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장에 가서 ‘정곡을 찌르는 이야기를 해야 할 텐데’ 하며 지레 겁을 먹지만 알고 보면 그럴 필요가 없다. 최소한 전시개막식에는 동시대 미술에 대해 모르는 사람 천지다. 몰라도 좀 가면 어때! 미사여구 몇 개만 기억해 놓으면 만사 오케이다. 그런 상투적인 인사치레는 최소한 침몰을 막아주는 지느러미 역할은 한다. 우아한 침묵을 연기하거나 다들 ‘예스’라고 할 때 홀로 ‘노’라고 말하는 방법도 있다. 지루함이나 거부감, 무관심을 숨기기는 식은 죽 먹기다. 자의 또는 타의로 온 주위 손님들도 다 그렇게 한다. 대화가 시작되려고 하면 미술관 1위 질문 “화장실이 어디죠?”를 던지며 피한다. --- 1장 미술관에서 들리는 말, 말, 말
공공장소의 오브제는 특히 무방비상태로 노출되어 있다. 미술관이라는 온실을 떠나, 예술의 룰을 따르지는 않는 관객들과 직접 부딪히기 때문이다. 관객 중에는 작품을 쓰레기로 알거나 장난과 훼손을 일삼기도 한다. 작품에 구멍을 뚫거나 낙서도 하고 술자리로 애용하는 일까지 벌어진다. 미국의 조각가 리처드 세라의 1977년 도쿠멘타 출품작 〈터미널〉에는 “이 개똥 같은 것에 들인 돈이면 수백 명의 목숨은 족히 구하겠다”, “고철 폐기!” 따위의 구호들로 도배가 되었다. 또 세상에서 가장 비싼 변기가 되었다. 작품 주변에 오줌이 흥건했던 것이다. 보쿰 시가 이 지저분한 작품을 구입하자 시민들은 쾌재를 불렀다. --- 1장 미술관에서 들리는 말, 말, 말
관내 기념품점은 이들의 필수 코스다. 광팬을 위한 소품들이 다채롭게 갖춰져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수건, 넥타이, 우산, 샤워커튼, 손수건, 냅킨에서 직물 디자인 하면 단연 첫째인 클레, 미로, 칸딘스키, 몬드리안의 쿠션, 엽서, 포스터, 도록, 커피잔, 장난감이 있고, 뭉크의 〈절규〉 인물 모양의 풍선인형까지 갖춰져 있다. 기념품점에서 산 물건은 십자가나 묵주처럼 ‘나도 그 미술관 다녀왔어’, ‘그 유명한 작품을 봤어’ 등을 말해주는 징표들이다. --- 2장 미술관 관람에 대처하는 방법
관람을 방해하는 장애물은 많다. 아무도 없는 전시공간에서 일거수일투족을 뒤쫓는 감시인들의 눈총을 느껴야 하는 것도 그렇다. 끝나기 직전에 가면 감시인들은 짜증스럽게 지각생 주위를 이리저리 정찰한다. 감시인들이 관람자보다 수가 월등히 많아지면 아무렇지도 않게 큰 소리로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노골적으로 작품 훼손이나 도난을 의심하는 기분 나쁜 눈초리를 보낸다. 토마스 베른하르트는 희극 《옛 거장들》에서 감시자에 대한 기념비를 세웠다. 주인공 이르지클러는 무례함도 가지가지인 관람객들을 주눅들게 하는 미술관 감시인 특유의 불쾌한 시선을 갖추고 있다. 인기척도 없이 모퉁이를 돌아 쓱 나타나는 주인공의 행태는 불쾌하기 짝이 없다. --- 2장 미술관 관람에 대처하는 방법
많은 이들이 현재의 미술에 접근할 엄두도 내지 않은 채, 지난 몇백 년 간의 미술만 바라본다. 유감스럽게도 이런 사람들은 옛날 미술일수록 소비가 간단하다는 허무맹랑한 결론에 빠진다. 렘브란트나 루벤스, 라파엘로 등에 그런 요소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옛 거장들의 그림은 무엇을 그렸는지 바로 알 수 있다. 하지만 무안한 경우가 생기는 것은 현대미술에서와 크게 다르지 않다. 예를 들어 렘브란트라고 다 렘브란트는 아니다. 학생과 위작자들이 열심히 렘브란트를 그려댔으니까. 가짜 그림에 감동해서 온몸이 얼어붙는 일도 얼마든지 일어난다. --- 3장 작품이야, 쓰레기야?
에피소드 또 하나. 수세미 포장박스를 그대로 본뜬 앤디 워홀의 작품 〈브릴로 박스〉를 전시하기 위해 캐나다로 반입하는 과정에서 세관이 미술작품에 대한 관세 면제를 인정하지 않고 무역관세를 물린 사건이 있었다. 당시 캐나다 국립미술관장이 이 미술품 사진들을 정밀 분석한 뒤 세관의 견해에 동의해 미술계에서 두고두고 웃음거리가 되었다. --- 3장 작품이야, 쓰레기야?
