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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펠탑의 핑크 리본

에펠탑의 핑크 리본

: Cancer in Par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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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0년 04월 01일
쪽수, 무게, 크기 272쪽 | 368g | 148*210*20mm
ISBN13 9788952758293
ISBN10 89527582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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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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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속의 세포들이 미쳤다. 누군가가 미치는데 언제나 전 세계인이 기꺼이 수긍해줄 만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다. 나한테는 그대로 돌아버릴 만한 일도 바로 옆 사람에게는 부질없는 일인 경우가 태반이다. 탁구공 속의 주거인들에게도 나름의 이유가 있었을 테다. 원망스럽던 묵직한 이 덩어리 속에 정신줄을 덜컥 놓아버린 세포들이 가득하다고 생각하니 얘들이 측은해진다. 이 썩을 것들이 머리에 꽃을 하나씩 달고 집 밖을 나다니는 순간 내가 5년 안에 사망할 확률은 80퍼센트로 올라간다지만, 이 돌은 것들 역시 나다. 이 유방암은 에이즈나 간염처럼 다른 이물질이 내 몸 안에 들어와서 생겨난 병이 아니라,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는 알 수 없는 이유로 내가 만들어낸, 부정할 수 없는 나의 일부분이다. 그러니까 탁구공을 무조건 미워할 수 없다.---p.43 ‘인생에 어떤 일도 그냥 일어나지 않는다’ 중에서

“너 만날 머리숱 없다고 짜증냈잖아. 러쉬 매장 파리에 생기기 전에 런던 놀러가서 볼륨감 살려준다는 왕소금 들어간 이상한 샴푸 7통 사놓고 돌아올 때 가방에 자리 없다고 혼자 성질낸 거 기억 안 나냐? 그래놓고 그거 다 쓰지도 않고 질린다고 다른 샴푸 또 샀잖아. 니가 하도 불만이니까 머리카락들이 친구 한 명씩 데리러가는 거라고 생각해. 나중에 얘들이 친구들이 다시 와서 머리숱 풍성하게 해주는 거라고 생각해. 우리도 이제 삼십댄데 엄청 유치하지? 이 나이에 이런 유치한 소리 하는 나 실컷 비웃으면서 잠깐만 있어봐.” 자기도 슬픈 거 다 아는데, 헛소리까지 해가며 멀쩡한 척하니까 더 슬프다. 그냥 빨리 시작하라고 했다. 눈을 질끈 감았다. 끔찍한 모터 소리가 들리더니 조심스럽게 내 뒤통수에 바리캉이 다가온다. 밀린다. 점점 올라온다. 깎인 머리칼들이 어깨에 걸렸다가 후드득 떨어진다.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다. 슬프다. 하지만 후련하다. 마음 아프지만, 또 하나의 어려운 관문을 통과했다.---p.116 ‘고맙다, 마크야’ 중에서

마지막 항암치료를 며칠 남겨둔 어느 날, 심플한 캐시미어 니트 디자인으로 알려진 자디그 앤 볼테르의 프라이빗 세일 인비테이션이 도착했다. 항암치료 바로 다음 날 마레의 피카소박물관에서 멀지 않은 세비녜 거리에서 열린다. 이 브랜드 옷들은 내 취향에는 심심해서 정가로 절대 안 산다. 하지만 무려 70퍼센트까지 내려가는 이런 세일에서는 쏠쏠하게 건질 수 있는 베이직한 아이템들이 많다. 이 깜짝 세일에 가고야 말겠다는 의지를 잘만 불태우면 마지막 산딸기 쇼크를 그리 힘들지 않게 견딜 수 있을지도 모른다.
평일인데 마침 마크가 오후에 볼 일이 있어서 연차를 냈다고 하고, 엘리아도 함께 와줄 수 있다고 한다. 항암치료 전날 저녁, 자디그 앤 볼테르 사이트에 들어가서 마음에 드는 모델들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이 옷들을 떠올리며 견디리라. 제발 내 인생의 마지막 항암치료이길 바란다. 혹시나 내 몸속을 돌아다니던 미친 세포들이 있었더라도, 분위기 잡고 산딸기 항암약 칵테일 한잔씩 하신 후 다들 사망하시기 바란다.---p.212 ‘One Moment In Time’ 중에서

나는 ‘암에 맞서는 평범한 영웅’이 아닌, ‘어쩌다가 암에 걸려서 치료를 받아야 하는 평범한 사람’일 뿐이다. 대단한 영웅씩이나 돼서가 아니라 단지 얼떨결에 그렇게 된 것뿐이다. 그런데 국립 암연구소에서까지 ‘평범한 영웅’이라는 황송스러운 애칭을 붙여줄 생각을 했다. 암환자에 대한 일반 사람들의 시선을 바꾸겠다고 나선 캠페인에 암환자는 결코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는 고정관념이 담겨 있다. 게다가 암과 사투 끝에 결국 저 세상으로 떠나간 사람들은, 그럼 그들은 영웅이 아니라 부끄러운 패배자란 말인가.
--- p.226 ‘오블라디 오블라다! 인생은 브래지어 위를 흐른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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