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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선비 석헌 류옥

조선의 선비 석헌 류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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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0년 03월 10일
쪽수, 무게, 크기 1쪽 | 규격외
ISBN13 9788975988059
ISBN10 8975988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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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오종일
전남 보성 출생으로 전남대학교 철학과 졸업,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동양철학과 졸업을 하였다. 전남대학교, 성균관대학교, 동덕여자대학교 등 강사, 대만 중앙연구원 초빙교수, 동양철학연구회 회장, 한국공자학회 회장, 전주대학교 교수를 역임하였다. 현재 전주대학교 명예교수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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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조선의 선비, 석헌 류옥(石軒 柳沃1487∼1519)’선생의 삶과 그 업적을 서술한 것이다.
책의 이름을 ‘조선의 선비’라고 한 것은, 선생의 의식과 그 삶이 벼슬아치로서가 아니라 선비로서의 굳은 신념으로 백성들을 위한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
선생이 활동하였던 시대는 조선조가 건국된 후 100년이 지난 중종 조 초기였다.
이 시기는 연산군을 폐출하고 새로운 임금이 추대되어 조정으로부터 초야의 백성에 이르기까지 밝은 세상이 열리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였던 때였다.
선생은 창평(昌平) 출신으로서 중종 2년에 실시한 과거에서 장원으로 급제하여 조정에 나가 중종과 함께 새로운 시대를 열고자 하였다. 그러나 그 당시의 상황은 그 이상을 실현할 수가 없었다.
그 까닭은 박원종 성희안 등이 반정을 일으키면서, 좌의정이었던 신수근(愼守勤)을 죽이고 그의 딸이었던 중종 초비(初妃) 신씨(愼氏)까지 몰아내고, 조정을 독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선생은 그와 같은 상황을 직시하고 그들의 횡포를 바로 잡고 조정의 기강을 세우고자 박상 김정 등과 함께 반정공신들의 만행을 규탄하고 신비를 복위 시켜야 한다는 상소를 올렸다. 그 상소가 청복고비신씨소(請復故妃愼氏疏)로서, 이는 조선의 역사에서 남녀 부부 군신의 의리를 높이는 가르침이 되었다.
선생은 또한 백성들의 균등한 부(富)를 실현하기 위하여 한전제(限田制)를 통한 균전제(均田制)를 실시할 것을 주장하였으니, 이러한 이론은 조선조 건국 이후 처음으로 제시된 토지제도의 개혁론이다.
지방의 수령(守令)이 되어서는 백성들의 실정(實情)을 상소하여, 그 잘못된 정책을 바로 잡도록 하여 백성들의 편에 서서 선정을 베풀었다.
청렴한 정치를 펴고 백성을 위한 선정을 실시하여 가는 곳 마다 추앙을 받았는데 이 사실은 동국여지승람 등 여러 기록에 나온다.
선생 등이 올린 상소는 기묘사화의 원인이 되었지만, 이는 결국 성리학의 발전을 가져오게 되었고, 백성을 위한 정치는 중종 조의 도학정치를 발흥하는 출발점이 되었으며, 선생이 소중하게 여겼던 의리정신은 조선조의 정신적 이상이 되었다.
이 책은 이와 같은 선생의 업적과 행의를 서술한 것이다.
내용은 모두 9개의 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앞의 3장은, 선생의 시대 배경과 당시의 상황에 대한 서술이다. 이는 반정 군들의 등장과 그 횡포에 대한 기록으로서 중종조의 시대를 이해하는 좋은 참고가 될 것이다.
그 뒤의 4개의 장은, 선생의 사상적 특징을 소개한 것이다. 여기에서는 상소문에 나타난 절의정신과 위민의식에 나타난 경세사상과 문학세계를 서술하였다.
나머지의 2개의 장은 선생의 가르침이 조선의 역사에서 무엇을 남기었는가 하는 사상적 영향과 선생의 위상은 어떤 것인가 하는 것을 서술한 것이다.
책의 뒤에 넣은 선생의 연보는 그 일생을 쉽게 이해하는데 보탬이 될 것이다.
선생이 남긴 교훈과 그 업적은 너무나 크다. 그러나 저자의 부족한 능력으로서는 이를 모두 기록할 수가 없다.
다만 바라는 것은 이 조그마한 책을 통하여 선생의 삶이 새롭게 인식되고,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훌륭한 가르침이 될 수 있다면 더 할 수 없는 기쁨이라 하겠다.
