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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동의 길

반동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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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0년 02월 10일
쪽수, 무게, 크기 286쪽 | 444g | 148*210*20mm
ISBN13 9788975987823
ISBN10 8975987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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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관련자료 보이기/감추기

역자 : 정환용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졸업 후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을 졸업했다. 영국 쉐필드 대학교(Univ. of Sheffield) 대학원 도시 및 지역계획학과를 졸업(도시 및 지역계획학 박사)하였다. 전남대학교 경영대학(원)장, 한국지역개발학회장, 국토정책위원회 위원, 중앙도시계획위원회 위원을 역임하였으며 현재 전남대학교 경영대학 경제학부 지역개발학전공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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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역서는 헤르만 파이너(Herman Finer)의 반동의 길(Road to Reaction) 초판(1945년간)을 번역한 것이다. 이 책은 자유와 시장을 강조하는 하이에크(Friedich von Hayek)의 노예의 길(Road to Serfdom)에 대한 반론서이다. 아울러 본 역서는 개별적 자유는 계획사회를 지향하는 추세에 의해 위기에 처해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에 대한 고전적인 응답이다.
파이너(H. Finer)교수는 하이에크(Hayek)의 저서를 해체, 점검하고 사실에 대한 그의 궤변과 오류를 노출시키면서, 노예의 길(Road to Serfdom)은 반동적 선언서(reactionary manifesto)라고 규정했다.
하이에크(Hayek)의 중심논제는 모든 형태의 집산주의는 독재정치로 인도하고, 증가되는 정부계획과 경제의 통제는 독일, 이태리, 그리고 러시아는 노예의 길로 가고 있는 대표적인 나라로서, 독재에 이르는 것으로 보았다.
파이너(Finer)는 하이에크(Hayek)의 노예의 길(Road to Serfdom)은 민주국가에서 출현한 민주주의에 대한 가장 사악한 비판이라고 공격하면서, 독재의 진정한 대안은 경제적 개인주의나 경쟁이 아니고, 모든 인민에 책임을 지는 민주정부라고 주장한다.
경제학에서는 시장에 대한 개입을 계획으로 이해하면서 가급적이면 경쟁이 자유롭게 이루어지도록 개입의 최소화를 주장하는 시장주의자와 개입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개입주의자들 사이의 논쟁가운데 전자(前者)에 대한 주장은 비교적 활발하게 소개되고 있으나, 후자(後者)의 주장은 상대적으로 덜 소개되고 있다. 이는 세기의 저술로 간주되고 있는 하이에크(Hayek) 교수의 노예의 길(Road to Serfdom)의 영향이 중요한 역할을 했을 것으로 본다.
논의의 균형을 위해 하이에크(Hayek)의 저서에 대한 본격적인 반론서인 본 역서가 거의 소개되지 않은 현실을 안타깝게 생각하다가, 관련주제에 대해 관심을 가진 사람들을 위해 본 반동의 길(Road to Reaction)에 대한 번역을 하게 되었다. 본 역서와 하이에크(Hayek)의 역서를 비교평가하여, 계획의 경제적 적법성논거확립에 일조하고, 계획이론의 정립에 보태움을 주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본서를 번역함에 있어 우리말로의 의미가 통하지 않는 경우를 제외하고, 가급적 의역을 삼가고 직역(直譯)하여 저자의 뜻을 전달하려했다. 그러나 의미전달을 위해 필요한 부분에는 괄호안에 한자(漢字)를 넣어 이해의 편의를 도모했고, 독자의 이해를 위해 역자의 간략한 설명(說明)이 필요한 부분은 괄호 안에 밑줄을 쳐서 나타냈다. 본서 각 페이지의 측면번호(側面番號)는 원저의 페이지를 나타낸다. 그리고 본서의 말미에 역자의 해제(解題)를 통해 본서의 저술배경, 주요 내용, 의미 등을 간략히 제시하여 독자들의 이해를 돕고자 했다.
본서를 번역함에 있어 여러분의 도움을 받았다. 학과교수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경제학과 홍덕기 교수의 도움은 특히 유용했다. 그리고 본서의 출간을 도와준 전남대학교출판부 관계자 여러분께도 감사한다. 아울러서 초고의 내용을 일부 교정해준 아내(김혜경)의 도움은 큰 힘이 되었다.
