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하나, 풀을 먹고 사는 곤충
곤충들은 아무 식물이나 마구 먹지 않는다. 대부분은 좋아하는 식물이 따로 있고, 좋아하는 부위가 정해져 있다. 잎살만 먹는 녀석, 즙만 먹는 녀석, 썩은 나무만 먹는 녀석, 꽃가루와 꿀을 먹는 녀석 등. 만일 모든 종류의 곤충이 모든 식물을 닥치는 대로 먹어 치운다면, 식물도 사라지고, 식물을 먹이로 삼는 곤충들도 사라질 수 있다. 하지만 곤충들은 현명하게도 식물 먹이를 정해 놓고 각자의 입맛에 맞게 부위를 달리해 식사하기 때문에 식물도 살고, 곤충도 식량을 충분히 확보할 수 있다. 곤충들이 이렇게 먹이 식물을 달리한 까닭은 무엇일까?
식물은 자신이 만든 영양분을 훔쳐 먹는 곤충을 막기 위해 독성 방어물질을 몸속에 저장하고 있다. 이 방어물질은 곤충을 죽음에 이르게도 할 만큼 독성이 강해 함부로 먹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식물이 내뿜는 독성 물질에 곤충들은 오랜 시간에 걸쳐 적응해 왔다. 애호랑나비 애벌레는 다른 식물은 전혀 입에 대지 않고 오직 족도리풀류만 먹는다. 새끼의 먹이가 족도리풀이니 애호랑나비 어미는 알 낳기 위해 숲속을 샅샅이 뒤져 족도리풀을 찾아낸다. 곤충들이 자신이 먹을 먹이나 새끼의 먹이를 귀신같이 찾는 것은 식물이 내뿜는 방어물질 냄새를 찾아가기 때문이다. 하지만 식물과 곤충의 생존 싸움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잡초 중의 잡초 명아주는 자신을 맛나게 먹는 남생이잎벌레를 막아내기 위해 언제 새로운 방어물질을 개발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곤충들도 아니다. 조상이 그러했듯 자신의 종족이 계속 살아남도록 먹이를 먹는 새로운 무기를 개발해 나갈 것이다.
(2) 둘, 나무를 먹고 사는 곤충
도토리거위벌레 암컷은 딱딱한 껍질로 둘러싸인 도토리에 알을 낳는다. 어떻게 껍질을 뚫는 것일까? 도토리거위벌레의 기다란 주둥이에는 톱니바퀴마냥 이빨이 빙 둘러 나 있다. 이 이빨이 드릴 역할을 해 껍질을 뚫는다고 여겨진다. 키 큰 참나무류를 찾아와 도토리에 알을 낳고는 그냥 가지 않는다. 알 낳은 도토리 달린 가지를 땅에 떨어뜨린다. 왜 그럴까? 도토리 속을 파먹고 자란 애벌레가 땅 속으로 들어가 번데기가 되기 때문이다. 키 큰 나무에 그대로 두었다가는 조그마한 애벌레가 무슨 수로 땅까지 내려온단 말인가? 뇌가 깨알보다도 작아 그냥 ‘뇌가 있다’고만 말할 수 있는 곤충들, 그들이 나무를 무대로 펼치는 생활 방식은 실로 놀라움 그 자체다.
옻나무를 게걸스레 먹어 대면서 온몸에 똥칠하는 왕벼룩잎벌레 애벌레, 물관부 즙을 실컷 먹고는 꽁무니로 거품을 내 자신의 거처를 직접 만드는 거품벌레 애벌레들, 황다리독나방은 또 어떤가? 애벌레는 알에서 깨어나면 층층나무 잎을 송편처럼 접어 그 속에서 살아간다. 왕거위벌레 어미는 아예 새끼 집을 직접 만들고는 알을 낳고, 꽃하늘소류는 썩은 나무 중에서도 적당히 썩은 나무만 귀신같이 알아내곤 적당한 위치에 알을 낳는다. 수많은 곤충이 자연 상태 그대로를 집으로 삼거나, 필요하면 자연을 재료 삼아 집을 짓고는 지은 집을 먹이창고로 이용하며 자란다. 현재 우리가 볼 수 있는 곤충들은 수많은 시간을 거쳐 생존해 온 최후의 승자들이나 마찬가지다. 그동안 수많은 적응 실험을 하다 사라져 간 곤충의 수는 얼마나 많을까? 현존 곤충들은 우여곡절을 거쳐 빈틈없는 생존전략을 세워 온 조상의 덕을 톡톡히 보고 있는 셈이다.
