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마모사는요. 꽃말이 예민한 사랑이에요. 몸을 파르르 떠는 게 재미있어서 자꾸 만지는데 그럼 스트레스를 받아요. 그리고 원래 열대 식물이라 추위에 약해요.”
아, 이제 생각나네요. 추위에 약하다고 했었는데 깜빡 있고 있었어요. 호준에게서 이메일이 도착했네요. '지금쯤 너도 그 녀석한테 푹 빠져 있겠지. 표현 없는 너 보다 백배는 귀엽고 사랑스럽잖아. 나 없는 동안 신경초에게 표현하는 방법 좀 배워둬라.' 혹 호준이가 내 마음을 알고 있는 걸까요? 그런 걸까요?
_ 사랑아 괜찮니.....
표현하라고. 표현하지 않고 알아주길 바라는 건 기적을 바라는 거라고.
누군가 날 좋아하고 있다는 것. 그걸 어떻게 모를 수 있겠어요? "네가 날 좋아하는지 몰랐다."고 말하는 사람들, 전 거짓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을 바라보는 눈빛이 달랐을 텐데, 자신의 부탁이라면 다 들어줬을 텐데, 언제 어디서든 어디에서든 그 사람의 옆자리에 앉으려고 노력했을 텐데 어떻게 그렇게 까맣게 모를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전 너무 선명하게 알 수 있겠는데 그녀는 끝까지 몰랐다고 하네요. 다 알면서 모른 척한 게 미안해서 그런 거라면 잘못 생각한 거예요. 차라리 “가 날 얼마나 좋아했는지 알고 있었다.”고 말해줬다면 그 동안의 제 사랑이 이렇게 허망하진 않을 텐데 말이에요.
_ 사랑아 괜찮니.....
등 뒤에 서 있는 사랑은 그만하라고, 앞에서 서로 마주볼 수 있는 사랑을 찾아 가라고.
“미안해요. 다이어트 중이라 간단히 바나나로 때우려고 하는데.”
왠지 어색해서 그런 거겠죠. 나랑 둘이 마주앉아서 밥 먹을 생각을 하니 차라리 굶자 싶었던 모양이지요. 보기 딱 좋은데 다이어트는 무슨, 다 둘러댄 얘길 거예요. 며칠 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어요. 부서 사람들 몇몇이 간단하게 회식을 했는데 내가 고깃집에서 맥주 한 잔 따라주겠다고 했더니 기겁하면서 술 끊었다고 하더라고요. 그렇게 좋아하는 술도 끊었다고 하고, 배고프면 화가 난다는 사람이 점심도 굶겠다 할 정도면 그 사람한테 난 불편하고 부담스러운 사람인가 봐요.
_ 사랑아 괜찮니.....
정말로 들키고 싶지 않은 마음이었냐고, 만약 당신이 그랬더라도 사랑은 숨겨지는 걸 원하지 않았을 거라고.
사람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스타일이 다 있나 봐요. 얼마 전에 형 여자친구가 집에 놀러 왔는데 눈이 똥그란 게 형 첫사랑 누나랑 많이 닮아서 깜짝 놀랐습니다. 그럼 형도 첫사랑을 잊지 못해서 첫사랑과 닮은 여자를 만나는 걸까요? 그럼 난 앞으로 평생 ‘미스 핑크’하고 비슷한 여자만 만나게 되겠군요.
'미스 핑크'는 내가 붙여준 별명이에요. 어제는 핑크색 블라우스, 오늘은 핑크색 머리핀. 그렇게 매일 꼭 하나는 핑크색으로 하고 나타나거든요. 이젠 나도 핑크색이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색이 돼버렸습니다. 물론 주위에선 남자 애가 이상하다고 놀려도 상관없어요. 이젠 어딜 가나 핑크색만 보면 그녀가 저절로 떠오릅니다. 앞으로 죽을 때까지 핑크색만 보면 그녀가 떠오를 것 같습니다.
_ 사랑아 괜찮니.....
