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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과 사실

창작과 사실

: 양심으로서의 문학에 대한 고찰 1983-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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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0년 02월 25일
쪽수, 무게, 크기 507쪽 | 753g | 153*224*35mm
ISBN13 9788975987977
ISBN10 89759879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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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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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 여름, 쾰른 시에서 5,60km 떨어진 랑엔브로히라는 인구 백여 명의 조그만 마을에서 67세의 한 소설가가 운명했다. 20세기를 두 번의 세계대전으로 물들인 도이칠란트에서 태어나 그 나름대로 조국의 오명을 벗기는데 기여하며 “국가의 양심”으로 불렸던 하인리히 뵐. 12년 나치스 공황기에 문화라고는 파괴되어버리고 남지 않았을 것이라던 도이칠란트에서 1959년 프랑크푸르트서적박람회는 뵐의 『아홉시 반의 당구』와 그라스의 『양철북』 등으로 도이치문학이 살아 꿈틀거리고 있음을 증명하기에 충분했다. 전운이나 전대미문의 비인간적 독재정치로 인한 문화의 공백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고전주의시대의 괴테와 실러처럼, 이들은 함께 서독문단의 견인차가 되었고, 1972년 뵐이 노벨문학상을 수상했을 때 세계인은 도이치문학의 인간적 품위를 재확인하며 이를 진심으로 반겼다.

“쾰른을 다시 보았을 때 우리는 울었다.”

전쟁포로들이 난간도 없이 겨우 서있던 진흙탕 다리를 건너 쾰른으로 들어섰을 때, 마주오던 영국군 장갑차가 미끄러지면서 그들을 강으로 처넣을 뻔 했고, 또 다시 죽음의 공포를 느꼈다고, 뵐은 후에 말했다. 1945년 9월 15일 미군포로수용소에서 석방되어, 그의 말대로 “도이칠란트의 감옥에서 풀려나” 돌아온 고향, 폐허 속의 고향도시 쾰른은 6년 동안 힘겹게 살인무기를 끌고 다녔던 자식을 눈물로 맞았다. 습작으로 썼던 글들은 공습으로 사망한 어머니의 운명처럼 사라져간 그때, 그는 대학생으로 새 인생을 시작했다. 배급표 조달을 위해서는 누구에게나 합당한 직업이 있어야 하고, 대학생 신분은 일종의 직업이었다. 그는 가장이기도 했다. 전쟁이 한창이던 1942년에 결혼을 감행했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의 동무 아네마리 체히. 아네마리의 영어교사 월급으로는 생필품 조달이 어려웠던 전후, 한 달을 먹고 사는 일을 위해서 교사의 20개월 치의 봉급이 필요했던 시절, 그 속에서 그는 글을 썼다. 차마 삽을 들고 재건에 동참할 수는 없었다. 문청에 알맞게도 천성이 게을러서? 그 정신이 분명치 않은 ‘재건의지’라는 것에 대한 냉담성 때문에? 이유는 더 있었다. 다리를 재건한다, 전쟁터에서 돌아온 남자들이. 다시 완고해진 다리를 흐뭇한 표정으로 감탄한다, 전쟁에서 돌아온 남자들이. 그러나 어느 순간 전쟁이 선포되면 이 남자들은 자신들이 보람차게 건설했던 다리를 2,3초 만에 부수어버릴 것이니까, 군복을 입었을 뿐인데.