(3) 셋, 버섯을 먹고 사는 곤충
천의 얼굴이란 별명을 가진 버섯과 버섯을 먹고 사는 버섯살이 곤충. 버섯살이 곤충은 땅이나 나무에서 나는 버섯을 맛있게 먹으며 평생을 버섯에서 살다 죽는다. 사람이 먹으면 환각 증상이 일어나는 갈황색미치광이버섯에는 알락애버섯벌레, 밑빠진벌레류 등이 찾아와 버섯살을 맛나게 먹고는 알을 낳고, 알에서 깨어난 애벌레는 버섯 속을 돌아다니며 버섯 밥을 먹으며 성장한다. 깜깜한 버섯 속에서 아무런 불편 없이 잘도 돌아다니니 굳이 햇볕 보러 나올 일도 없다. 그런데 버섯에 곤충이 살고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는지 포식성 곤충 풍뎅이붙이류가 나타나 배부르게 식사를 한다. 도대체 버섯살이 곤충들은 버섯을 어떻게 찾는 걸까? 버섯이 내뿜은 냄새를 좇아오는 것이다. 특히 썩기 시작한 버섯에는 통통해진 애벌레가 많다는 것을 포식성 곤충은 잘도 알고 있다.높다란 나무에 턱하니 걸려 있는 커다란 말굽버섯. 한국에선 아주 보기 드문 버섯이다. 그 속에는 누가 살고 있을까? 노란 털방망이가 끝에 달린 뿔을 가진 이름도 예쁜 도깨비거저리. 도깨비거저리는 귀하디귀해 눈 씻고 찾아봐도 안 보이니 도깨비거저리를 발견하면 행운이 덩굴째 들어온 것이다. 애벌레들은 딱딱한 말굽버섯에서 층층이 구멍을 뚫어 놓고 실컷 먹고 자라고, 번데기를 거쳐 우화한 어른벌레는 버섯 밖으로 나와 버섯 표면을 갉아 먹는다. 삼색도장버섯, 구름버섯, 줄버섯 등 숲 속의 버섯 속에는 인간 모르게 작은 곤충들의 만찬이 매일같이 벌어진다.
(4) 넷, 시체와 똥을 먹고 사는 곤충
소똥구리가 모습을 감춘 이유는 자연식 밥을 먹고 싼 소똥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애기뿔소똥구리 또한 사라질 운명에 처했지만 용케 말 똥, 염소 똥을 먹이 삼아 지금까지 살고 있다. 똥 속에 파묻혀 신나게 똥 밥을 먹는 분식성 곤충들, 온몸에 똥이 덕지덕지 발라져도 싫어하는 기색을 찾아볼 수 없고, 더욱 신나 똥밥을 배불리 먹는다. 똥 속에는 소화되지 않은 영양분이 풍부하다. 영양분이 많은 먹이를 곤충들이 가만둘 리 없다. 그래서 자연은 곤충들에게 더없이 훌륭한 잘 차려진 밥상인 것이다. 똥은 단지 식당만 되는 것이 아니다. 똥과 평생을 사는 곤충들에게 똥은 짝짓기 장소도 되고, 화장실도 되고, 애벌레가 자라는 육아실이기도 하다.
또 시체 밥상은 어떤가? 길바닥에 죽은 동물 시체, 죽은지 얼마 되지 않아 시체에 즙이 풍성하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파리류 애벌레인 구더기가 시체 밥상을 먹느라 정신이 없다. 어른 쉬파리류는 얼른 새끼들에게 밥을 먹이려고 날면서 알이 아니라 구더기를 뚝뚝 시체 속으로 떨어뜨린다. 시체에 안착하자마자 애벌레는 누가 가르쳐준 것도 아닌데, 시체가 먹이인 줄 알고 허겁지겁 먹기 시작한다. 시체가 말라붙기 전에 얼른 먹고는 애벌레 시기를 마쳐야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시체 밥상에 곤충들이 그득하면 이들을 잡아먹으려고 포식성 곤충이 등장한다. 어떻게 때를 놓치지 않고 등장해 곤충을 배불리 잡아먹고 알도 낳는지 신기하기만 하다.
(5) 다섯, 곤충을 먹고 사는 곤충
활동성이 강한 포식성 곤충, 그들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으려면 눈을 한곳에 고정시켜서는 안 된다. 움직이는 놈들을 잡아먹느라 그들의 재빠른 몸놀림을 잘도 쫓아가야 한다. 초식곤충이야 움직이지 않는 식물을 먹으니 먹이를 발견하면 엉덩이 붙이고 먹지만 포식성 곤충의 먹이는 가만히 있지 않는다. 그러니 먹이를 발견하면 보는 족족 잡아먹느라 갖은 애를 쓴다. 그들의 주둥이는 뾰족하다. 주둥이가 뾰족하면 씹어 먹을 수가 없으니 먹잇감 몸속에 찔러 넣고는 소화효소를 분비해 먹이 속살을 흐물흐물하게 만든다. 이렇게 요리가 완성되면 그때 주둥이로 쭉쭉 빨아 먹는다. 곤충을 잡아먹으니 그들의 사냥술은 곤충마다 다양하다. 왕눈이 왕파리매, 날 수 있는 능력을 십분 발휘해 마치 매가 사냥을 하듯 날면서 먹이를 낚아챈다. 이에 반해 뜀박질의 대가 길앞잡이는 달리는 능력을 십분 이용해 쏜살같이 달리며 먹이를 낚아챈다. 몸은 가만히 있고 목만 돌릴 수 있는 인내심의 달인 왕사마귀, 말벌이 공격해 오면 속수무책인데도 공동육아를 위해 집을 짓는 쌍살벌들, 말벌이 공격한 뒤 남겨진 쌍살벌 집은 폐허나 마찬가지다.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