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속에서 가끔 우리는 마음에 공격성이 가득 차 있는 자신을 발견할 때가 있다. 발 디딜 틈 없는 지하철 안에서 낯선 사람과 눈이 마주치거나 부딪쳤을 때, 운전중 깜빡이도 켜지 않은 채 갑자기 끼어들기를 할 때, 카페에서 나보다 늦게 주문한 손님의 커피가 먼저 나올 때, 봉사료 10퍼센트를 따로 받는 레스토랑에서 서비스가 만족스럽지 못할 때 등 우리는 갑작스레 화가 치밀어 오르고, 이를 있는 그대로 표현하고 싶은 욕구에 시달린다. 그럴 때 불평과 짜증을 밖으로 표출하며 분풀이를 하지 말고, 잠시 내 마음을 돌아보자. 아마도 이는 타인에 대한 화나 불평불만이 아닐지도 모른다. 오히려 이것은 나의 결핍감과 지친 마음이 불평불만이 되어 잘못된 방향으로 표출되는 것일 가능성이 크다. 자신의 마음을 돌아보고 무엇 때문에 지치고 화가 났는지, 지금 나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내 감정과 욕구를 더 분명하게 살피고 지친 마음을 보듬어주자.---1부 중에서
누군가의 마음에 흐르는 서러움, 외로움의 모습은 닮아 있다. 어떤 이야기를 해도 “그래, 그럴 수 있겠구나”, “정말 그렇겠구나” 하며 공감해주는 단 한 사람이 필요했던 것이다. 내 마음을 있는 그대로 포근하게 담아주는 그런 사람이 없을 때, 우리는 서러워지고 외로워지고 자신의 진짜 감정을 만나기 힘들어진다. 대신 자신의 진짜 감정을 거부하고 진짜 감정과 멀어지게 되는 것이다. 진짜 감정과 만나기 위해 우리에게는 내 마음의 이야기를 들어줄 대상과 내 마음을 직시하는 용기와 인내가 필요하다. 사람들이 자신의 진짜 감정과 만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을 하면서 나는 상담실 안팎에서 자주 마주하게 된다. 진짜 감정, 진짜 마음을 어디에 붙여두어야 할지 몰라 허둥대는 사람들의 방황을 말이다.---1부 중에서
세계 대통령이 되겠다는 등 실현 불가능한 욕망을 내비친 대학생들은 하나같이 우울이나 불안, 혼란스러움과 같은 심리적 증상에 시달리고 있었다. 왜냐하면 이들은 순진한 초등학생이 아니므로 현실감각 없이 이런 꿈을 꾸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들이 현실감각을 가진 대학생이라는 사실은, 이런 꿈을 꾸는 자신을 무척이나 버겁게 느껴지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꿈을 꿀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이들은 우울하고 불안하고 혼란스럽다고 했다. 대학에 들어와 자신이 꿈꾸는 이상과 자신이 발을 내디뎌야 할 현실 간의 차이가 마치 양극단으로 질주하는 2대의 오토바이 사이의 거리만큼 크고, 그 차이가 점점 커져가는 것을 느끼면 우울해진다. 그리고 이들은 자신이 느끼는 현실적인 자신의 모습이 자신의 야망에 비해 위축되고 초라하다는 느낌이 강할수록 자신을 보호하고 우월감을 느끼고 싶기 때문에 더 큰 꿈으로 자신을 무장하기도 한다.---2부 중에서
언제 어디서든 자기가 가진 능력을 발휘하고 그 능력에 대한 정직하고 투명한 평가를 받는 것은 우리 모두가 바라는 것이고, 자신이 가진 기술과 능력을 갈고 닦으려고 노력하는 이유일 것이다. 자신감이 없을 때에는 왜 자신감이 없는지를 먼저 파악하고, 혹시 자신감이 없으므로 나에게 주어지는 단기적 이득 때문에 내가 ‘자신감 없음’을 선택한 것은 아닌지 돌아보자. 어떤 심리학자가 말했다. “사람은 누구나 이것만큼은 자신이 다른 사람보다 뛰어나다고 생각하는 것이 있어야 행복할 수 있다”고 했다. 이렇듯 자신감은 우리의 행복과 밀접한 관련을 가지는 개념이다. 더 행복해지기 위해 자신감을 갖자.---3부 중에서
중독자들은 각자 다양한 계기로 어떤 것에 중독되고 인생을 망치는 악순환의 고리에 휘말리게 되지만 그런 중독의 뿌리에는 주체적으로 삶을 사는 목적의식과 의미사실이 자리 잡고 들어서 있는 것 같다. 때로는 삶이 공허하고 무의미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럴 때 우리는 그 헛헛함을 채울 수 있다고 속삭이는 무언가에, 어떤 행위에, 어떤 대상에, 어떤 감정에 자신을 걸쳐놓고 삶에 대한 책임감을 유보하고 회피하고 통제력과 자제력을 잃게 된다. 중독은 중독이다 혹은 중독이 아니다의 문제가 아니라 차원과 정도의 문제이기 때문에 섣불리 진단을 내리기도, 쉽게 고치기도 어렵다. 중독의 종류와 그 정도의 강도를 떠나서 중독은 우리를 좀먹고 병들게 만든다. 내가 나를 통제할 수 없고, 중독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해 무기력해지다가 결국에는 나 자신을 싫어하게 만드는 것이다.---4부 중에서
‘나’는 물리적이든 심리적이든 세상에서 유일하게 ‘나’에서 분리되어 객관적으로 나 자신을 볼 수 없는 사람이다. 반면에 ‘나’와 별개인 어떤 사람의 나에 대한 말 가운데에는 나라는 사람이 어떻게 보이는가에 대한 외부 시선을 대변해주는 말이 있다. 그런 말을 잘 듣는다면 ‘내가 아는 나’에 ‘내가 못 보는 나꾡에 대한 관점을 추가해 ‘나’를 더 분명하게 바라볼 수 있다. 그만큼 ‘나’를 잘 알게 된다는 것이다. ‘나’를 잘 아는 사람은 ‘나’에 대해 잘 몰라 불확실한 안개 속을 헤매는 사람보다 훨씬 더 굳건한 자신감으로 스스로를 무장한 채 세상에 나아갈 수 있다. 잘났든 못났든 ‘나는 나’이고 그런 내가 나를 정확하게 알고 있으니, 이제 할 일이란 못난 부분은 고쳐가고, 잘난 부분은 발전시키면 되니 말이다. ‘나’에 대한 관점은 다음과 같이 크게 4가지로 나누어볼 수 있다. 밝은 영역은 나도, 다른 사람도 알고 있는 나이고, 어두운 영역은 나도, 다른 사람도 모르고 있는 나이다. 개인 영역은 다른 사람은 모르고 나만 알고 있는 나이고, 마지막으로 눈먼 영역은 나는 모르고 다른 사람만 알고 있는 나이다.
---5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