이 한마디면 뵐의 창작 방향을 다 드러낸다. 그는 전쟁을 용서할 수 없었던 것이다. 전쟁이 가져온 삶의 파괴는 끝을 모르게 진행된다. 그의 주인공들은 이 파괴적 힘의 희생자들이다.
“그들의 형제가 날마다 참호 속에서 도륙을 당하는데, 바로 같은 종파의 성직자들에 의해 교회에서는 승리를 위한 기도가 울려 퍼졌다.” 그래서 뵐은 전쟁에서 죽어간 주인공들에 대해 “살해되었다”라는 단어를 고집한다. 전쟁 중의 죽음은 모두 살인이다. 비록 군인이라 해도 그것을 “꽃잎처럼 떨어져간 전우”(이것은 우리나라에서도 현혹적으로 불러댄 구호이다.) 라고 표현하는 것을 완강히 거부한다. 전쟁에서 살해된 것은 장군들이 아니라 병사들이었기에 뵐의 주장이 설득력을 지닌다.

초기 『아담아, 네 어디 있었더냐?』(1951)는 단편적 에피소드가 서로 연결되어 있는 전쟁소설이다. 그의 전쟁소설들은 패운 짙은 전쟁말기에 자리한다. 패전이 확인되어 갈 무렵 마을사람들은 가까이 진격해온 연합군들에게 격렬한 저항의사가 없어 보인다. 심지어 백기를 내걸 태세를 보인다. 마을포대를 지키는 애송이장교는 백기가 내걸린 가정집을 향해서 중구경탄을 연사하여 “결핍된 애국심을 벌하기로” 작정한다. 연발탄은 전선에서 (더러 묵인된) 탈영에 성공하여 먼 길을 걸어 돌아온 젊은 병사를 자신의 집 대문 앞에서 명중시켜 문지방으로 곤두박질 쳐댄다.
혹은 평상시 가구운반용 트럭을 유대인수송에 투입했을 때 우리는 인간 몇 사람이 그 짐칸에 태워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보고에 의하면 67명이 실려 있었다. 공포로 미리 목숨을 끊은, 혹은 미리 죽어버린 여섯 사람을 포함해서다. 짐칸의 공포와 절규와 신음들이 두 운전병에게는 그 어떤 정서적 갈등도 일으키지 않는다. 그들의 정서, 도이칠란트적인 정서는 수송차 짐칸에 가구가 있거나 인간이 있거나 상관없다. 군복을 입은 운전병인 그들에게는 ‘운전’만이 임무이니까. 그들은 유대인-짐짝을 나르다가 피곤하면 교대하고, 그래도 지치면 차를 멈추고 버터빵과 보온병의 커피를 마시며, 귀여운 딸아이의 사진도 서로 건네고, 심지어 감동적인 노래도 할 수 있는 평균적 가장이다.

