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그렇게 살아?” 주디는 어이가 없다는 듯 당황한 표정이었다. “지금은 비상 상황이야. 어쩔 수 없어. 엄마도 이 상황이 맘에 드는 건 아니지만, 도리가 없잖아. 이주노, 다른 방법이 있으면 말해봐.” 엄마는 열다섯 살밖에 안 된 아들에게 언제나 내놓을 수 없는 답을 요구했다. 날 아들이라기보다 남동생이나 남편쯤으로 여기는 것 같았다. 나도 엄마에게 고작 열다섯 살밖에 안 된 아들이고 싶을 때가 많다. 그때 밖에 묶어놓은 개들이 컹컹거리며 요란하게 짖어댔다. --- p.30
“엄마, 오늘 무슨 날인지 알아?” 난 결국 안 해도 그만인 말을 하고 말았다. “아, 지 새끼 낳은 날 모를까 봐? 생일인데 라면 줘서 화난 거야?” “그냥…… 아는지 물어본 거야.” “솔직히 네 놈 귀 빠진 날인 건 맞지만 난 생일이 도통 이해가 안 된다. 고생은 내가 했는데 축하는 왜 네가 받아야 하냐. 생고생하고 낳은 엄마도 축하받으면 좀 안 될까” “한 번도 낳아달라고 안 했는데, 난 태어난 게 더 화나는 사람이야.” “그래, 그럼 쌤쌤하자. 내년엔 미역국 꼭 끓여 너도 먹고 나도 먹자. 해피버스데이 투 유.” --- p.36
엄마의 개 수집은 새우로 멈추지 않았다. 그 후에도 떠돌이 개들을 하나둘 집으로 끌고 왔다. 개들만 데려온 게 아니라 길고양이들까지 집 안으로 끌어들였다. “진짜 우리 집이 무슨 동물의 왕국이라도 돼?” “주노야, 이 겨울만 참아. 엄동설한 지나면 어디든 보낼게.” 엄마는 이런 식으로 내 불만을 잠재웠지만 어느새 우리 집은 열일곱 마리의 개와 다섯 마리의 고양이 차지가 되고 말았다. --- p.62
열무의 무덤이 모습을 드러내는 동안 마음에 이상한 분노가 일렁였다. 이 녀석도 한때는 주인의 사랑을 받았던 놈인데 왜 버려졌는지, 어디서 왔는지, 이름이 무엇이었는지 나는 알지 못했다. 다만 열무가 누군가의 체온을 기억하며 무지개다리를 건너기를 바랄 뿐이었다. ……(중략) 세상은 버려진 개들에게는 절대 친절하지 않다는 엄마의 말이 맞았다. 열무의 무덤에 열무가 즐겨먹던 열무 줄기를 흙 속에 꽃처럼 심어줬다. --- p.124
하늘은 참 파랬다. 그리고 눈이 부셨다. 그 하늘에 다시금 황금버스가 아른거렸다. 무거운 몸을 일으켜 황금버스에 냉큼 올라타고 싶었다. 이번만큼은 내 맘대로 하고 싶었다. 황금버스를 타고 하늘을 날아 절대로 지구로 돌아올 수 없는 곳에 있는 행성으로 달렸으면 했다. 황금버스 안에서 학교와 버스를 내려다보며 깔깔거리며 비웃고 싶었다. 우주에서 본 학교와 버스는 점 하나도 되지 않을 텐데 나는 점 하나도 안 되는 체육관 공터에서 지금 뻗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