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작가로서 나는 여전히 한 가지 의문을 떨치기 힘들다. 정말로 사람들이 자신들의 미래를 알게 된다면 과연 세상은 어떻게 될까?
나는 시간이란 영화와 같다고 생각한다. 조명을 받는 장면은 ‘현재’이며, 그 이전의 장면들은 이미 본 과거다. 하지만 그 이후에 나오는 장면들 역시 이미 완성이 된 것들로서, 아직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을 뿐이다. 어쨌든 이 소설을 통해 나는 미래를 보았고, 미래의 모습이 어떠할지 알고 있다. 하지만 내 입으로 말하진 않겠다. 여러분 스스로 발견하게 될 것이다. 미래가 어떤 모습으로 전개될지 알고 싶다면, 이 책을 읽어라!
마지막으로, 내가 사랑하는 배우 존 조가 태어난 나라에서 이 책을 번역 출판하게 되어 정말 기쁘다. 존이 이 사실을 안다면 당연히 나보다 백배 기뻐할 것이다. 한국인 여러분의 미래에 찬란한 서광이 비치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 '한국어판 서문' 중에서
“제 부고 기사 말이군요.”
테오가 반복했다. 아직 배우지 못한 단어를 처음 들은 것처럼.
“네, 맞아요.”
테오는 겨우 정신을 차리고 다시 물었다. (…중략…)
“부고 기사에 제가 어떻게 죽었는지도 나와 있던가요?”
이상하게도 그 순간 자신의 죽음이 기사에 날 정도로 대서특필됐다는 사실에 왠지 모르게 기뻤다. 하마터면 기사 앞머리에 ‘노벨상 수상자’라는 단어는 없었냐고 물을 뻔했다.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은 편인데, 심장마비인가요?”
몇 초 동안 차가운 정적이 흘렀다.
“음…… 죄송해요. 조금 더 정확히 말씀드리는 편이 낫겠네요. 제가 읽은 건 부고 기사가 아니라 국제면에 실린 사망 기사였어요.”
수화기 너머로 꿀꺽 침 삼키는 소리가 들려왔다.
“누군가 당신을 살해했다는 기사였죠.” --- pp.84-84
“모두가 의식을 잃었을 때도 작동 중이던 수백, 수천 대의 카메라가 있었습니다.”
뉴스 앵커 페트라 데이비스의 목소리였다.
“보안 카메라에 찍힌 화면, 홈 비디오 카메라, 방송국 스튜디오 테이프와 CNN 기록보관소의 모든 화상 기록에 대해 연방통신위원회 측의 조사 의뢰가 있었습니다. 당연히 테이프에 사람들이 의식을 잃고 거리에 쓰러지는 장면이 녹화되었을 거라고 예상했었죠.”
로이드와 제이콥이 서로 눈빛을 주고받았다.
“하지만,”
앵커가 말을 이었다.
“테이프에서 어떤 화면도 찾지 못했습니다. 정확히 말씀드리면, 비디오에 찍힌 화면은 하얀 눈뿐입니다. 검은 줄과 흰줄이 뒤섞여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을 뿐이었죠. 지금 말씀드릴 수 있는 건, 전 세계 곳곳에서 작동하던 카메라에는 ‘플래쉬포워드’ 현상이 벌어지는 1분 43초 동안 하얀 눈밖에 기록되지 않았다는 겁니다.” --- pp.90-91
“이러한 정육면체 큐브는 4차원의 세계, 즉 시간과 공간을 통해 한 사람의 인생행로를 보여주는 것으로, 보통 민코프스키의 큐브라고 부릅니다. 민코프스키 교수는 4차원의 개념을 이런 큐브 형태로 처음 설명한 학자였습니다. 여러분도 누군가의 인생행로를 4차원으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이건 저의 민코프스키 큐브입니다.”
다시 화면에 세계지도가 나타났다.