(/ 서문 중에서)

제1장 그제와 내일

“그들은 어제는 기억할지 모르지만, 그제는 잊어버린다.” 이는 이 더블류 켐머러(E. W. Kemmerer) 교수가, 1931년 상원에서 대공황을 유발했던 기업의 우둔한 오류들을 사람들이 기억할 것인가 여부에 대해 질의를 받았을 때, 했던 논평이었다. 그 질문은 매우 중요했는데, 왜냐하면 만일 민주주의를 잊으면, 민주주의는 잊혀 질 것이고, 그것을 무시하는 경제세력들에 의해 분쇄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제2차 세계대전에의 개입에 따른 비극에도 불구하고, ...경쟁질서의 그 비극적 실패는 오랫동안 계속하여 기억될 것은 확실하다. 대공황의 가장 중요한 역사적 결과는 현대경제체제의 관리자로서 제약 없는 경쟁의 만성적 결함들에 대한 냉혹하면서도, 구체적이며, 논쟁의 여지가 없는 예증이었다. 모든 사람에게 주는 가장 통렬한 교훈은 기대한데로 일을 하도록 하는 질서의 능력에 대한 일반적인 신뢰의 상실이었다. 어떤 시점에 그리고 무언가 특별한 이유로 일에 참여하고 있는 모든 집단들은 그것에 대한 불신과 그것에 내재하는 불안감을 표현하였다.
불경기에서 사기업의 실패는 작고 인과적인 탈선이 아니었다. 저축들, 가정들, 그리고 농장들이 날아가 버렸다. 생명보험은 현재의 생활비와 부채를 위해 현금화할 수밖에 없었다. 교육자금(만일 그들이 애정을 가지고 예치했던 은행에서 잃어버리지 않았다면)도 인출하여 사용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기아를 경험했고; 더욱이 영양실조를 받았다. 필수적인 의료처치는 연기되어야 했다. 시와 읍에서의 사회적 경비는 공공사업이 경기진작을 위해 시행될 때까지 갑자기 중단되었다. 무섭고 위협적인 요기(妖氣)처럼 모두를 통러싸고 있는 것은 공포, 불안, 그리고 굴욕이었다. 모든 민간과 공공의 청문회에서 증명된 것처럼 결함은 희생자들 간의 개별적 특성에 의한 결함의 하나라고 말하기 어렵고, 그것은 남자들과 여자들이 일자리를 구걸했지만 사기업에서는 그것을 제공할 수 없었던 체제의 결함이다. 국가산업협의국(National Industrial Conference Board)에서는 대공황(大恐慌)이 가장 심각했던 시점에 11,864,000명이 실업자였고; 그 때가 1933년이었다고 추정했다. 1930년에 그 숫자는 거의 3,000,000이였고; 그 이후로 1941년까지 실업자 수는 6,413,000명 이하가 되지 못했다. 보다 높은 수치를 제시한 다른 추정들도 있다.
실업의 크기와 상응한 것은 생산의 손실이었다. 만일 1929∼1937년 사이에 매년 2백만 명의 실업자만 있었다면, 미국은 해당된 9년간에 실제 생산한 것 보다 2천억 달러(1929년 가격)가치 이상의 재화를 생산할 수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어졌다. 이는 1929년 미국국민총생산의 2배반에 해당하는 것이다. 그것은 또한 1929년의 영국, 캐나다, 호주, 남아프리카, 뉴질랜드, 그리고 독일 총소득의 4배에 해당하는 양이다. 불황의 해(관련국가에 따라 1932년 또는 1933년)를 1929년과 비교하면 미국이 국민소득의 51%의 손실을 나타냈고, 독일 41%, 프랑스 19%, 영국 12%의 손실을 각각 보였다. 다른 곳에서도 20∼30%의 감소가 보통이었다. 1932년에 전 세계적으로 2천5백만 명 이상의 공업노동자들이 실직했으며, 가족까지를 포함하면 1억 인구가 궁핍에 처해있다고 말할 수 있다.
