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통해서 낯선 사람, 낯선 풍경, 낯선 이야기들을 만났으면 한다. 잘 알고 있는 사람, 풍경, 이야기라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낯선 거리, 낯선 골목, 낯선 세계에 가 있는 경험을 하기를 바란다.
여러분이 이 여행에서 보고 들은 사건들, 사람들, 시간들은 잊어버리더라도, 익숙한 것과는 다른 세계가 존재할 수 있겠구나 하는 기대와 다른 세계에 대한 감수성, 그리고 그런 기대와 감성을 지닌 새로운 나에 대한 설렘을 갖게 된다면, 여행 안내자로서는 더할 수 없는 기쁨이다.---p.6
단군 신화는 처음으로 고대 국가를 세운 지배 세력이 자신들의 지배를 정당화하려는 통치 이데올로기를 담고 있기도 하다. 첫째, ‘천손사상’天孫思想이다. 여기에는 국가를 건국한 지배 세력은 하늘신의 뜻을 이어받은 하늘의 자손이므로 감히 이러한 신성한 권위에 도전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담겨 있다. 둘째, ‘홍익인간’ 사상이다. 하늘의 자손이 국가를 세운 이유는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려 함’이므로 지배 세력이 백성들을 다스리는 것은 정당하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마지막으로, 고대 국가를 세운 지배 세력은 하늘의 자손으로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려고 나라를 세우고 다스리는 것이므로 백성들은 호랑이처럼 인내심이 부족하여 조급하게 굴지 말고 곰처럼 묵묵히 참고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p.23
불국사는 신라인들이 생각하는 불교의 이상 세계를 건축으로 구현해 놓은 절이다. 크고 작은 자연석을 잘 다듬어 견고하게 섬돌을 쌓고 그 위에 불국을 조성하였다.---p.74
삼별초는 진도를 중심으로 서남해의 해상권을 장악하고, 3개월 뒤에는 제주도까지 점령한다. 전라도와 경상도 연안 30여 개 주요 섬들을 장악하고, 내륙 지역으로 영향력을 확대해 나갔다. 나아가 승화후 온을 ‘고려 황제’라고 칭하여 자신들이 고려의 정통 왕조임을 자처하였다. 스스로 독립 국가임을 표방한 것이다. 실제로 일본에 사신을 보내기도 하였는데, 그 외교 문서에 “강화도에 천도하여 40년을 지냈고, 또 진도로 천도하였다.”고 하였다. 삼별초 집단의 위세가 커지자 호응하는 지역과 사람들도 늘어 갔다.---p.108
원나라에 오가는 상인들은 중국어를 사용하였다. 개경에는 중국어를 가르치는 학교가 있었다. 중국인이 세웠는데 교사는 중국인이고 학생은 고려인과 중국인 반반이었다. 대단히 강도 높은 교육이 이루어져 새벽부터 저녁까지 가르쳤다. 교재는 주로 『논어』, 『맹자』, 『소학』이었고 글쓰기, 시 읊기, 읽기, 뜻 새기기를 차례로 배웠다. 특히 외우기에 집중했는데, 저녁마다 제비를 뽑아 시켰다. 외우지 못한 사람은 종아리 세 대를 맞았다. 이렇게 해서 여섯 달에서 1년 정도 배우면 중국어를 웬만큼 할 수 있었다.---p.112~113
19세기 조선은 세도 정치의 혼란이 극에 달하였다가, 외세의 침입에 시달린 실망의 시대였다. 하지만 양반도 아닌 낮은 신분의 김정호가 「대동여지도」와 『대동지지』라는 대작을 만들어 낼 수 있을 정도로 역동적인 희망의 시대이기도 하였다.---p.179
개항 이후 정부와 개화파는 부국강병을 위해서라며 적극적인 문호 개방과 근대화를 부르짖었다. 그렇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부국강병은 간데없고 민중의 삶과 나라의 경제는 외국 자본의 경제 침탈 앞에 맥없이 무너졌다. 그것은 서구 열강의 침략적 성격을 깨닫지 못하고, 아무런 사전 준비나 가난한 백성의 현실을 고려함도 없이 문호를 개방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19세기판 ‘세계화’의 결과였다.---p.198
일본에 기울어진 초기 개화파의 근대화 방식은 독립 협회에도 그대로 계승되었다. 그 때문에 이들은 일본의 침략 속셈에 스스로 장님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이 점은 독립 협회의 많은 구성원이 국권 피탈을 전후하여 친일파로 변질되는 데서도 알 수 있다.---p.215
1970년대 여성 노동자들이 싹 틔운 노동자도 인간이라는 권리 의식은 이후 우리 사회를 더 인간적이고 바람직하게 만드는 밑바탕이 되었다. 불과 20~30년 전까지만 해도 노동자들은 직장에서 일하다 손목이 잘려도 제대로 된 보상을 받을 수 없는 ‘살아 있는 기계’에 불과했는데, 이런 것에 비하면 많은 것이 변한 것이다. 이 같은 변화, 즉 더 좋은 환경에서 일할 수 있게 된 것은 머리채 붙잡혀 매 맞고, 똥물을 뒤집어쓰면서도 인간의 권리를 외치며 싸운 1970년대 여성 노동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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