전쟁 중의 이름 없는 죽음들에 대한 집중은 오래가지 않아 현재의 ?에 대한 관심으로 바뀌었다. 아우슈비츠를 경험하고서도 “첫 번째 숨을 쉰 사람”은 살아남기로 작정한 것이니까 살아야 했다. 심지어 『천사는 말이 없었다』(사후 출판)의 주인공은 “직업적”으로 석탄을 훔친다, 먹고살기 위해서다. 실제로 전후 쾰른지방에서는 입도적질이 공공연하게 용인되었다. 입도적질 - 이 말은 현장에서 훔쳐 먹는 정도의 음식물절도를 일컫는다. 당시 쾰른의 대주교 프링즈가 1946년 제야의 기도연설에서 이를 인정한 이후, 입도적질은 이 성직자의 이름을 본 따서 ‘프링젠’이란 도이치단어가 되었다. “자신의 생명과 건강에 필수불가결한 것을 일을 해도 구걸을 해도 얻을 수 없을 때에 한하여” 인정한 작은 도적질이다. 물론 굶어죽기 않으려고 훔치는 먹을거리와 얼어 죽지 않으려고 훔치는 땔감에 한한다. (땔감을 훔치는 행위는 서방점령지의 화폐개혁 이후로 절도로 간주되었다.) 프링즈대주교는 후일 추기경이 되어서도 진보적인 성향으로, 아데나워수상과 아동교육의 이념 자체를 달리하며 껄끄러운 관계로 일관했다고 한다. 쾰른의 작가 뵐 역시 아데나워수상의 시장경제정책에 순응하지 않는 껄끄러움을 작품 속에 녹여낸 셈이다.
쾰른 1917년 12월, 1차 대전의 전운이 불리해져가던 혹한의 겨울, 전쟁을 저주하던 아버지의 여덟 번째 아이로 굶주림 속에서 태어난 그는 독실한 가톨릭 가정의 아들이었다. 영국왕 헨리 8세의 국교를 거부하고 가톨릭신앙을 지키기 위해서 도버해협을 건넜던 옛 선조들. 그의 어린 시절 첫 기억들은 힌덴부르크장군 휘하의 귀환병들의 모습이라 했다. 잿빛으로 절망적인 모습으로 귀환하던 병사들. 나빠지는 경제적 상황으로 자주 이사를 다녀야 했던 어린 시절. 라인강을 맴돌며……. 그러나 인플레이션은 아버지가 목공소 직원들 봉급을 주기 위해서 손수레에 돈을 실어와야 했던 기억을 남겼다. 처음 만져 본 돈. 막대사탕 한 개를 사먹을 수 있었던 1조 마르크? 믿거나 말거나. (이런 무책임한 말을 쓰는 이유는 자료가 말해주어도 도저히 믿을 수 없고, 또 사탕값 1조라는 숫자 자체를 상상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결식 동무들, 실업자 가정의 자녀들이 늘더니만, 어느 해부터인가 실업자 수가 격감했다. “그들은 경찰, 군인, 형리, 군수산업자들이 되었고 - 나머지는 수용소 행이었다.” 바야흐로 나치가 집권한 것이다. 이번엔 아버지 뵐이 아니라 아들 뵐 자신도 6년간 살인무기를 끌고 다녀야 했다. 그는 히틀러의 국방군의 일원으로 2차 대전에 투입되었던 것이다. 바로 이 기억으로 그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의 작품은 이 기억뭉치들에도 불구하고 흔히 ‘현재적’이었다고 간주된다. 그에게서 현재적이란 매순간 과거로 흘러들어가 버릴 현실을 현재성 있게 잡아두는 것이다. “현실이란 우리에게 와있는 편지와도 같은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뜯어볼 수고가 부담스럽던지 그 내용이 즐겁지 못하리라는 거의 확실한 상상으로 괴롭기 때문인지, 아무튼 그 개봉을 미루고 있는 편지.” 그래서 그는 “초침위에 서서” 과거의 편린들을 현재적으로 회고하려는 것이다. 또 하나, 그는 “비록 혼자서 글을 쓰며, 종이 한 묶음, 뾰족하게 깍은 연필 한통, 타자기 한 대만 함께 있으나, 나 자신 혼자라고 느낀 적은 없고, 뭔가 연결된, 시대와 동시대인에게 연결된, 한세대에 의해 체험되고 경험되고 관찰되고 들은 것에 연결되어 있음을 느꼈다”고 토로했다.
여기에 이르면 그의 작품세계의 X축과 Y축이 모두 드러난다. 그는 쾰른(크게는 도이칠란트)의 범위에서 현재(크게는 최근과거와 코앞의 미래)를 문학의 대상으로 간주한다는 말이다. 따라서 그는 작가라면 현실참여를 당연지사로 간주한다고 했다. “나에게는 현실참여가 전제이다, 그것은 말하자면 바탕칠이다. 그러고 나서 이 바탕칠 위에 무엇인가 꾸며내는 것이 내가 예술이라고 이해하고 있는 그런 것이다.” 그는 이 바탕칠 속에 숨겨둔 “무엇(=의미내용)을 찾기에 적합한 숨바꼭질의 장르를 장편이라 간주했고, 그는 실제로 수많은 장편들을 썼다. 전후 초기의 주옥같은 단편들을 칭찬하던 비평계는 차츰 이 숨바꼭질에 지쳤을까? 아무튼 작품내재적 해석이 절대적 추세이던 시기에도 뵐의 경우 작품만을 따로 평가하기는 쉽지 않았다.

