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이라면 거짓말을 하고 그냥 도망쳐버리는 일쯤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람세스 2세는 인간이 아닌 신이었다. 이집트 백성에게 파라오는 태양신 호루스가 강림한 존재였다. 람세스 2세는 이집트의 다른 어떤 파라오들보다 길었던 67년의 치세 기간 동안 뛰어난 통치력을 보여주었다. 파라오가 된 지 5년째 되던 해, 그는 아버지의 재임 기간 중 이집트 영토에 합류되었다가 다시 빼앗긴 시리아의 도시 카데시를 되찾기 위해 히타이트를 상대로 전쟁을 일으켰다. 카데시에서 이집트군은 히타이트군의 매복에 걸렸다. 군사들이 도망친 상황에서 람세스 2세는 거의 혼자 힘으로 히타이트군과 맞서 싸웠고, 마침내 그들을 물리쳤다.
이것은 영광스러운 승리였다. 이후 자신의 남은 통치 기간 동안 람세스 2세는 이 승리를 자기 군사 경력의 절정으로 여겼다. 그는 자신의 위대한 승리를 상형 문자와 그림으로 룩소르, 아비도스, 아부심벨, 카르나크, 그리고 수도 피람세스의 라메세움 등 제국 도처의 신전과 사원 벽에 기록했다. 람세스 2세가 이 전투를 얼마나 자랑했던지, 3000년이나 지난 지금까지도 세 가지의 다른 파피루스 조각과 열세 가지의 다른 방식으로 쓰인 기록들이 남아 있다. 한데 그의 영웅담은 과연 진실이었을까? 특이하게도, 이 사건에 대한 히타이트 쪽 이야기를 담은 문서가 하나 남아 있는데, 히타이트의 수도 하투샤에서 발굴된 현판 중 하나에는 전쟁에서 보여준 람세스 2세의 용맹함에 대한 과장된 이야기보다 역사적 사실에 좀 더 가까운 내용이 새겨져 있다. 사실은 람세스 2세의 영광스러운 승리는 기껏해야 겨우 체면을 유지했을 정도의 무승부였다는 것이다. 람세스 2세는 카데시를 되찾지 못했을 뿐 아니라, 목숨을 건지고 도망친 것이야말로 행운이었다는 얘기다. 전투가 끝난 후, 람세스 2세의 군대는 시리아에서 이집트로 후퇴했다. 그러나 그가 이집트에 도착할 무렵, 어느새 그는 영웅이 되어 있었다. 영웅이 되는 것 외에 다른 무엇이 가능했겠는가? 그는 파라오였고, 파라오는 곧 신이었다.
--- p.48 [최고의 파라오 람세스 2세는 조작된 인물이다?]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재판은 기독교 역사상 가장 커다란 사건 중 하나이다. 몇 세기 동안에 걸쳐 갈릴레오라는 이름은 로마 가톨릭교회의 전제 정치에 대항했던 대표적인 상징으로 여겨졌다. 또한 갈릴레오는 완고하고 무지한 교회와 싸우는 학자로서, 지속적으로 이성과 과학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사람으로 그려졌다. 하지만 여기에는 두 가지 아이러니가 숨겨져 있다. 첫째는, 이전까지 천문학의 대대적인 발전에 기여해왔던 것은 다름 아닌 ‘교회’였다는 사실이다. 17세기의 저명한 천문학자들 중 많은 이들은 천문학자였던 동시에 성직자였다. 두 번째는 이교도로 규정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갈릴레오 자신은 스스로를 ‘과학자로서의 책임감과 신념을 적절히 조화시키려고 노력했던 독실한 가톨릭 신자’라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만약 그가 갈릴레오라는 이름이 교회의 권위를 손상시키는 역할을 했다는 것을 알았다면 적잖이 당황했을 것이다.
갈릴레오에 관한 잘못된 믿음은, 그가 이성과 과학은 신념을 넘어 전례에 기반한 것이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편협한 교회를 계몽시키려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갈릴레오와 그를 재판했던 판사들 모두 과학과 성경이 화해를 해야 하며, 서로 상반되어서는 안 된다고 믿었었다. 갈릴레오 사건은 지금껏 알려진 것처럼 ‘이성과 종교’ 간의 갈등이 아니라 ‘좋은 과학과 나쁜 과학’의 싸움이었던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지구가 태양을 돈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갈릴레오에게는 단지 그 사실을 증명할 만한 과학적 도구가 부족했을 뿐이다. 그러나 도구가 발전되기까지는 또 다른 100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 p.146 [갈릴레오는 ‘지동설’ 때문에 종교 재판을 받았다?]
「오케이 목장」하면 모든 사람들은 마음속에 똑같은 그림을 떠올릴 것이다. 거친 황야의 먼지가 뿌옇게 바람에 날리는 애리조나 툼스톤의 거리에서, 프록코트를 입은 세 명의 건장한 사내들이 가죽으로 만든 권총 케이스를 차고 천천히 걸어오는 장면. 그들 옆에는 깡마른 남자가 엽총을 가지고 서 있다.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카우보이 복장을 한 땀에 젖은 네 명의 사내들이다. 그들 역시 권총을 차고 있다.
프록코트를 입은 무리의 우두머리는 미연방 보안관인 와이어트 어프로, 형인 버질과 모건 그리고 친구 덕 할리데이를 이끌고 있다. 그는 카우보이들에게 손을 들라고 외친다. 그러나 카우보이들은 손을 드는 대신 총을 꺼내 든다. 순간, 양쪽 모두 상대편을 향해 사격을 시작한다. 부연 연기가 사라질 때쯤이면 툼스톤을 습격했던 악당 클랜턴-매클로리 조직은 땅 위에 쓰러져 있고, 와이어트 어프가 이끄는 보안관 무리는 법과 질서가 승리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현실 속의 와이어트 어프는 샤프한 프록코트가 아닌 투박하고 두꺼운 모직 코트를 입고 있었으며, 가죽으로 만든 권총 케이스 대신 주머니에 총을 쑤셔 넣고 다녔다. 또한 ‘오케이 목장에서의 결투’는 두 악당 조직 간의 싸움으로, 승자인 어프 일당은 살인을 저지른 후 애리조나로 도망쳐 온 무리에 불과했다.
--- p.2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