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 속에 담긴 삶의 모습들은 이생에서의 마지막 ‘이 순간’을 나눠주시고 먼저 떠나신 분들의 소중한 선물입니다. 그들의 삶을 잠시 내 앞에 세워 지금의 나를 비추어본다면, 이 순간 내가 어떤 모습으로 살아야 하는지 우리 스스로 답을 찾는 여정이 될 것입니다.
오직 ‘잘 살아야 잘 죽을 수 있다’는 진실을 선물로 우리에게 주셨고, 고귀한 삶은 지금 이 순간뿐임을 자각하게 하신 분들……. 그분들을 떠올리면 이 순간, 이 삶이 참으로 절실하고 경이롭습니다. --- p.5, '여는 글' 중에서
죽음의 화살이 지금 나를 피해간 이 순간을 기적이라 여기면 어떨까. 우리가 삶에서 경험하게 되는 수많은 것들, 이를테면 5억 마리의 정자 가운데 하나로 선택된 것, 아기가 태어나는 것, 살아서 아프지 않고 물 한 잔을 벌컥벌컥 들이킬 수 있는 것…… 이 모두가 기적이다. 밤새 죽지 않고 새벽을 맞는 것도, 따뜻한 방바닥에 등을 눕힐 수 있는 것도, 오늘 당신이 이 글을 읽고 있는 것도 기적이다. 죽는 것 또한 기적이다. 삶에서 경험하는 것 중에 가장 파괴적이며, 때로는 아름다운 죽음. 그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사람 꼴이 어찌 되겠는가. --- p.38, '1장 마지막 노래' 중에서
건강한 애도의 여정을 보내는 건 불가능한 일일까? 이 명제를 떠올릴 때마다 나는 호스피스로서 죽음을 외면하는 우리 사회의 인식을 바꾸는 일이 무엇보다 절실함을 느낀다. 죽음을 준비하고 죽음의 실상을 조금이라도 인식하면서 산다면, 내 살점보다 귀한 자식과 가족을 떠나보내는 심정이 완벽하게 절망과 슬픔으로 뒤범벅되진 않으리라. --- p.61, '1장 마지막 노래' 중에서
한순간의 찰나, 그것밖에 없다. 찰나 생이고 찰나 멸이다. 순간순간 죽음 속에 삶이 존재하고, 삶 속에 죽음이 담겨 있다. 철로의 양쪽 레일을 달리는 기차처럼 삶과 죽음은 그렇게 매 순간 함께 달려간다. 매 순간 죽고 태어나는데 어떻게 함부로 살 수 있겠는가. 찰나 멸, 찰나 생 사이에서 너와 내가 만났으니 이 얼마나 고귀한 인연인가. --- p.65, '1장 마지막 노래' 중에서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내 의식은 성장하고 있었나 보다. 나의 삶에 많은 변화와 전환이 있었다. 투병하면서 병원 지을 땅을 찾아다녔고 모금을 하고 법회를 했다.
호스피스는 온전히 수행으로 전환되었고 다른 이들의 죽음을 대면할 때면 고통스러워하기보다는 평화로움과 희망의 에너지로 다가섰다. 내일을 기약하기보다는, 순간순간에 마음을 다해서 머물렀다. 순간을 천년같이 소중히 여기면서 열심히 살았고, 나는 지금 내 인생에 불어오는 바람을 벗 삼아 파도타기를 즐기면서 여기에 있다. --- p.166, '4장 무소의 뿔처럼 홀로 가는 길' 중에서
오십이 넘은 지금에서야 사람들의 아픔과 고통이 선물로 다가온다. 그 고통이 무엇이든 내 작은 가슴으로 품어안을 때마다 내 속에 있는 아픔까지 치유받는 느낌이다. 서로에게 치유의 빛이 되어주기 위해서 우리는 이생에서 만나지는 것인가 보다. --- p.175, '4장 무소의 뿔처럼 홀로 가는 길' 중에서
옛날에는 밖에서 죽으면 객사라고 해서, 죽기 전에 집에 모시는 게 급선무였다. 한데 요즘은 집에서 죽으면 안 된다며 환자를 들쳐 업고 병원으로 뛰어야 하는 것이 우리네 문화인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내가 살던 아늑하고 익숙한 내 방에서 죽음을 맞고 싶은 게 인지상정이다. 그런 상태에서 누군가가 죽어가는 나를 업고 병원으로 뛴다고 상상해보라. 아직 살아 있는데, 단지 기운이 없고 말할 힘이 없는 상태일 뿐인데, 죽기 위해 병원에 실려가야 하는 신세라니……. 얼마나 허탈하고 허망하며 허허로운 일인가. --- p.209, '5장 또 다른 시작을 준비하는 간이역' 중에서
환자의 마지막 여정에 함께한다는 것은, 돌보는 이와 떠나는 이가 서로에게 보살행을 실천하는 길이다. 돌보는 이는 떠나는 이의 마지막 여정이 아름다울 수 있도록 성심성의껏 보살피는 가운데 자신의 죽음을 준비하고 죽음에 대한 의미와 가치를 되새겨볼 수 있다. 다른 이의 죽음을 온전히 지켜보면서 나의 죽음을 되새기는 그 순간, 삶은 변한다. 그래서 나는 많은 이들이 단 한순간만이라도 호스피스가 되어보길 바란다.
--- p.255, '6장 모두가 함께 부르는 노래'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