말과 집과 빵을!

소위 경제기적의 50년대를 통틀어 뵐이 내어놓은 작품들은 별반 기적 같지 않은 삶들을 대변한다. 서쪽 도이칠란트의 경제기적의 기점을 사람들은 1948년의 화폐개혁에서 본다. 그러나 뵐은 이것을 오히려 자본주의 재림의 기점이요, 인간적 증상들이 고갈되어간 기점으로 간주한다. 빈익빈부익부의 현상을 고착시키고 경쟁심만을 부각시킨 정책이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이것을 기점으로 동서독 분단이 성립되기 시작했으니, 뵐과 같은 주장들도 일리가 없지 않다. 그래서 풍요의 그늘에서 번연히 곪고 있는 가난의 극치를 드러내주는 작품들이 쓰였을 것이다.
세계적으로, 특히 우리나라에서 많이 읽혔던 그의 작품은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1953)일 것이다. (이 제목은 독문학자 고 전혜린의 자전적 작품에서 차용되어 더욱 유명해졌고, 사람들은 심지어 전혜린 원작이라고 착각할 정도이다.) 여기에서의 중심단어 “말”과 이어지는 『주인 없는 집』(1954)에서의 “집” 그리고 『지난 시절의 빵』(1955)에서의 “빵”은 삶의 3부작의 핵심이 된다. 『말』의 주인공은 하찮지만 본직을 가지고 있고 그 외에 아르바이트까지 하지만 늘 돈이 없어서 고통당한다. 단칸살림 “가난의 먼지” 속에서 “가난의 숨소리”를 듣고 오한에 떨며, 자녀들이 그 가난의 수레바퀴에 갇혀있음에 절망한다. 그는 집주인 내외가 어쩌면 “가장 비싼 것, 신”을 가지고 장사를 하기 때문에 신부님의 보호 속에서 윤택하게 살 거라고 느낀다. 방이 비좁아서 바깥잠을 자야하는 그는 연중 석 달 이상은 비어있는 대저택의 수위에 빌붙어 잠을 청하며 증오를 이기지 못한다. “우리방보다 정확히 2㎡는 넓은 개집을 생각하면” 그는 술을 마시지 않을 수 없고, 술을 마시기 때문에 평판이 나쁘고, 평판이 나쁘기 때문에 방을 더 배정받지 못한다. 『집』에는 남편들이 전사한 젊은 과부들과 그들의 어린 아들들이 주인공이다. 아버지가 다 같이 전사자임에도 불구하고 부잣집과 가난한집 아이들은 다른 취급을 받는다. 적당히 문화계 인사들과 어울리며 퇴폐적 분위기를 발산하는 부유한 여인의 아들은 인문계 진학이 확보되고, 살기위해서 “아저씨-혼인”(사실상의 재혼 또는 동거: 아이들은 ‘새아빠’라는 단어 대신 ‘아저씨’라고 부른다.)을 거듭해야 하는 여인의 아들은 총명함과 삶의 예지를 갖추고서도 실업계로 진학할 운명이다. 이 가난한 어머니가 “부도덕”하다고 손가락질 받을 때, 한 희망의 전도사는 나치의 부도덕성을 증명하는 옛이야기를 아이들에게 들려주며 도덕개념을 교육한다. 부잣집 아들은 고급 레스토랑에서 스테이크를 게걸스럽게 즐기는 “식인종 아저씨”의 옷에 음식물을 토함으로써 상징적으로 부자들의 세계를 거부한다. 뵐은 가난한 친구네 일주일치 생활비보다 더 비싼 한 끼 저녁식사를 최고급 호텔에서 먹는 것은 죄라고 말하려는 것이다. 『빵』의 청년은 어린 시절 배고픔으로 빵중독이 되어 있던 자신을 사랑으로 치유한다. 전기기술자로서 사장 딸과 암묵적인 약혼상태에서 “순탄한” 인생이 예견되어있던 그가 어느 날 갑자기 사랑을 발견한 순간 그동안의 거짓 세계를 떠난다. 어딘가는 몰라도 아마 전진이 아니라 “뒤로” 가게 될 것임을 예감하면서도. 그는 모두가 함께 달려가려는 급행열차 계단에 발을 올려놓았었지만, 기차가 출발하려는 순간에 “하차”를 감행한다. 합리적인 방법이라는 미명으로 경쟁적으로 부를 차지하는 세상을 버리려는 것이다. 세상에는 일정량의 재화가 있고, 아무튼 너무 많이 갖는 것은 누군가의 것을 온건하게든 강압적으로든 빼앗는 것이라는 가르침이다. 문학은 그에게는 도덕이었고, 그러는 동안 “휴머니스트”, “도덕군자”나 “설교자” 등은 뵐이 싫건 좋건 받은 상표요, 그에게서는 소설가의 사회적 책임론이 떠나지 않게 된다.