파국처럼 놀라웠던 것은, 그것이 단일의 그리고 비재발 사건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불황은 경쟁체제의 만성적 질병이다. 미국은 1854년과 1933년 사이에 20번이나 그러한 재앙들에서, 가혹함의 차이를 가지고, 고통을 받았고; 다른 국가들도 동등하게 괴로움을 당했다. 그러한 재앙은 또 다시 20번 발생할 수도 있다.
경제적 파멸의 하향예인(下向曳引)에 의해 만들어진 절망감은 전 세계의 정치체제에 심대한 시련을 겪게 했다. 아직 민주정부형태인 독일에서, 인민(특히 경제적 질서를 지배하는 사람들)은 독재에 의해 민주정부를 대체할 채비를 하고 있던 사람들을 돕기 위해 달려갔다. 프랑스에서는, 국가가 사회적으로 크게 분리되었다. 민주체제가 인민의 역사와 특성에서 보다 굳건한 기반을 가졌던 미국과 영국에서는, 거의 파국점에 이른 가장 심각한 궁핍함이 겨우 생존하고 있는 정체(政體)를 짓눌렀다.
양차대전 사이의 불황에 따라 나타난 두 가지 영향은 지울 수 없이 명백해 졌다. 즉, 경제생산에의 모든 참여자들은 그들의 정부에게 구조를 요청하기 위해 덤볐고; 불황원인들에 대한 공공 및 민간조사는 경쟁체제 내에서 이루어진 기업의 부정직함으로 인한 곤궁의 불가피성을 폭로했다. 미국에서, 생산과정에 종사하는 그 사람들이, 특히 대기업을 관리했던 그 사람들이, 경쟁체제를 그 효과에 있어 반사회적으로 만드는 것과 같은 방법으로 그들의 소명을 수행했다는 것을 논증했다. 그 논증은, 심문자들이 범죄입증을 바라지 않고 오직 설명과 해결책만을 발견하고자 하기 이전에, 과장이 없이, 여러 의회위원회(Congressional Committees)에서의 증언 및 반대심문과 관련된 수천 페이지에서 이루어졌다. 매우 상세한 심문에서는 금융업자·은행원·증권거래자들이 제한된 경쟁을 했고, 자유가격운동을 방해했으며, 국내제조업자들의 책임에 대한 고려도 없이 해외차관을 얻었고, 쓸모없는 공공사업을 위한 차관획득을 위해 외국정치가들에 뇌물을 주었고, 그들 자신의 시장을 잘못 예측했으며, 공공매입과 투자에 필수적인 정보를 왜곡했음을 드러냈다.
생산업자들은 가격을 떠받치기 위해 그들의 장비, 공장, 그리고 전문기술의 수용력이하로 재화의 산출을 제한했고; 그들은 장래고용과 소득위험에 대한 합리적인 고려이상으로 외상구입을 촉진했고, 반사회적인 특허제한조작에 의해 발명들을 억제했으며, 그리고 개인관련의 이윤목적을 위해서만 신용을 확대하고 축소했음을 나타냈다. 공공공급시설기업들, 특히 전력산업, 의 피라미드들에 대해 전략적인 재정통제를 모색하는 지주회사들은 여러 기업들에게 제공하는 실제의 서비스가 아닌 위장된 서비스에 대해 그들로 부터 지불금액을 착취했고, 때문에 그 회사들은 인민에 높은 부담금을 부과했다. 이러한 조치들은 여러 공공공급시설통제위원회(public utility control commissions)에 의해 그렇게 하도록 허가되었는데, 그 위원회들은 자신들의 비난을 해명하기 위해 소환된 위원장들의 괘변에 의해 잘못 인도되었다. 정치가들이 비공인서비스들에 대한 보상으로 유리한 투자를 할 수 있게 만들었다. 몇 개 주(州)의 신용 및 은행체계들은 법과 실제에 대한 건전한 기반이 없이, 그리고 평판이나 교정과정에 대한 보증서 없이도 거의 모든 지역에 존재했고; 투자에 대한 투기, 심지어는 도박, 와 기업적 해이도 만연했고; 보험회사들은 자신들을 인가한 주정부가 만든 건전기업기준에 의해 정해진 조사도 없었다. 민간과 도시의 막대한 부채는 판매업자들과 대금업자들의 고압적이고 파렴치한 운영에 의해 누적되었다.
