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에서]
살다 보면 현실이 거짓이었으면 하는 때가 있다. 의도하지 않은 거짓이거나 부정하고 싶은 현실이 그러할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내게 거짓말 같은 현실이 들이닥쳤다. 만약 지금 평범한 삶을 살고 있다면, 결혼을 했을 것이며 두 아이의 엄마가 됐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조금 특별한 모습으로 서른일곱이 되었다. 우연히 먹은 항생제의 부작용으로 하루아침에 희귀병 진단을 받았다. 여자로서 가장 예쁜 나이 서른하나에 24시간 간병이 필요한 중증 환자가 되어 버렸다. 그건 나에게도 가족에게도 청천벽력과 같은 일이었다. 갑작스러운 발병과 1년이 마치 10년처럼 느껴졌던 지난 7년간의 투병 생활. 그 사이 열아홉 번의 수술은 내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 놓았다.
거짓말처럼 건강과 직장, 꿈과 젊음을 잃었다. 날씨나 영화처럼 인생에도 예고편이 있다면 나는 어떤 선택을 했을까? 청춘에 갑작스럽게 찾아온 고난과 시련, 길고 긴 투병 생활, 끝이 보이지 않는 절망과 고통의 날들이 나를 찾아왔다. 매일 아침 눈을 뜨면서 거짓말 같은 현실과 마주한다.
[에필로그에서]
그동안 블로그에 틈틈이 글을 써 갔지만 출간을 작정하고 글을 쓴 건 얼마 안 되는 일 이었다. 돌이켜 보아도 보이지 않는 눈으로 그 많은 원고를 어떻게 써 내려갔는지 감회가 새롭다. 한번은 원고를 수정하려고 엄마에게 가져갔는데 한동안 아무 말씀이 없으셨다. 30 장 분량의 원고가 모두 백지 상태였던 것이다. 29화였던 것 같다. 나는 바보같이 볼펜이 안 나오는지도 모르고 글을 썼던 것이다. 그러나 몇 번의 시행착오는 오히려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들어 주었다. (중략)
글을 다시 수정하고 다듬는 일은 험난했다. 건강상의 문제가 없었다면 일주일에 끝낼 수 있는 일 이었다. 글을 다시 손보기까지 49일 이 소요되었고, 나는 그 사이에 한차례 응급실에 다녀왔다.
그때마다 고칠 수 있는 글이 바로 눈앞에서 사라져서 답답함에 미칠 것 같았다. 수십 번, 수백 번 인내심을 요 구하는 작업이었다. 또한 긴 투병 생활이 내게 그랬다. 깊은 상실감으로 좌절과 실패의 나날을 보내면서 죽음에 대해서 생각해 보지 않은 적이 없었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어떤 날은 수백 번, 수천 번 그런 생각을 했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보다 어떻게 고통 없이 죽을 수 있을까. 그런데 한 번씩 그런 마음을 먹으면 이상하게도 살아 있는 것이 더 리얼하게 느껴졌다. 손가락 마디마디의 관절이 움직이고, 나의 체온은 따뜻했고, 호흡을 할 때마다 나는 소리 없이 숨을 쉬고 있었다.
나는 살아 있었다. 아직 죽지 않았던 것이다. 하나님은 왜 내게서 두 눈을 가져가셨을까. 나에게 문제는 눈 의 병보다 마음의 병이 먼저이기 때 문이다. 나에게 문제는 감사하는 마음보다 불평불만이 먼저이기 때문이다. 나에게 문제는 타인을 사랑하는 마음보다 미워하는 마음이 먼저이기 때문이다. 나는 알고 있다. 이 세상에서는 두 눈으로 바라보는 공허함보다 맑은 영혼을 소유하는 것이 더 낫다 는 것을…. 정말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나는 지금도 여전히 이전의 내 일 을 사랑하고 옷을 좋아한다. 비록 옷과 원단의 디자인이나 단추의 크기, 지퍼의 품질이나 스티치의 간격을 두 눈으로 볼 수는 없다. 그러나 나는 지금도 원단의 촉감이 좋고, 재봉틀의 기름 냄새가 그립고, 여전히 동대문에 가고 싶다. 어쩌면 영영 다시는 돌아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제는 나에게 새롭게 주어진 하루를 뜻깊고 사려 깊게 살고 싶다. 나의 저 자이고 완성자이신 하나님 아버지에게 전적으로 의지한다. 나는 두렵지만 하나님을 신뢰한다. 그분의 다음 페이지를 기대하고 소망하며 『일곱 번째 봄』을 덮는다.