더구나 동서 냉전구도 속에서 최전선을 담당한 동서독의 입지는 소설가 뵐을 아예 정치적 사안에 몰두하지 않을 수 없게 내몰았다. 1956년에는 헝가리사태에 대한 소련의 행동과 이집트 스웨즈운하에 대한 영국과 프랑스의 간섭에 반대하는 문화계인사들의 서명에 동참했다. 카뮈, 피카소, 사르트르 등과 함께였다. 그리고는 프랑크푸르트서적박람회에서 단연 주목을 받았던 『아홉시 반의 당구』(1959)에서는 특히 서독의 군부재건의 상황이 날카롭게 비판되고 있다. 뵐의 작품 내에서는 서독의 연방군이 나치스의 국방군과 한 치의 차이도 없이 간주된다. 그것은 둘 다 자본주의와 군군주의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당구』의 핵심은 나치스 초기에 쾰른에서 실제로 행해졌던 잔혹행위를 고발하는 것이다. 나치당의 초기 멤버로 나치스돌격대 지휘관을 지냈고 게슈타포를 창설했던 괴링이 실제로 쾰른에서 자행한 젊은 공산주의자들에 대한 손도끼처형사건에서 이 희생자들이 “양”으로 묘사되었고, 여기에서 그 유명한 “물소-양”의 흑백구도가 탄생한다. 나치스는 “물소떼처럼 모든 것을 간단히 밟아뭉개고 마는 집단”으로 묘사되고, 여기에 희생되는 집단 양을 위한 보호자로서 누군가는 총을 들어야 된다. 이 작품에서는 정신병원에 수용 중인 노친네가 아무렇지도 않게 고위 정치인을 저격하는 해프닝으로 드러난다. 하지만 이 상징적 총격은 나치스를 용인하고 키운 힌덴부르크대통령이나 과거를 망각하고 다시금 자본주의와 군국주의의 합작정치를 벌이고 있는 기민연정부에 대한 혹독한 비판인 것이다. 위정자들의 시각에서는 실로 껄끄러운 관점이 아닐 수 없다.

이탈의 미학 - 대안 사회는?

