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 즉 순수한 무력은 역사상의 어떠한 인자가 그랬던 것보다도 더 많은 문제를 해결해 왔다. 그 반대 의견은 가장 나쁜 종류의 희망적 관측에 불과하다. 이 기본적 사실을 망각한 종족은 언제나 그들 자신의 생명과 자유라는 대가를 치러야 했던 것이다. - <스타십 트루퍼스>
<스타십 트루퍼스>의 가장 큰 특징은 내부인인 군인의 입장에서 군대, 특히 육군의 조직과 병영 생활을 상세하게 다루고 있다는 점이며, 본서는 70년대 들어 흔히 <밀리터리 SF >로 불리게 되는 SF 하위장르의 도화선 역할을 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미국과 소련이 장악한 미래의 식민 성계에서 전통적인 용병들이 활약하다는 <코도미니움(CoDominium)>시리즈의 제리 퍼넬을 위시해서, 데이빗 드레이크, 조엘 로젠버그, 존 스티클리, S.M.스털링, 데이빗 웨버로 이어지는, 극우는 아닐지 몰라도 우익적/애국적/국가주의적 색채가 강한 작가들 모두가 본서와 고든 R.딕슨의 Dorsai!(1959)를 밀리터리 SF의 효시로 꼽고 있다. 본서 이후로 하인라인은 밀리터리 SF로 간주할 수 있는 작품을 한권도 쓰지 않았지만, 하인라인이 이 작품 하나만으로 이 하위장르의 실질적인 원형을 제공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리 틀린 지적은 아니다. 정치적 성향이 다른 SF 작가들에게 끼친 영향 또한 적지 않았다. 베트남 전쟁에 참전해서 중상을 입고 제대한 조 홀드먼의 휴고/네뷸러상 수상작인 <영원한 전쟁>(Forever War)은 밀리터리 SF의 체제를 유지하면서도 하인라인의 완벽한 안티테제를 제시하는데 성공하고 있으며, 해리 해리슨의 풍자 SF <은하영웅 빌>(Bill, the Galactic Hero)(1965)은 <스타십 트루퍼스>의 패러디를 중심으로 이 하위장르를 통렬하게 규탄한 걸작이다. 여담이지만 1960년대에 이미 하야카와 SF 문고에서 번역되어 수십 쇄를 찍는 베스트셀러가 된 일본어판 <스타십 트루퍼스>의 경우에는, 일본군 하사관 출신이자 일본 SF 초창기의 주역 중 한 사람이었던 번역자 야노 데츠의 (의심할 길이 없는) 우익적 성향이 번역을 통한-오역은 둘째치고, 필요 이상으로 일본 육군의 군대식 표현을 다용했다고 한다-하인라인의 '우경화'로 이어져 많은 오해와 논란을 낳았다. 일본에서 오역투성이의 이 야노판이 여전히 정전으로 남아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번역의 중요성을 잘 보여 주는 예라고 할 수 있겠다.
정치적인 주장과는 별도로, 본서의 가장 큰 매력은 역시 하인라인이 '발명'한 외삽적 하드웨어인 강화복(powered suit)이다. 현재의 과학기술에 대한 사유를 바탕으로 미래의 보병이 조우할지도 모르는 상황을 상정하고 고안된 이 병기는 본문의 리듬을 깨는 단조로운 정치논의('마르크시즘의 찬란한 기만성' 운운하는 장면에서는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지만)를 충분히 배상하고도 남을 정도로 매력적이며, 이 도구(gadget)가 후세의 작가와 애니메이터들에게 얼마나 많은 영향을 끼쳤는지는 SF팬들 자신이 제일 잘 알고 있다. (애니메이션의 경우, 일본어판의 삽화를 담당했던 일본 굴지의 SF 일러스트레이터 카토 나오유키의 메캐닉 디자인에 영감을 얻은 <모빌수트 건담>이 그 효시가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인라인의 정치적 주장보다는 역시 강화복의 아이디어에 매료된 것이라고 믿고 싶지만, 본서는 미국의 사관생도와 군사 과학자들 사이에서도 베스트셀러로 자리잡았다. 9일설에 의하면 필독서 목록에 올라 있다고 한다). 하인라인이 묘사한 강화복의 첨단기술과 전술 운용체계는 현재 미군이 추진중인 신형 디지털 보병 전투 시스템인 랜드 워리어 프로그램 및 MIT가 미 육군성의 의뢰를 받고 추진중인 외골격 피복 개발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근에 미 특수부대가 아프가니스탄에서 수행한 대 탈레반 전쟁의 교훈을 바탕으로 미군이 (정확하게는 럼스펠트 일파가) 수립한 소규모 국지전 교리가 '땅 속에 숨은' 외계 거미들과의 전투와 놀랄 만한 유사성을 가지고 있는 것은 단순한 우연의 일치일까. (...)
- 해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