 더 굳건히 붙잡고 또한 다른 사람들과 나눌 수 있도록,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계시하셨고 지금도 그리스도를 보내시는 정황을 보여 주는 것이다.
---「들어가는 글」중에서
요한은 성경(“기록된 것”)의 궁극적 목적을 바울과 똑같이 본다. 요한은 이것을 “생명”이라 부르고 바울은 이것을 “구원”이라 부르지만, 둘은 사실상 동의어다. 두 사도 모두 이 생명이나 구원이 그리스도 안에 있고, 이 생명이나 구원을 얻으려면 그리스도를 믿어야 한다는 데 동의한다. 두 사도 모두 정확히 똑같은 단계를 제시한다. “성경-그리스도-믿음-구원.” 성경이 그리스도를 증언하는 목적은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일으키고, 믿는 자에게 생명을 주는 것이다.
결론은 간단하다. 우리는 성경을 읽을 때마다 반드시 그리스도를 찾아야 한다. 마침내 그리스도를 발견하고 믿을 때까지 그분을 계속 찾아야 한다. 우리는 성경이 우리에게 드러내는 그리스도의 부요함을 믿음으로 계속 맛볼 때만 영적 성숙에 이르도록 자라서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딤후 3:17)춘 하나님의 사람이 된다.
---「1. 성경의 목적」중에서
하나님은 성경의 인물들이 처한 시간과 장소에서 그들을 대하셨듯이, 우리가 처한 시간과 장소에서 우리를 대하길 원하신다. 따라서 하나님이 우리를 대하시는 방식을 이해하려면, 하나님이 성경의 인물들을 대하신 방식을 이해해야 한다. 이것을 이해하려면, 그 모든 일이 언제, 어디서 일어났는지 어느 정도 알아야 한다. 그 모든 일을 속으로 그려 낼 수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2장에서 살펴볼 성경의 지리와 3장에서 살펴볼 성경 이야기는 매우 흥미롭고 필수적인 부분이다. 이 역사와 지리는 하나님이 말씀하고 행동하려고 특별히 선택하신 무대이기 때문이다.
---「2. 성경의 지리」중에서
기독교는 본질적으로 역사적인 종교다. 하나님의 계시는 그리스도인들이 소중히 여기며 전하려는 것인데, 진공 상태에서 주신 게 아니라 역사적 정황 속에서, 이스라엘이라는 한 민족과 예수 그리스도라 불리는 인물을 통해 주신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계시는 역사적 정황과 분리될 수 없으며, 역사적 정황 속에서만 이해될 수 있다.
그렇다고 성경에 기록된 역사가 모든 면에서 현대의 역사관과 일치한다는 뜻은 아니다. 현대 역사가라면 자기 시대의 모든 사실에 대해 자세하고 객관적인 기사를 제시해야 한다. 그러나 성경의 역사가들은 이렇게 하지 않았다. 이와 반대로, 이들은 “전선지자”로 여겨졌는데, 이들이 ‘거룩한 역사’, 하나님이 특별한 백성을 특별한 목적에서 다루시는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하나님이 다른 “어느 민족에게도 이와 같이 행하지 아니하셨”(시 147:20)다고 확신했다. 그래서 이들의 기록은 역사라기보다 증언이다. 이들은 자신의 신앙고백을 써내려 가고 있었다.
---「3. 성경 이야기(구약)」중에서
지금까지 성경이 하나님을 한편으로 살아 계시고 주권적인 분으로 계시하고 다른 한편으로 자기 일관성을 보이시는 분으로 계시한다는 것을 살펴보았다. 살아 계신 하나님이 무엇보다도 “은혜”로 자신을 표현하신다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누구라도 은혜의 메시지를 알지 못하면 성경의 메시지를 이해하지 못한다. 성경의 하나님은 “모든 은혜의 하나님”(벧전 5:10)이다. 은혜는 사랑이지만, 특별한 종류의 사랑이다. 몸을 구푸리고 희생하며 섬기는 사랑, 불친절한 자들에게 친절한 사랑, 감사할 줄 모르고 자격이 없는 자들에게 후하게 베푸는 사랑이다. 은혜는 하나님이 베푸시는 값없고 과분한 호의며, 사랑스럽지 않은 자들을 사랑하고, 달아난 자들을 찾으며, 희망 없는 자들을 구해 내고, 거지를 거름더미에서 일으켜 방백들 사이에 앉힌다(시 113:7-8).
---「5. 성경의 메시지」중에서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인 만큼이나 사람의 말이기도 하다.…성경이 하나님의 저작인 동시에 사람의 저작이라는 사실은 주의 깊게 지켜야 할 중요한 진리다. 한편으로, 하나님이 말씀하셨는데, 진리를 계시하고 인간 저자들이 오류를 범하지 않게 하셨으나 그 과정에서 그들의 개성을 파괴하지는 않으셨다. 다른 한편으로, 사람들이 말했는데, 자신들만의 능력을 자유롭게 활용했으나 그 과정에서 하나님의 메시지를 왜곡하지는 않았다. 이들의 말은 실제로 이들 자신의 말이었다. 그러나 이들의 말은 하나님의 말씀이기도 했다(지금도 하나님의 말씀이다). 따라서 성경이 말하는 것은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이다.
---「6. 성경의 권위」중에서
우리의 가장 중요한 선생은 성령이다. “해석학”은 성경을 해석하는 학문에 붙은 전문 용어인데, 진정한 성경해석학은 성경 자체의 본질과 일치해야 하는 게 분명하다. 성경 저자들이 자신의 충동에 따라 말하지 않고 성령의 감동을 받아 하나님께 받아 말했다면(벧후 1:21), 이들로 말하게 하신 바를 해석할 수 있는 분은 성령이다. 모든 책의 가장 훌륭한 해석자는 저자다. 저자가 무슨 말을 하려 했는지는 저자만 알기 때문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책은 하나님의 성령만이 해석하실 수 있다.
---「7. 성경해석」중에서
듣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다. 우리는 하나님이 말씀하셨고, 하나님의 말씀이 성경에 기록되었으며,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고 믿는가? 그렇다면 듣는 시간을 아까워해서는 안 된다. 대신에, 현대 생활의 극심한 생존 경쟁에 맞서 잃어버린 묵상 기술을 회복하려 노력해야 한다. 현대 교회에 필요한 것은 성경을 수박 겉핥듯 건성으로 대하는 태도가 아니라 “이 말을 너희 귀에 담아 두라”(눅 9:44)는 우리 주인의 권고에 주목하는 태도다.
이렇게 하는 데는 특별한 비법이 없다. 그저 시간을 들이고, 바쁜 일상에서 의도적으로 벗어나 성경이 우리의 마음에 박혀 우리의 모든 생각을 다스릴 때까지 거듭거듭 성경을 펼쳐야 한다. “복 있는 사람은…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다(시 1:1-2; 119:97; 수 1:8).
---「8. 성경의 사용」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