뵐은 1950년대 말을 지나면서 아예 도이칠란트가톨릭의 편협한 정치관을 비난하며 교회에 등을 돌리게 된다. 예고되었던 「청년 가톨릭신도에게 보내는 편지」가 방송중단 사태를 맞았을 정도였다. 이어지는 60년대의 삼부작 역시 쾰른지방을 무대로 아예 “사회로부터의 이탈”을 주제로 삼았다. 『어릿광대의 견해』(1963)는 가톨릭사회에서 등돌림을, 『탈영』(1964)은 문자 그대로 히틀러국방군에서의 탈영을, 『운전임무 끝』(1965)은 연방군지프 방화사건을 희화한다.
『광대』는 아데나워수상의 쾰른과 잠정적 수도 본 사이에서 전후 기회주의에 대한 가톨릭의 항복을 신랄하게 비판하다 못해 반가톨릭주의라는 혐의를 받았다. 대대로 신교이면서 전후 종파간의 화해하는 미명으로, 실제로는 아데나워의 가톨릭에 영합하여 자녀들을 가톨릭학교에 진학시킨 갈탄재벌가. 민주주의라는 미명하에 옛 나치스들을 그대로 복권시켜 중책을 떠맡긴 아데나워정부. 정치와 재벌과 한 돛단배를 타고서 순풍에 항해하는 가톨릭 고위 성직자들. 뵐의 작품에서 부자와 권력가와 고위 성직자가 선인으로 등장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이 작품에서는 고위 성직자의 영향 하에 있는 ‘진보가톨릭교우회’ 회원들은 나치스과거와의 화해 속에서 새 인생을 찾아 승승장구한다. 그러나 과거를 망각할 수 없어 과거에 집착하는 주인공은 사회의 외곽으로 밀려 광대의 실존을 살아간다. 정치적 대세에 편승하여 늘 강자의 편에 서는 부모세대를 용서하지 못하기 때문에, 용서해서는 안 된다고 믿기 때문에, 그는 스스로 부적응 안에서 자유의 공간을 발견한다. ‘망각 - 망각불능’은 중심적 사회심리적 메커니즘을 적중하는 핵심단어이다. 전후 도이칠란트에서 사람들은 냉전구도라는 새로운 세계사에 맞춰 전쟁과 나치시대를 망각하려 했고 또 실제로 망각했다. 사람들은 대세를 따르지 않기가 어렵고, 최소한 종교적 집단에라도 속할 때라야 비로소 온전한 안도감을 느낀다. 그것이 종교교육의 위대한 권위이자 대세의 힘이다. 광대는 내적 자유에도 불구하고 고립무원이 된다.
『탈영』에서는 군복무를 피하기 위해서 온갖 꾀를 부리다가 결국 최소한의 복무, 즉 사격면제 판정을 받고 히틀러군대에 들어간 주인공이 등장한다. 그는 분뇨처리장에 배속되어서 내적 자유를 누린다. 최소한 살인임무에서 해방된 자신을 너무도 사랑하며, 더럽다고 간주되는 일로서 세상을 청결하게 만드는 자신의 직무를 사랑하기까지 한다. 그는 전쟁을 살아남았고, 탈영하다 죽은 처남 등 전멸한 아내 가문을 숭배하는 마음으로 기리는 서술자가 된다. 뵐은 아예 이 작품 말미에 부록의 형식을 빌려 “탈영하라, 그 도덕이 나쁜 부대에서는!” 이라고 요청한다.
『운전』에서는 연방군의 무의미성을 해프닝으로 희화하며, 『탈영』에서 보여준 군대의 우매성과 교회의 군대성을 계속 조롱한다. 오직 주행미터기검열에 대비하여 지프를 운전해 놀다(?) 오라는 상관, 그 행위가 지겨워 차를 헛간에 세워두고 빈 바퀴를 돌려 숫자를 올리려다가 불을 내고 마는 병사, 아예 불붙은 지프 주위를 돌면서 노래하고 춤춘 부자간의 놀음, 지프방화를 연례행사로 주문하는 노친네 - 어느 것 하나 할 것 없이 부조리의 극치이다.
--- 「하인리히 뵐과 쾰른」 중에서
뭘 많이 들고 다니시네요, 무겁게!