서로 간에 이윤추구다툼이 있는 재정, 공업, 그리고 농업은, 종합적으로 모두가 유용한 사회에 대한 비전, 법령, 또는 분별력이 없이, 그들 간의 안정적이며 통합적인 관계의 발생을 방해하는 행동을 했다. 재앙에 대비한 사회적 준비가 없었다. 즉, 사실상 공적인 고용교류들이 없었고[후버(Hoover)씨는 재앙이 도래했을 때에도 이의 시행을 분연히 거부했다], 실업보험도 없었고, 공공사업이나 개발계획도 없었고, 공공보건계획도 없었으며, 실질적인 빈곤구제체계도 없었다. 인민들은 규제하지 않고, 보조받지 않은 경쟁체계가 번영 그리고 재산까지도 가져다 줄 것이라는 주장을 믿었다. 재앙이 거짓논증으로 보복할 때, 그것은 진정한 재앙이었다.
계속되는 절망적 상황에서 무엇보다 나쁜 것은 호경기에 경쟁(자신들이 만들었든 것)의 거대한 수혜자들인 대기업과 재정의 부정적인 반응이었다. 그들은 사태를 내버려두고 정해진 길로 스스로 흘러가도록 하는 것 이외에는 조사위원회들에게 제안할 어떠한 개선계획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거기에는 이미 팽배한 비공식적이며 허가받지 않은 독점적 관행 만일 정부가 그것의 설립을 돕고자 한다면, 다양한 산업들의 자치형태과 비교하여 경쟁에 대한 보다 신중한 제약이 아마 있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사물들은 제 갈 길을 찾아야 했다. 경쟁의 질서에 관한 선도적인 음모가들의 의회에 대한 조언은 “번영은 바로 모퉁이에 있다”라는 확신과 신(God)에 대한 의지로 백악관의 후버(Hoover)씨에 의해 완전하게 요약되어졌다. 그는, “신의 섭리에 따른 인도 하에, 그들[“세계사에 유례가 없는 성공을 이끈 지적·정신적 세력”]이 우리가 일찍이 알고 있는 것보다 크고 건전한 번영을 우리에게 돌려 줄 것이다”, 라고 1931년 6월 15일 선언했다. 불황의 홍수를 막기 위한 상공회의소의 주요 계획은 개별사업을 관리하기 위한 기업행동강령을 수립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기업들이 경쟁을 제한하고, 가격을 올리고, 그리고 생산을 제약할 수 있도록 수정된 독점금지법들(antitrust laws)을 상냥하게 추천하였다.
이 무계획성에 가장 어울리는 기념비는 기업에 대한 정부의 생명선인, 재건금융회사(Reconstruction Finance Corporation: RFC)였다. 1931년에, 그것은 “실업수당을 받는 자본주의”를 상징했지만, 그 이후로 그 기관은 발전하는 기업에 대한 정부지원의 매우 유망하면서 필수적인 도구가 되었다. 1931년 10월 4일 포춘(Fortune)지에 의하면, 후버(Hoover)대통령이 앤드류 멜론(Andrew Mellon: 은행가, 재무장관)씨 집에서 대은행장들과 만났을 때, “그 날의 후버(Hoover)씨의 과업은 괴로움이었을 것이다. 그 주위의 모든 것들은 번영시대의 그의 꿈들의 잔해들만 널려 있었다. …무언가 이루어져야 그것도 즉시 했다”라고 말했다. 5억 달러로 철도·은행·보험 및 저당회사들, 그리고 다양한 기타 재정기관들을 구제하기 위한 출발은 이제 빵을 구걸하는 사람들에 대한 대통령의 응답인, “조직화된 장치가 아니라 자유인이 우리의 목표”, 라는 말에 대한 희비극적 논평이었다. 기업의 경우, 이 한 번의 침체가 아니라 미국의 세속적 경험은 “소박한 개인주의”가 마비된 개인주의가 되었음을 보였다. 이 시대의 모든 기본적인 구제조치들이 사기업들의 필수적인 버팀목들이라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이 조치들은 RFC, 은행법, 농장대출, 사회보장, 공공시설의 통제, 농장보장, TVA, 연방준비체제의 개선, 안전과 교환위원회, 공정노동기준법, 재활성화된 반독점정책, 미공화국의 사회적 결핍과 미국산업의 구조·운영·장래에 대한 청문을 위한 큰 회의와 위원회, 주택법, 농장임대법 등이다. 만일 이 조치들이 취해지지 않았다면, 결과적으로 발생하는 불안과 비효율성으로 인한 공포의 헐떡거림이 있었을 것이다.
