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자 밖- 나는 외가 문중 조상의 신도비 고유제에 참석한다. 그 조상에 대한 소개 팸플릿을 읽으며, 이 특이한 인물 채동구에 대해 호기심을 갖게 된다. 책임을 맡은 외숙은 고유제를 준비하느라 바쁘게 왔다 갔다 하고, 고유제가 한참 진행될 무렵 오토바이를 탄 젊은 청년이 등장한다. 몸이 불편한 아버지 대신 영문도 모르고 찾아온 청년은 고유제의 중요 프로그램에 초대된 인물이었다. 그 청년은 이 행사에 대한 설명을 들으며, 신도비를 모시는 인물 채동구에 대해 알게 된다.
액자 안- 주인공 채동구는 채담의 후예로 고령에서 태어났다. 채담은 조선 전기에 두 사람밖에 없는 문과 삼장 장원으로 환로에 오른 이래 천하에 문장이 알려졌으며 특히 선견지명이 있다고 일컬어졌다. 채동구는 채담의 3대손 천일의 둘째 부인 소생이다. 천일은 임진왜란으로 혼란한 시기에 태어난 아들에게 우리나라(東)를 구(求)하라고 ‘동구’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시골 양반 가문의 서출인 동구는 열네 살에 아버지 천일이 죽자, 이복형 동정으로부터 홀대 당한다. 동구는 급하게 혼례를 하고 어머니와 두 동생들을 데리고 분가한다. 곧 어머니마저 죽었으나, 그 묘지터를 두고 형 동정의 차별과 무관심으로 분노한 동구는 동정의 집에서 동생들 몫의 유산인 땅문서를 들고 나오며 당당한 권리를 선언한다.
시골 선비들이 그렇듯, 과거를 준비해야 할 동구이지만, 가난한 집안의 이런저런 사정으로 과거는 보지 못하고, 임금과 나라에 대한 소식에 늘 깨어 있으며 자나깨나 양반임을 잊지 않았다. 광해군 때 일어난 ‘칠서의 옥’이 자신이 사는 곳에서 불과 백여 리 인근에서 벌어졌다는 사실은 동구에게 큰 자극을 주었다. 이는 곧 한양이나 임금에게 일어나는 일이 자신과 전혀 무관할 수는 없다는 깨달음으로 돌아왔다. 동구는 뻔질나게 관아 주변을 맴돌며 소문과 공론에 귀를 기울였다.
병약한 아내가 죽어 의기소침해 있던 동구에게 인조 반정은 경천동지할 사건이었다. 나라에 대한 걱정으로 끓어오르는 격동을 억제하지 못하는 사이, 이괄의 난이 일어났다. 도성을 내주고 임금이 쫓기고 있다는 소식에 홀홀단신 첫번째 가출을 감행한다. 그러나 고생 끝에 초라한 행색으로 어가 주위만 맴돌다 돌아온다. 몇 년 후 정묘호란이 일어나 또다시 집을 나서지만, 임금이 있는 곳에 도착하자마자 화의가 성립되어 허망하게 돌아왔다.
문중 사람들의 모임인 사마계에 참석한 동구는 문중 사람들을 호통치며 나라가 위난에 처했는데 나서지 않는 것을 호되게 꾸짖었다. 그러나 이 일로 문중에서 제명당할 위기에 처한다. 한편 인근 마을에 사는 이원겸이라는 선비가 찾아와 동구의 의로운 행동을 높이 사며, 동구의 추종자가 된다. 이원겸은 동구의 집에 뜻을 함께하는 선비들을 여럿 데리고 온다. 동구는 그중 한 선비의 누이와 재혼을 한다.
동구가 마흔을 넘겼을 때 병자호란이 일어났다. 국가가 외족의 침입으로 위태롭게 됨에 의기가 충천한 동구는 또다시 집을 나선다. 친척 명선을 데리고 적진으로 뛰어든다. 미욱한 명선이 청군의 창에 죽고 혼비백산한 동구는 겨우 의병의 무리에 합류하나 그곳에서 청군과 대적하여 생사의 위기를 넘긴다. 삼전도 항복으로 치를 떨며 고향으로 돌아온다. 동구는 명선의 죽음을 애도하고 국가의 위난을 서러워하며 단식을 하게 되고, 그의 집은 망국을 서러워하는 사람들의 성지처럼 변했다.
조정이 척화파와 주화파로 나뉘어 분란을 일삼고 국가가 위기에 빠지자, 동구는 그 추종자들과 함께 상소를 지어 올린다. 소현세자가 볼모로 잡혀 있는 청의 수도 심양에, 청에 반대했던 대신 김상헌과 조한영이 간신 신득연의 무고로 잡혀가게 된다. 더불어 지난번 보낸 상소가 빌미가 되어 채동구도 함께 끌려가게 된다. 심양에서 심문을 받는 중에도 동구는 늠름한 기개로 오히려 청군을 호통친다. 함께 갔던 김상헌, 조한영도 청군 앞에서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한미한 선비의 기상에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이들은 풀려나 조선으로 돌아오게 된다. 동구가 심양에 가 있는 동안 고령의 문중 권속과 친구들은 동구의 집에 모여서 동구의 충성과 의기를 기리며 동구가 살아서 돌아오기만을 학수고대했다. 고향에 돌아온 동구는 선비들의 추천으로 벼슬길에 오른다. 여러 벼슬을 거치면서 어진 성정으로 백성의 신망을 두텁게 받다가 향년 71세로 생을 마감한다. 조선 선비의 기개를 청에까지 널리 펼친 그의 행적은 후손들에게 귀감이 되었다.
액자 밖- 신도비 고유제가 진행되고, 오토바이를 탄 청년이 불려 들어간다. 채동구가 심양에 끌려갈 때 그의 추종자인 이원겸이 빌려준 말값을 돌려주는 순서가 이 고유제의 중요 부분이다. 오토바이 청년은 바로 이원겸의 후손 자격으로 이곳에 참석한 것이다. 말값을 받은 청년은 행사가 끝난 후 외숙과 대화를 나눈다. 나도 함께해 먼 조상 채동구의 행적을 다시 한 번 떠올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