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충족되지 않는 나, 상처받기 쉬운 나
이 장에서는 ‘마음이 괴롭다’ ‘허무하다’는 느낌으로 남들은 모르는 괴로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의 사례를 중점적으로 소개한다. 마음속에 구멍이 뻥 뚫린 듯한 공허를 느끼며 이 구멍을 사이에 두고 감정이 양극단으로 갈려 있으며 이러한 감정과 가치관에 질질 끌려다니는 생활 속에 전체적으로는 ‘우울하다’ ‘지겹다’ ‘허무하다’고 느낀다.
항상 밝고 명랑하단 소리를 들으니까, 나는 꼭 그래야만 하는 거라고 생각하게 돼요. 하지만 그러다 보니 그 반대편에 있는 나약한 나, 어두운 나 자신은 점점 커져가요. 이 ‘또 하나의 나’를 알아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p.19
다들 ‘열심히 하는 구나’라고 칭찬해주지만, 그건 언제까지나 지금 이상으로 노력하라는 뜻이잖아요? 힘들겠구나, 쉬어도 돼, 라는 말은 아무도 해주지 않아요. 나 같은 건 죽도록 일만 하다가 죽으면 그만이라고들 생각하겠죠. ---p.21
2장 몇 명의 나, 진짜 나
‘우울하다’ ‘지겹다’는 감정을 넘어서서 자신의 연속성과 통합성마저 잃어버리고 ‘내가 몇 명이나 있다’ ‘분열된 것 같다’고 느끼는 사람들의 사례를 소개한다. 1장에서 소개한 감정의 양극단을 오가는 사람들보다 괴로움은 덜할지 몰라도 자신의 한 일을 기억하지 못하거나 때에 따라 다른 인격이 발동되어 온전한 사회생활을 영위하지 못한다.
배고프다는 걸 못 느껴요. 뱃속이 텅 빈 건 알겠는데, 그렇다고 배가 고프다는 생각은 안 들어요. 먹지 않으면 죽으니까 억지로 먹을 뿐이에요. ---p.47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을 볼 때 가끔 이게 누구더라, 하면서 물끄러미 바라보곤 해요. ‘네 얼굴이잖아’ 하고 옆에서 말하면 그렇구나 하고 이해는 하는데, 왠지 그게 내 얼굴이라는 실감이 나지 않아요. 모르는 사람 같아요. ---p.47
3장 마지막 보루로서의 ‘몸’
‘마음에 구멍이 뚫려 있다’ ‘분열되어 있다’고 느끼는 많은 사람들은 이 ‘빠진 부분을 되찾고 싶다’ ‘하나가 되고 싶다’고 바라지만, 그것을 이루기는 무척 어렵다. 어딘가에 떡하니 ‘나의 조각’이 떨어져 있는 것도 아니며 분열된 자신을 붙여줄 접착제가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허전한 감정과 분열된 느낌을 계속 껴안고서 살아가는 것도 무척 괴롭다. 그럴 때 자기 회복의 수단, 즉 응급처치로 자해와 같은 극단적인 수단을 시도한다.
살아 있다는 걸 실감할 수 없습니다. 자기 전에 유체 이탈 같은 걸 경험하기도 하고요. 아픔을 느껴서 어떻게든 현실로 돌아오려고 했습니다. ---p.106쪽 )
현재 불안한 발작이 덮쳐서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과호흡이 오지 않도록 호흡 컨트롤에 신경을 쓰고 있습니다. 컨트롤할 수 있으면 발작이 아니지 않냐고 말씀하실 분도 계시겠지만, 어쨌든 나는 무언가가 불안해서 견딜 수 없습니다. 누가 좀 도와줘! 일단! 브로마제팜 20밀리그램을! 약이 들 때까지 불안 불안.---p.눈물) ---p.115
4장 자기 회복을 위한 처방전
이러한 문제는 의료의 차원을 넘어 사회 전체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 중 하나다. 범죄와 자살 같은 파국적인 결과로 직접 이어지지는 않을지라도 대학을 나온 뒤에도 취직하지 못하거나 좀처럼 결혼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연애에 심하게 의존하는 갖가지 현실적 문제를 일으킨다. 이 문제를 본질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처방전을 제시한다.
생각이 비뚤어져 있을 때는 아무리 지적당해도 그것을 깨닫고 고치기가 어렵습니다. 그래도 전혀 깨닫지 못하는 것보다는 나중에라도 ‘아, 내가 또 비뚤어져 있었네’ 하고 깨닫는 것이 훨씬 좋으며 자신의 패턴, 즉 마음의 버릇을 알 수 있다면 더욱 좋습니다. ‘이렇게 비뚤어져서 실제보다 상황을 비관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고 깨닫기만 해도 슬픔과 분노가 한결 줄어든다는 생각에 기초한 정신요법을 ‘인지 요법’이라고 합니다. ---p.166
‘그 사람이 내 얘기를 전혀 들어주지 않아. 이제 나를 버린 거야’라는 생각이 들 때 ‘이런 건 극단적인 일반화의 자동 사고일지도 몰라’라고 인정하고 ‘그 사람은 요즘 들어 야근이 많아서 피곤하다고 했어. 예전에 여유가 있을 때는 내 얘기를 잘 들어주었으니까, 다음번에 야근이 없을 때 느긋하게 식사라도 하면서 이야기해보자’ 하고 적응적 사고에 의한 계획을 덧붙이는 것입니다. ---p.169
5장 우연과 필연
앞에서 흩어진 자신을 한데 모으고 싶어 하고, 살아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때때로 자해 행위를 하는 것에 대해 살펴보았다. 어쩌면 인간은 ‘진짜 자신을 찾고 싶다’고 일상과 다른 차원에서 자신의 의미와 의의를 찾기 시작하면, 결국에는 일상을 초월한 차원―라캉이 말하는 현실계―에 도달하지 않으면 만족할 수 없게 되고, 동시에 그것은 ‘죽음의 차원’에 발을 들이는 것인지도 모른다. ‘마음의 구멍’을 지니고 있기에 비로소 발생되는 ‘우연’과 ‘필연’을 즐기고, 인지의 비뚤어짐을 바로잡는 훈련이 필요하다.
“우연히 일어나는 자살 충동을 멈추는 것은 다만 하나의 필연을 상상하는 것뿐인지도 모릅니다. 그것은 자신보다 먼저 우연을 선택해버린 존재를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 사람을 생각했을 때 느끼는 절망과 슬픔의 감각만은 필연이며, 그 필연이 우연을 멈추게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p.1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