“저는 1964년 캐나다의 노바스코샤 주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토론토로 이주했고 대학 진학을 위해 하버드로 갔습니다. 일리노이 주 페르미연구소에서 몇 년간 근무했고 지금은 바로 이곳, 스위스와 프랑스 경계 지역의 유럽입자물리연구소에 근무하고 있습니다.”
다시 여러 장의 지도가 차곡차곡 쌓이면서 사방으로 밝은 빛이 반짝이는 큐브가 만들어졌다. (…중략…)
“이 단면을 보는 세계 모든 사람들의 눈을 의미하는, 상상 속의 눈을 생각해보죠.”
속눈썹까지 붙어 있는 눈동자 하나가 화면에 나타나더니 큐브 바깥쪽에서부터 조금씩 둥둥 위로 떠올라 큐브의 맨 위쪽으로 올라가서는 평행을 이루는 지점에서 멈췄다.
“그런데 플래쉬포워드 동안, 바로 이런 일이 발생한 것입니다. 이 눈이 2009년 현 시점을 의미하는 큐브의 맨 윗면을 넘어 2030년의 단면을 보게 된 거죠.” --- pp.180-181
“그렇지만 심코 박사님, 무례를 무릅쓰고 한마디 하고 싶은데요. 이건 정말 말이 안 되는 설명 같습니다. 인간에겐 자유의지라는 게 있잖습니까?”
로이드가 팔짱을 끼면서 대답했다.
“자유의지 같은 건 존재하지 않습니다.”
“자유의지는 분명히 있습니다.”
버나드의 말에 로이드가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말씀하실 줄 알았죠. 더 정확히 말하면 민코프스키 큐브를 외부에서 보았던 누군가는 버나드 씨가 그 말을 할 거라는 걸 이미 알고 있다는 겁니다. 이 모든 게 이미 석판 위에 모두 새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죠? 우린 하루에도 수백만 가지 결정을 내리고 있습니다. 어떤 결정을 하느냐에 따라서 미래가 만들어지는 거 아닌가요?”
“버나드 씨는 어제 수백만 가지의 결정을 했습니다. 하지만 어제 내린 결정은 절대로 변하지 않아요. 지나간 시간을 아무리 후회해본들 돌이킬 방법은 없죠. 내일도 또다시 수백만 가지 결정을 하겠지만 그런다고 달라지는 건 없습니다. 모든 분들이 스스로에게 자유의지가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제가 박사님 말씀을 제대로 이해했는지 들어보세요. 박사님은 우리가 본 환상이 여러 가지 가능한 미래 중 하나가 아니라, 불변하는 단 하나의 미래를 본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겁니까?”
“정확합니다. 우리는 하나의 민코프스키 큐브로 이루어진 우주에 살고 있으며, ‘이 순간'이라는 개념은 환상일 뿐입니다. 미래도, 현재도, 과거도 그 자체로 실재하며 절대로 변하지 않습니다.” --- pp.184-185
“하지만 그 당시 실험을 지켜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죠. 거의 3분 동안 지구상에 의식이 있었던 사람은 하나도 없었으니까. 만약 힉스 입자가 만들어졌다 해도 그걸 직접 눈으로 볼 수 있는 사람은 없었어요. 다른 상황이 일어났을 경우에도 마찬가지죠. 그래서 비디오테이프 화면이 하얗게 보였던 건 아닐까요? 마치 전자 눈이 내린 것처럼 보였지만, 그게 눈이 아니라고 생각해봐요. 일면 아무것도 찍히지 않은 것 같지만, 카메라는 실제로 자기가 본 걸 찍은 걸지도 몰라요. 미완의 세상 같은 거요. 지구상의 모든 것들이 미완의 상태인 모습. 관측자가 없는 상황, 그러니까 모든 사람이 의식이 없을 때 양자역학의 실험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알 수 없는 것처럼, 가능성이 있는 모든 사실 중에서 하나를 선택할 방법도 없었던 거예요. 그래서 그 테이프들은 모든 가능한 상태가 서로 겹쳐져 있는 불확실한 상황을 그대로 보여주었던 거죠.”
--- p.3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