다가갈 수 없는 사랑이라서 더 애틋할 거라고, 말할 수 없는 사랑이라서 더 안타까울 거라고.
테라스에 나와서 혼자 남은 맥주를 마시고 있는데 저 밑에 그녀와 그 사람이 서 있는 모습이 보입니다. 어쩌면 그녀가 지금 고백하고 있는지도 모르죠. 아, 저기 급하게 차에 오르고 있는 신수호 씨 모습도 보이네요. 아까 여자친구한테 무슨 일이 있는 것 같다더니 진짜 서울엘 다녀올 모양입니다. 다들 용기 있게 사랑하는데 나만 비겁하고 거짓말쟁이에다가 도망치기 대장이에요. 그러니까 난 사랑 같은 거 잃어버려도 할 말이 없습니다.
_ 사랑아 괜찮니.....
지금이라도 용기 내보라고, 오늘 단 하루만 산다는 마음으로 고백해 보라고.
결혼. 어쩜 그녀와 내가 하게 됐을지도 모르는 결혼. 올봄 막 제대한 나에게 그녀가 결혼하자고 졸라댔어요. 처음엔 농담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더라고요. 그녀 친구들이 줄줄이 결혼하는 걸 지켜보면서 위기의식 같은 게 느껴졌나 봐요. 나한텐 남의 얘기 같기만 한 결혼이 나보다 두 살 많은 그녀에겐 현실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녀 뜻대로 헤어지는 데 동의해 주었어요. 하지만 마음 한구석엔 기다려줄지도 모른다는, 그녀가 다시 내게 돌아올지도 모른다는 그런 기대가 있었나 봐요. 그러니까 이렇게 아픈 거겠죠.
_ 사랑아 괜찮니.....
이미 놓아버린 사랑에 미련을 갖지 말라고, 잡을 용기가 없었다면 행복을 빌어주라고.
저기 티격태격하며 일식 집에서 나오는 커플이 보이네요. 아마 밥 먹다가 둘이 다툰 모양이에요. 보나마나 별일도 아닌 일로 저렇게 흥분해 있겠죠. 저렇게 서로 어긋나기 시작하는 거예요. 서로가 서로의 ?기에 귀 기울이지 않기 시작하면서 연애 전선에 이상 기류가 흐르기 시작하는 거죠. 우리도 그랬으니까요. 문득 그리워질 때가 있어요. 그 사람이 내 곁에 있던 시절이, 전화 한 통이면 그 사람을 만날 수 있던 시절이 그리워질 때가 있어요. 지금의 삶이 만족스럽지 않아서가 아니라 특별한 이유 없이 그냥 햇살이 너무 찬란한 날이나 바람이 찰랑거리는 날이면 잠시 옛 생각에 잠길 때가 있어요.
_ 사랑아 괜찮니.....
궁금하겠지만 궁금해 하지 말라고, 헤어진 사람의 현재에서 벗어나야 비로소 진짜 헤어진 거라고.
처음엔 물론 좋았어요. 그 사람이 운전하는 옆모습도 멋있고, 된장찌개에 넣은 두부가 맛있다며 두부만 골라먹는 모습도 사랑스럽고, 내 얼굴만큼 큰 손바닥도 믿음직스러웠어요. 그래서 그 사람 차에 올라타면 넋을 잃고 그 사람 옆모습만 바라보고 있었고, 그 사람하고 손을 잡고 걷을 때면 세상을 다 얻은 것처럼 든든하고 뿌듯했어요.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조금씩 조금씩 그 사람이 그냥 그래졌어요. 차를 타도 창 밖만바라보게 되고, 그 사람을 위해 된장찌개를 시키는 일도 점점 줄어들게 되고요.
_ 사랑아 괜찮니.....
사랑이 식는 데 무슨 특별한 이유가 있겠냐고, 뜨겁게 끓고 있지 않으면 식는 일 밖에 남은 게 없는 거라고.