2010년 경인년 맹춘 저자 삼가 쓰다 --- '저자 서문' 중에서

Ⅰ. 여는 글

1. 인간의 삶과 그 가치

사람은 누구나 태어나면 한평생 자기의 길을 간다. 그 길은 험난하기도 하고 평탄하기도 하지만 그러나 어느 길을 가더라도 누구나 그 과정에서 인간으로서 떳떳하게 살기를 희망한다.
인간은 일신의 평안보다 참다운 가치를 구한다. 그러나 누구나 다 그러한 것은 아니다. 참다운 인간으로서 올바른 삶을 구하려는 그 의지를 지닌 사람만이 그러한 삶을 누릴 수 있는 것이다.
역사는 그와 같이 떳떳한 삶을 살았던 사람을 추앙한다. 그러므로 그 이름이 영원할 수 있는 것이다.
인간은 육체적 평안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인 이상을 구한다.
인간만이 영혼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육체는 살아지지만 그 정신은 영원할 수 있는 것이다. 정신생명이란 그가 얼마나 올바른 삶으로서 모든 사람의 귀감이 되었느냐 하는데 그 수명이 결정된다.
우리는 그와 같은 삶을 살았던 이상적인 인물을 성인이라 부른다. 공자나 부처 그리고 예수나 소크라테스 같은 분들이 그들이다.
사람들이 그러한 성인의 삶을 따르고자 하는 것은 그 들이 자기를 위한 삶을 살았던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의 삶의 정신을 이끌어 주었기 때문이다. 그러한 까닭으로 그들은 지금 이 세상에 없지만, 모든 인류는 그들이 행하였던 그 가르침을 배우고자 하고 실천하고자 한다.
우리의 역사에서 그 이상적인 삶의 모습을 보여 주었던 것은 조선의 선비였다.
선비의 기상, 그것은 여러 가지의 특징이 있지만 그 중요한 점은 사사로운 자기의 이익을 돌보지 아니하고, 국가와 민족이 쎿바른 길로 가도록 이끌었던 데 있었다. 자기보다 나라를 걱정하고, 스스로의 이익보다 백성들의 평안을 더욱 소중하게 생각하였던 마음과 그 정신을 선비정신이라 한다.
목숨을 걸고 임금의 잘못을 지적하고 자신 뿐 아니라 모든 사람에 대하여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도리를 지키도록 하고 불의와 타협하지 않았던 그와 같은 기상이야 말로 우리가 가장 소중하게 여겨야 하는 정신 유산이 아닐 수 없다.
선비정신은 언제부터 생겨나게 되었던 것일까?
조선의 역사에서 본다면 이러한 정신이 생겨난 것은 조선의 건국과 함께 나타난 절의와 지조 그리고 스스로의 신념을 소중하게 여겼던 행의들이 그 처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중종 조 때 형성된 사림의 의식이 선비정신의 모체가 된 것이 아니었을까?
중종 조 시대의 사림을 생각한다면, 우리는 지금까지의 역사에서 자칫 잊혀 질 번 하였던 우뚝한 선비를 생각하게 된다.
그 시대에서 사림정신을 생겨나도록 하고, 조선조 사림의 정신적 표상이 되었던 인물, 바로 그가 지금 이 글에서 소개하고자 하는, 석헌 류옥(石軒 柳沃 1487∼1519)선생이다.
선생은 전남 창평 출신으로서 중종 조 때 조정의 벼슬아치와 지방의 관료로서 크게 활약하였던 큰 선비였다.
선생은 중종조의 역사 뿐 아니라 조선의 역사를 의리의 역사로서 흘러가게 하고 선비로서 지켜야 할 사명과 그 신념이 어떤 것인가 하는 것을 보여주었던 인물이다.
이 책은 이와 같은 인물 조선의 선비, 석헌 류옥을 소개하는 것을 목적으로 서술한 것이다.
이 글을 쓰기 위해서는 조선의 역사와 선비의 등장, 그리고 그들 선비들이 추구하였던 이상이 무엇인가? 또한 선생이 추구하였던 정신은 조선의 역사에서 어떤 의식을 심어주었으며, 어떠한 가르침을 드리웠던가 하는 것을 차례대로 이해하여야 할 것이다.
선비란 어떤 정신을 추구하였으며 그들이 걸어간 길은 다른 사람들이 개척하지 못하였던 어떠한 새로운 길을 열고자 하였는가? 그 길을 새롭게 열었던 석헌 류옥선생은 어떤 인물이었을까?
이제 조선조의 정신적 흐름과 선비의 탄생, 그리고 선생이 살았던 중종 조에 이르기까지 조선의 선비가 추구하였던 가치는 어떤 것이었는가 하는 것부터 차례로 살펴보자.