자연히, 그 조사들은 경제체제의 지치지 않은 노대국(老大國)들의 권위와 위신에 대한 믿음을 일소시켰다. 시장에서 이 사람들이 했던 것은 산뜻하고 모범적으로까지 간주되었지만; 그것의 결과들은 수백만 명이 수백만 명에 고통을 주기 때문에 교회·시민집단·대학, 그리고 미국사회의 대변인과 양심은 무언가를 해야 하고 만일 그렇지 않는다면 직·간접으로 고통을 받는 사람들은 러시아의 실험을 참고로 삼을 수도 있다는 것을 마지못해 선언할 수밖에 없었다!
한 상원위원회에서는, 조선과 관련기업들이 추가적인 주문을 위해 1930년 제네바(Geneva)에서 국제선박제한을 무산시키는데 최선을 다하도록 로비스트를 고용했음을, 밝혔다. 파리에서 이바르 크루거(Ivar Kreuger: 스웨덴의 성냥시장을 독점한 재벌)의 자살은 그 시대의 또 하나의 떠들썩한 추문이었?. 상원에서는 6개국에 적어도 140개의 대응회사를 가진 이 초 나폴레옹의(super Napoleonic) 창시자가 미국의 저명한 은행과 증권거래소의 지속적인 지지를 받았음에 주목하였다. 미국의 모든 은행과 증권거래업계에서 최고지위에 있는 300명의 저명인사들이 많은 외국정부의 대응독점들의 수익으로부터 발생된 수입으로 약 2억5천만 달러 가치의 채무증서를 매각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이 거대한 국제적인 가치거래를 조작했던 회사인 크루거와 톨(Kreuger and Toll: 스웨덴의 거대 건설회사)은 자신들의 자본, 해외특권의 가치, 예상수익률, 자신들의 보증에 대한 담보물, 그리고 자신들이 임명한 회계기업에 의해 공증된 회계에 대한 거짓정보로서 미국 내 그들의 협력자를 속였다. 이 조사에서도, 일부 조장적인 은행가들은 증권손실의 감액에 의해 연방소득세를 회피하였고, 증권을 낮은 가격에 친구에 팔았다가(법에서 차감 요구) 차후에 다시 매입한 것을 밝혀냈다.
공공공급시설지주회사들(public utility holding companies)의 시카고 조정자인 사무엘 인설(Samuel Insull: 전기공급시설에 대한 투자가로 대공황시 파산)은 메인(Maine)에서 오클라호마(Oklahoma)와 텍사스(Texas)에 이르는 전 미국에 퍼져있는 연결망을 통해 약 20억불을 현금화했고, 개인적으로 약 1억7천만 달러가치라고 알려진 사기범의 인도를 위해 그리스까지 줄곧 추적했어야만 했다. 그는 그의 주식을 물타기하고, 회사들로부터 서비스에 대해 과다징수하고, 자신들의 재산가치를 과대평가하고, 당시의 책임을 반영하면 무가치한 것임을 알고 있는 증권의 매입을 강요하는 방법으로 대중들을 속여 왔었다. 그는 공익에 대한 정치적 보호자를 기만했고, 뇌물로서 그들을 책임으로부터 이탈하게 해왔다.
상원은, 사기의 교묘함에 있어, 가장 세속적인 정치거물에 의해 행해진 것보다 단연코 월등한 대기업내의 오랫동안의 그늘진 금융관행과 “부정” 체계를, 세상에 밝혔다. 모간의 집(House of Morgan: 미국의 금융왕조)과 같은 대기업들은 은행가들로서 또는 투자상사들로서 계속할 것인가 여부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받았는데, 두 직업들 간의 제휴는 대중에 유익하지 않았었고 그들의 고객들에 대한 분별있는 책임을 보장하는데 있어 운영자의 양심을 너무 많은 조각으로 찢었다.