다른 사람들이 보기엔 내 잘못이라고 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친구들은 잘했다고 했어요. 널 외롭게 만드는 남자는 다시 만나지 말라고 했으니까요. 그런데 그 사람 없이 다른 사람 곁에 있는 게 행복하지 않았어요. 상대방이 아무리 따뜻한 마음을 베풀어줘도, 아무리 기념일을 잘 챙겨줘도 마음은 더 공허했어요. 그래서 솔직하게 마음을 털어놓고 헤어졌습니다. 그런데 얼마전에 그 사람에게 전화가 온 거예요. 사실 저도 기다리고 있었어요. 그 사람이 날 용서하고 다시 시작해주길. 망설임 없이 그 사람을 만나러 달려 나갔고 다시 시작하자는 그의말에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런데 마음이 또 흔들려요. 그 사람의 무심함이 날 또 외롭게 만듭니다.
_ 사랑아 괜찮니.....
멈추라고, 흔들림도 외로움도 지금 멈추지 않으면 후회할 거라고.
엄마는 그 사람한테 받은 선물이란 선물은 죄다 쓰레기통에 처넣으라고 성화십니다. 하긴 엄마도 나만큼이나 배신감을 느끼셨겠죠. 오빠는 아무렇게나 밥상 차려주면서 그 사람이 오면 보글보글 된장찌개에 아끼는 굴비까지 구워내셨거든요. 오빠는 또 증명사진 찍으러 나간다네요. 벌써 몇 번째 취직 시험에 낙방하고 있거든요. 나가면서 가슴에 비수를 찍고 갑니다.
"야, 그 자식은 우리 집 굴비는 지가 다 먹어놓고 이제 와서 오리발 내미는 거냐? 그깟 놈 확 잊어버려. 얼굴 펴고 보란 듯이 잘 살아야지. 안 그래?"
_ 사랑아 괜찮니.....
헤어지고 나면 기적을 바라게 된다고, 오지 않을 전화가 걸려오고 변해버린 마음이 되돌아오는 기적.
어제는 휴지통을 비우다가. 딸아이의 낙서를 보게 됐어요. '서준'이라는 이름이 깨알처럼 가득 차 있고, '발신번호제한'이라는 글자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습니다. 그렇게라도 녀석의 목소리를 듣고 싶은 게 딸의 마음인가 봐요. 사실 그때까진 녀석이 괘씸하다고만 생각했습니다. "니들은 헤어지는 게 왜 그렇게 쉽냐?"고 혼내주고 싶었습니다. 여기저기 눈물 자국이 나 있는 딸의 낙서를 본 이후론 그 녀석에게 "날 봐서라도 다시 한 번 생각해볼 수 없겠냐?"고 사정이라도 해봐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어요. 배가 아픈 거라면 밤새 배를 문질러 주고, 열이 나는 거라면 밤새 찬 수건을 이마에 대줄 텐데 마음이 아프니 엄마가 돼서 해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습니다. 아플 만큼 아프고 나면 낫겠죠. 어릴 때 심하게 한 번씩 아프고 나면 쑥쑥 자랐던 것처럼 이번에도 아프고 나면 마음이 쑥쑥 자라나겠죠. 훌훌 털고 일어나면 말해줄 거예요. 우리 딸이 아팠던 건 어른이 되기 위한 통과의례일 뿐이라고,지금은 사랑에 눈이 멀고, 이별에 귀가 막히고, 그리움에 가슴이 닫혀 아무것도 보이지도, 들리지도, 느껴지지도 않겠지만 그때는 이 엄마의 마음을 알게 될 거예요. 오늘 저녁엔 우리 딸이 좋아하는 갈비찜을 해야겠어요. 잘 먹어야 아픈 것도 빨리 낫죠.
_사랑아 괜찮니.....
당신의 눈에 눈물이 고이면, 엄마의 가슴은 이미 눈물바다가 됐을 거라고, 그래서 당신보다 이별이 더 아픈 사람이 바로 엄마라고.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