2. 선비의 형성과 그 추구하는 정신

선비는 조선조의 특수한 집단이었고 하나의 계층이었다. 선비라는 뜻을 가진 사(士)는 본래 중국에서 생겨난 계급이다.
선비가 처음 생겨난 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매우 오랜 옛날에 이른다.
선비란 본래 기원전 1100년경 중국에서 건국된 주(周)나라의 한 계급집단을 가리킨다.
선비, 곧 사(士)는 주나라를 건국할 때 왕을 보위하는 무사(武士)들을 가리킨 말이었다.
주(周) 나라는 처음으로 봉건제(封建制)를 시행하면서 생겨난 나라였다.
봉건제도란 하나의 씨족이 나라를 다스리게 되면서부터 그 다스리는 사람을 세울 때, 토지를 주고 통치권을 부여하는 제도를 말한다. 그러므로 본래 봉건이라는 말은, 벼슬아치를 세우고 토지와 벼슬을 나누어 준다는 뜻이었다.
봉건제도의 계급은 천자(天子)와 제후(諸侯) 공경대부(公卿大夫)들로 이루어지는? 이들은 모두 천자의 친족들이었다.
이에 비하여 선비는 제후국가에서 왕을 도와서 왕실을 튼튼히 지켜 나간 무사들이었다. 그들이 하는 일은 밖으로는 외적을 막고 안으로는 난을 평정하여 임금을 보위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정의롭고 올바름을 지키는 것을 그 사명으로 삼았다. 그와 같은 정신이 오늘날에 이르기까지도 하나의 전통이 되어, 선비란 올바름을 실현하는 것을 스스로의 책임으로 여기게 된 것이다.
공자는 그와 같은 선비를 높이고 그 정신을 본받도록 가르쳤기 때문에 선비정신은 유교의 전통이 되어 선비를 귀하게 여기게 되었다.
조선조가 건국될 그 당시에는 고려 조정이 지배하고 있었을 때였다. 그러므로 고려조정의 신하들은 모두가 고려의 선비들이었다. 따라서 태조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려고 하자, 고려 조정의 선비들은 커다란 고민에 휩싸이게 되었다.
그 원인은 선비란 마땅히 자기의 임금을 섬기는 것이 그 본무였음으로 당연히 고려의 임금에게 충성을 바치고자 하였다. 그러나 그 당시의 고려에는 임금다운 임금이 나라를 다스리지 못하였으므로 신하로서는 그들이 섬겨야 할 임금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이때 선비들에게는 이와 같은 상황에서도 고려의 임금을 섬기는 것을 올바른 의리라고 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대두되었다.
여기에서 올바름을 발휘하는 것은 임금을 위하는 것인가 아니면 백성을 구하는 데 있는 것인가 하는 고민에 봉착하게 된다. 그러나 신하로서는 어떠한 상황에 이르더라도 자기가 섬기는 임금을 지켜야 하는 것이다.
그 시대에서 이와 같은 정신을 끝까지 지키면서 목숨을 바쳐 왕을 보위하였던 인물이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 1337∼1392)였다. 정몽주는 그러한 ?신으로 이방원의 철퇴를 맞아 죽으면서까지 고려의 임금에게 충성을 다 하였다.
고려의 임금에게 충성을 바친 사람은 정몽주뿐이 아니었다. 조선조가 건국하자 고려의 임금을 배반하고 조선의 임금을 섬겨서는 안 된다는 신념으로, 도읍지를 떠나서 산간으로 숨어 들어간 선비들이 많았다.
그 대표적 집단이 황해도의 개풍군 광덕산에 숨어 들어간 72명의 선비들이 있었다. 그들은 고려를 섬기기 위하여 조선의 왕실을 거부하고 숨어살면서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임금이 관군들을 풀어서 끌어오려 하자, 사립문을 걸어 잠그고 안으로 숨었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그 골짜기를 두문동(杜門洞)이라 하였다.
두문(杜門)이란 문을 막는다는 뜻으로서 출입을 금한다는 말이었다. 그들은 이와 같이 자기들이 섬겼던 고려를 따르는 것이 올바른 길이라는 생각으로 새로 건국한 조선의 조정을 섬기지 않았다.
조선의 조정에서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그들을 설득하였지만 듣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관헌들을 보내 그 마을을 불태우도록 하였다. 불길이 솟으면 밖으로 나올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그 생각은 잘못된 것이었다. 그들은 모두 불에 타 죽고 끝까지 저항했던 사람들이 모두 13명이나 되었다.