1938년 봄, 리처드 휘트니(Richard Whitney: 뉴욕증권거래소회장)는 총계 약 435,000달러의 고객유가증권의 횡령에 대한 중절도죄로 기소되었고; 거의 4백만 달러의 부채와 약간의 자산을 가진 그의 회사는 지불불능을 선언했다. 유가증권과 거래위원회(Securities and Exchange Commission)의 보고서에서는 “1926년까지 소급할 수 있는 고객유가증권 횡령에 비추어 볼 때 매우 얄굿게도, 그는 1928년부터 1929년까지 기업지도위원회의 의장이었고 1928년 오래 전부터 그 위원회의 회원이었다”라고 지적한다. 이 위원회는 뉴욕증권거래소(New York Stock Exchange) 소속의 한 위원회이었으며; 리처드 휘트니(Richard Whitney)는 1930년부터 1935년까지 그 증권거래소 자체의 회장이었었다. 그는 과거 여러 해 동안 그 거래소의 관리기구에서 다른 중요한 지위를 많이 차지했었다. 그에 대한 위원회의 소송과정에서 그는 과도한 개인적 지출을 했고; 자기회사의 재정조건에 대한 숨김없는 드러냄이 없이 친구들과 기업들로부터 오랫동안 차용했었으며; 의심이 생기거나 다른 방법이 편리할 때에는 수시로 허위 진술하였고; 자기기업의 정상적인 업무 외에 불건전하고 파괴적인 방법으로 금융투기를 수행했음을 밝혔다. 그 거래소의 다양한 사람들이 이것이 1938년에 밝혀지기 훨씬 이전에 이미 지불불능을 의심하는 사유를 가지고 있었지만, 부적절과 부정직을 적절히 발견하기 위해 요구되는 엄격한 청문을 행사하지 않았음을 보였다. 모간의 집(House of Morgan)은, 대부금의 목적이나 경제적 정당성에 대한 충분한 검토도 없고, 한 파트너들로부터 다른 파트너에게 적절한 정보의 완전한 폭로도 없이, 그리고 파트너끼리의 적절한 심문도 없이, 리처드 휘트니(Richard Whitney)의 대출을 도와주었었는데; 휘트니(Whitney)의 한 형제는 모간의 집의 파트너 중 하나였다.
이 모든 폭로들의 이면에는 독점적 관행에 대한 70년의 역사이야기인, 경쟁의 이론적 혜택들은 달성되지 못했고 어떤 것도 안전성을 확보하지 못했다는 점을, 또렷한 윤곽으로 보였다.
영국은 정부가 사회와 경제에 보다 널리 미치고, 사회생활이 보다 통합되어 있으며, 그리고 사회보장안들(social security sche- mes)을 1911년까지 소급할 수 있지만 제1차 세계대전 말 이래로 매우 개선된 규정을 가지고 있는 곳이나; 미국에서 폭로된 특질의 추문들은, 비록 일부 관련된 조선, 도시공채의 매입, 일정한 상품시장의 매점하려는 시도는 있었다고 하드라도, 경쟁적 산업의 특징들은 아니었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일부기업에서는 경쟁성향이 쇠퇴하거나 결여되었고 실업의 고통스러움이 있었지만, 어느 것도 정부의 지원이외에는 치유할 수 없었다. 정부는, 두 번의 단기이며 중요하지 않은 간격으로, 보수당의 수중에 있었다. 외국과의 경쟁에 대응하기 위해 영국무역의 재조직에 대한 관심이 많았고, 그리고 보수당정부는, 산업들 자체의 무력증이 기술적 효율성의 경주에서 영국경제를 어느 때보다 훨씬 뒤 떨어지게 남겨둔다고 위협하기 때문에, 이 영국무역의 재조직운동을 지원했고 종종 그것을 요구까지 했다. 다양한 마케팅법안들과 생산방법들의 현대화는 정부보조로 지원되었다. 산업들 스스로와 다양한 정부조사위원회들은 순수경쟁의 시대는 지났음을 인정했고; 그들은 무역조직의 필요성을 보고했고 정보지원에 의한 그러한 조직들의 설립으로 나아갔다. 동시에 독점의 반대측면인 가격통제와 산출제약이 꾸준히 진행되었다. 이는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문제이다.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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