예술과 일상의 경계를 없애고 싶어하는 퍼포먼스가 동원하지 못할 수단은 없었다. 그래서 퍼포먼스는 우스꽝스러운 독선처럼 보였다. 비토 아콘치의 행위는 센세이션 그 자체였다. 1972년 그는 뉴욕의 대중 앞에서 자위행위를 하며 이 행위에 〈정자침대(Seedbed)〉라는 제목을 붙였다. 그는 2주 내내 ‘작품’으로서 수음을 했고, 관람객들에게서 ‘필’을 받았다. 당시 화랑 주인이었던 여성 일리아나 존아벤트는 아콘치의 행위를 막지 않았다. 작품 의도를 들은 그녀는 사춘기 아들을 둔 어머니처럼 당황해서 “비토, 꼭 해야겠다면 하세요!”라고 대답했다. --- 3장 작품이야, 쓰레기야?
예술이라는 성역을 워홀만큼 세차게 흔들어댄 사람도 드물다. 그림공장 ‘팩토리’에서 미술품을 대량 생산한다는 아이디어는 ‘워홀’ 브랜드로 돈을 벌려고 한 그의 의도에 딱 들어맞는 것이었다. 워홀의 돈 그림은 전대미문의 사건이었다. ‘작가가 무슨 돈 얘기?’ 예술은 신성하고 돈은 더럽다는 통념을 뒤집은 것이었다. 보이스가 세상을 바꾸려는 생각을 가지고, 버려진 물건들을 가져다가 다시 잡동사니를 만들어 ‘자연으로 돌아가라!’고 부르짖었다면, 워홀은 돈에 사인을 해서 그 값을 껑충 뛰게 했다. --- 3장 작품이야, 쓰레기야?
미국의 석유 재벌 아먼드 해머는 충동적으로 미술품을 수집한 사람으로, 재력을 과시하며 더 싸게 살 수 있는 기회를 찾아다녔다. 그는 여성의 누드화를 특히 좋아했다. 그의 자문역을 맡은 전 워싱턴디시 국립미술관 관장 존 워커는 해머의 소장품 가운데 위작이 많은 데 놀랐다. 해머는 그야말로 싸구려 사냥꾼이었다. 실패한 수집가가 되는 길에 위작보다 좋은 것은 없다. 해머가 소장하고 있던 진품 보증 렘브란트는 사실상 모스크바의 한 미술관 관장이 그린 것이었다. 이 네덜란드 거장의 작품은 현재 추산 300여 점이다. 그런데 1951년부터 현재까지 미국으로 건너간 렘브란트의 작품은 9,000점이 넘는다! --- 4장 미술계 항해법
삐딱했던 녀석들은 대체 어디로 간 것일까? 살바도르 달리 같은 기인도 찾아보기 힘들다. 달리는 매일 아침 표범고양이의 배설물을 수염에 발라 꼬아올렸다. 매끈한 댄디 복장에 오만방자해서 보고 있기 힘든 그는 꼭 3인칭으로 자신을 지칭했다. 1960년대에 달리는 뉴욕의 세인트 레지스 호텔에 묵으며 그림을 그렸는데, 호텔에 저명인사가 당도하는 소리가 들리면 어떻게 좀 신문에 실려볼 욕심에 로비로 달려가 과장된 제스처로 인사하곤 했다. --- 4장 미술계 항해법
샹송가수 질베르트 베코, 일명 ‘미스터 10만 볼트’는 쳐다보기도 싫은 대히트곡 〈나탈리〉를 불러달라는 팬들의 성화에 시달려야 했다. 그에게 〈나탈리〉는 그야말로 죽음이었다. 미술작가에게도 자기가 그려 이목을 끈 작품이 이처럼 짐이 되는 경우가 있다. 주문제작이 이루어지던 시절 ‘히트작’은 대량생산되었다. 19세기에도 주문이 쇄도하면 대량제작이 이루어졌다. 스타 화가 아르놀트 뵈클린은 〈죽음의 섬〉이 명성을 얻자 거의 똑같은 것을 다섯 차례나 그렸다. 노르웨이 표현주의 화가 에드바르트 뭉크는 자신의 아이콘이 된 〈절규〉를 여러 번 세상에 내보냈다. 잭슨 폴록은 컨베이어벨트를 써서 물감을 떨어뜨려야 했다. --- 5장 좋은 작품, 나쁜 작품
거창한 제목은 흔히 쓰는 기만술이다. 하지만 많은 작가들이 제목 붙이는 것을 어려워한다. 잭슨 폴록도 그 방면으로는 빵점이었는데, 두 번째 개인전을 연 화랑 주인이 번호 붙이는 일 좀 그만하라고 잔소리를 했다. 제대로 된 제목을 내놓으라는 얘기였다. 폴록은 15분 만에 모든 작품에 제목을 급조해 붙였다. 결국 새 제목들은 큰 이득을 가져다주었다. 파울 클레의 수채화 〈체험의 기억〉도 그런 경우이다. 팔릴 기미가 안 보였는데 〈동양 체험〉으로 제목을 바꾼 뒤 인기가 치솟았다.
--- 5장 좋은 작품, 나쁜 작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