이들은 조선조의 건국에 참여하여 부귀와 영화를 누리기보다는 의리를 지키고 자기의 신념을 굽히지 않는 것을 더 가치 있는 것으로 여겼다.
이와 같이 임금에게 충성을 다하려는 정신은 조선조에 그대로 계승되었다.
충성으로 임금을 섬기고 나라를 올바른 길로 이끌고자 하는 그 소신을 굽히지 않았던 정신은 조선조의 선비정신으로 자리 잡았다. 이러한 기상은 우리의 역사를 정의의 길로 흘러가도록 하는 큰 물줄기를 이루게 하였다.
포은 정몽주의 제자였던 야은(冶隱) 길재(吉再 1353∼1419)는 그 스승의 가르침을 이어갔다. 그는 금오산으로 들어가서 학문을 닦으면서 자기의 지조를 지켰다. 그의 제자가 강호(江湖) 김숙자(金叔滋 1389∼1456)이고 그의 아들이 점필재(?畢齋) 김종직(金宗直 1431∼1492)이다. 김종직의 제자가 한훤당(寒暄堂) 김굉필(金宏弼1454∼1504)이며, 김굉필의 제자가 정암 조광조(1482∼1519)였으니, 조광조는 중종 조 때 기묘 사회에서 희생된 대표적 인물이다.
조광조가 기묘사화로 인하여 사사를 당하자 당시의 선비들은 기묘사화에 희생된 사림들이 정당하다는 생각을 갖게 되어, 이러한 정신이 조선의 선비정신으로 정착된 것이다.
우리는 이와 같이 조선조 선비의식은 중종 조 시대에 일어난 사화로 인하여 형성된 사림의식이 그와 같은 정신을 형성하는 밑바탕을 이루고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렇다면 중종 조 시대의 사림정신은 언제부터 어떻게 나타난 것일까?
중종 조 시대의 사림의식이 형성될 수 있었던 것은, 신진 사림들이 훈구대신들의 횡포에 대하여 의분을 느낀대서 비롯된 것이었다.
이는 중종반정에서부터 시작된 것이다. 혁명군들이 반정을 일으키면서 자기들에게 협조하지 않았다고 하여 좌의정 신수근(愼守勤1450∼1506)을 먼저 죽이고 반정을 시작하였는데, 이때 등극한 중종의 왕비가 신수근의 딸이었다.
이 사건이 빌미가 되어 기묘사화가 일어난 것이다.
그 과정을 보면, 왕비가 쫓겨난 이후 중종 10년에 반정 군들의 횡포에 의분을 느끼고 그들이 몰아낸 왕비를 복위 시켜야 한다는 상소가 올라오게 되자, 조광조는 그 상소에 자극을 받아서 또한 정국공신의 공훈을 깎아야 한다는 삭훈상소를 올리게 됨으로서, 자기들의 신분에 위협을 느낀 훈구대신들이 흉계를 꾸며 조광조를 위시한 사림들을 모두 죽인 사건이 기묘사화였다
여기에서 우리는 중종 조 시대에 형성된 사림의식은 저들 반정 군들의 횡포에 의분을 느끼고 올린 상소문으로부터 비롯되었던 것임을 알 수 있다. 기묘사화가 일어나게 된 것은 중종반정과 왕비의 축출, 그리고 왕비의 복위를 청하는 상소에 이어서 올려 진, 정국공신의 삭훈 상소가 하나의 연속성을 이루면서 기묘사화로 이어지게 된 것이다.
그러면 이제 이 글 본래의 주제인 석헌 류옥선생은 누구인가? 중종조 시대의 그와 같은 역사의 발전 과정에서 볼 때, 선생은 어떤 인물인가? 선생은 어떠한 삶을 살았고 그 업적은 무엇인가 하는 본래의 문제로 돌아가 보자.
류옥 선생은 위에서 지적한 기묘사화의 발단이 되었던 상소, 곧 중종 본래의 왕비를 복위시켜야 한다는 상소를 올린 인물 가운데 한사람이다. 따라서 류옥 선생에 대한 이해는 기묘사화 뿐 아니라 조선조 선비정신의 형성과 발전 그리고 조선의 의리정신의 근원을 이해하는 중요한 관건이 된다.
이제 이 책은 이와 같은 사건을 중심으로 류옥선생의 삶과 그 행적을 통하여 선생이 조선의 역사에 남긴 자취와 그 정신은 어떤 것이었는가 하는 것을 찾아가기로 한다.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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