--- 본문 중에서
나는 한 번도 ‘하나님, 왜 하필 저예요?’라고 묻지 않았다. 어쩌면 하나님의 달력에는 이 모든 일들이 계획되어 있었으리라. 나는 나대로 치료의 시간을 조용히 인내했고 가족은 가족대로 각자의 마음을 추스르며 그 시간을 묵묵히 감당했다. 우리는 하나님에게 온전히 반응하며 가시밭 같은 시간을 걸었다. 오직 하나님의 관심만이 절대적으로 절실했던 그 시간, 우리는 끊임없이 기도했다. --- p.42
의료진과 가족들 모두가 내게는 쉬쉬했지만 이 모든 상황을 무서운 직감으로 알 수 있었다. 눈으로 보는 것보다 몸으로 느끼는 것이 훨씬 더 크기 때문이다. 그러나 엄마와 아버지, 오빠와 언니는 이 모든 상황을 침착하게 견뎠다. 지난 30년 동안 겪어 온 가족이지만 지금처럼 이렇게 커 보였던 적은 한 번도 없었던 것 같다. 어떤 역사적인 위인보다 우리 가족 구성원 하나하나가 더 존경스럽게 느껴졌다. --- p.52
서른한 살의 봄이었다. 탱글탱글한 웨이브, 희고 앳된 피부, 화장 을 해도 안 해도 예쁜 얼굴, 뭘 걸쳐 입고 나가도 예쁜 시절, 내 생애 가장 짧고도 아름다웠던 순간이었다. 그런데 정작 그 흔한 셀카 한 장 찍어 놓지 못했다. 그게 가장 슬프고 아쉽다. 가끔은 제일 잘 나온 사진을 크게 확대해서 병원 침대 머리맡에 붙이고 싶었다. 지금 이렇게 초라하게 벌거벗은 모습이 내 전부는 아니라고 말이다. 그러나 그것이 누구를 위한 것일까. 엄마와 다른 가족에게 더 큰 상처가 될 뿐일지도 모른다. --- p.57~58
버스 정류장의 배차 시간표와 규칙적으로 바뀌는 신호등, 거리를 오고 가는 사람들, 대형마트의 오픈 시간 그리고 가로수의 무성한 초록 잎사귀들과 밤마다 쏟아지는 하늘의 별과 파도에 쓸려 갔다가 밀려오는 바닷가의 모래알. 모든 건 제자리에 그대로였다. 그러나 나의 삶은 모든 것이 변했다. 피부를 잃고, 머리카락을 잃고, 눈썹을 잃고, 손톱을 잃고, 발톱을 잃었다. --- p.68
늦은 밤 퇴근하고 병실에 들른 오빠에게 처음으로 기도 부탁을 했다. 예수님 한 분밖에 생각나지 않았다. 잠시 머뭇거리던 오빠의 기도가 시작되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감사할 것 하나도 없을 것 같은 이 상황에서도 주님을 먼저 찾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이처럼 처참한 상황에서도 오빠의 기도는 감사로 시작되었다. 오빠, 언니, 나. 우리 삼 남매는 큰소리도 내지 못하고 숨죽여 하염없이 울었다. 그날부터 나에게도 새로운 감사 찾기가 시작되었다. --- p.80~81
병원 생활은 내게 늘 두 마음을 품게 했다. 치료를 잘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별로 살고 싶지 않았다. 그것이 솔직한 심정이었다. 자꾸만 죽음에 관한 감정이 습관처럼 드리워졌다. 슬프거나 기쁘거나 좋거나 싫은 것도 없었다. 약동하는 젊음을 완전히 잃어버린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 커피를 한 잔에서 두 잔으로 늘렸다. 그 커피가 어찌나 맛있던지 짜릿한 희열까지 느껴질 정도였다. 정말 우습지만 커피를 마시기 위해서라도 내일을 기대하고 싶어졌다. 삶의 연장은 사소한 발견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리라. 우울함은 오늘에서 그치자. 내일까지 그것을 넘기지 말자. --- p.113
스티븐 존슨 증후군. 처음 이 병이 발병하자 사람들은 내게 욥 같다고 말했고, 눈 치료에 이어 귀 치료까지 병행하자 사람들은 내게 헬렌 켈러 같다고 말했다. 욥은 온갖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고 역경을 이겨 낸 사람이고, 헬렌 켈러는 볼 수도, 들을 수도, 말할 수도 없었지만 장애를 딛고 큰 업적을 남긴 위인이다. 어떤 사람은 욥보다 나의 고통이 더 크다고 말했고, 어떤 사람은 헬렌 켈러보다 나의 아픔이 더 깊다고 말했다. --- p.264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정말 놀랍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잃고 쓸모없어진 것 같은 나를 잊지 않고 사용하셨다. 결핍은 내게 장애가 아닌 오히려 원동력이 되었다. 하나님은 내가 무능력함을 인정하고 당신에게 전적으로 모든 것을 구하고 의지할 때 나를 도우셨다. 볼 수 없지만 글을 쓰고, 기타를 치고, 영어로 말한다. 내 영혼에 불꽃같은 열정을 심어 주시고 강한 의지로 이끄시는 그분은 이 세상에 단 한 분이시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곧 유일무이하신 하나님만이 능력자 되심을 삶을 통해 체험한다. 이제야 비로소 내가 진짜 좋아하는 일을 찾았다. 나는 꿈꾸고 하나님은 일하신다. --- p.274
내게 찾아온 병은 불행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특별하게 선택하신 선물이라는 것을 알았다. 나는 더 이상 초라한 모습 때문에 움츠러들지도 않았고 세상의 잣대로 내 모습을 비교하지도 않았다. 하나님의 사랑은 잃어버린 나의 평정심을 되찾게 해 주었다. 삶은 동화처럼 원하는 대로만 펼쳐지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실패한 삶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우리가 추구하는 행복한 삶이란 무엇일까? 큰 집과 좋은 차, 겉치레 학위가 전부일까? 우리는 흔히 행복하면 감사한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감사한 마음을 먼저 가져야만 행복해질 수 있다. 인간의 무한한 욕심은 끝도 없기 때문이다. 행복은 대단한 것에 있지 않다. 아무 때나 빨래가 하고 싶을 때 세탁기를 작동시키는 것이고, 가슴이 답답할 때 운동화를 꺼내 신고 무작정 달리는 것, 뜨거운 햇살 아래서 얼음이 가득 담긴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들고 길을 걷는 것, 냉장고에 계란이 똑 떨어졌을 때 슬리퍼를 질질 끌고 동네 슈퍼를 기웃거리는 것, 저녁 샤워를 마치고 푹신한 침대에 대자로 누워 자는 것, 이 외에도 나의 일상 속에서의 사소한 행복은 너무도 많다.
--- p.2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