남보다 느린 걸음으로 늘 무거운 가방을 들고 강의실을 오갈 때면 듣는 인사말입니다. 그러면 그냥 웃고 말 때가 많지만, 조금 힘이 남아있을 때는 대꾸합니다. 머리가 가벼우면 책이라도 무겁게 들고 다녀야지요. 그러고는 함께 웃습니다.
둔탁한 울림부터 멋스런 도이치 - 거기에다 제대로 사람이 되려면 ??순수이성비판?? 쯤은 원서로 읽어야 하리라는 막연한 선택으로 독문학도가 되어 그렇게 규정되어 살아온 밤낮, 한 세월. 어느 결에 인문학이란 젊은이들을 밥벌이 못하는 무능력자로 키워낼 뿐이라는 오명 속에 어딘지 부끄러운 교수가 되어 있었습니다. 물질의 막강한 권세에 눌려 인간이 왜소해질 대로 왜소해져버린 오늘. 나·너의 유일무이한 소중함을, 문학·예술의 무궁한 가치를 논하다보면, 조금 엇박자라고 취급됩니다. 하지만 인간의 가치가 이렇게 바닥에 주저앉은 지금이야 말로 시쳇말로 출구전략을 내놓아야할 때임을 절감합니다. 더 늦기 전에 목소리를 높여 말해야겠지요. 이 물질적·기계적 인생관의 세상에서는 오히려 인간의 가치를 수호할 유일한 균형의 역할로서 인문학이야말로 진정 유용한 학문임을. 인류의 원천적인 무엇, 시공간을 초월한 원형적이고 보편적인 그 무엇이 분명히 존재하리라는 믿음을. 인간을 효용성의 수치로 파악하려는 시대의 어리석음에 그리 쉽게 굴복해버리기에는 청춘이란, 생이란 너무 아까운 것임을.
그런데 저에게는 이 모든 것이 벅차다고 느껴졌습니다. 평소에 궂은 일, 힘든 일 면해준 동료들 덕분에 일없이 그저 강의와 글쓰기에 몰두해온 미온적 자세로는 이제 부족합니다. 지구상에서 우리를 누르고 있는 바위산보다 무거운 세력, 기술에 바탕을 둔 거대자본과 권력이라는 이름의 괴물과 맞싸워 인간의 가치를 찾는 데 힘을 더하기엔 역부족입니다. 새로운 피, 들끓는 정열이 사람냄새 나는 새 기운을 일으키는 모습을 이제는 간절히 지켜보고 싶을 따름입니다.
해방은 간단한 일입니다.
지난 가을학기의 마지막 수업들은 언제나처럼 시험답안지 보퉁이를 껴안고 끝났습니다. 교수직의 나날 중 가장 우울해지는 계절병을 앓는 시간. 아무 쓸모없다는 문학수업을 해놓고서 또 아무 쓸모없을 등급으로 나누는 작업을 더 이상은 견디고 싶지 않았습니다. 해방은 이렇게 아주 급격한 염증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그리고 거의 행복합니다. 위로부터 내려오는 어떤 것도 - 무엇보다 불합리를 - 참을 수 없는, 참고 싶지 않은 세월을 살았나봅니다. 정년을 기다리지 못하고 학교를 떠나려는 몸살도 시들하고, 그렇게 얻은 시간들을 허송하게 될까 두려움도 일지 않습니다.
다만 제대로 가르침을 주지 못했던 제자들에게 늘 미안함에 더해서 이제 논문집·소설집 출간에 마음써준 모두 - 전남대학교독문과 제자들과 동료들, 전북대학교사범대학독어교육과 그리고 광주제일고등학교 제자들 - 에게 감사마음을 전하자면, 어중간한 교수의 어떤 논리로도 늦깎이 소설가의 어떤 필력으로도 모자랄 것입니다. 또한 아무 것도 아닌 이 부피의 논문들을, 또 다른 무턱대고 엄청난 양의 글들을 쓴답시고 혼자 몰두한 그 시간들을 곁에서 참아준 가족들에게도 새삼 고마움을 느낍니다.
분에 넘치는 정에 감사하며……

2010년 2월
서용좌
--- 서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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