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2년 10월 8일, 전남 해남군 문내면 선두리에서 박근배 씨와 김인엽 씨의 아들로 출생했다. 우수영 초등학교, 목포상업학교를 졸업하고, 전남대 상과대학 3년을 수료했다.
1954년 2월 15일, 통영 미래사로 입산, 출가한다.
1956년 7월 15일, 송광사에서 당대의 큰 스승이었던 효봉 선사를 은사로 사미계 수계를 받는다.
1959년 3월 15일, 통도사 금강계단에서 자운 율사를 계사로 비구계 수계를 받는다.
1959년 4월 15일, 해인사 전문 강원에서 명봉 화상을 강주로 대교과를 졸업한다.
1960년 초봄∼1961년, 운허스님의 부름을 받고 통도사로 가 『불교사전』 편찬 작업에 동참했고, 이 일을 계기로 타고난 문재(文才)를 발휘해 글을 쓰기 시작한다.
1967년, 동국역경원 개설에 참여하고, 역경위원으로 활동한다.
1972년, 스님의 첫 저서인 『영혼의 모음』이 발간된다.
1973년, 대한불교 조계종 기관지인 불교신문사 논설위원, 주필을 역임한다. 함석헌, 장준하 등과 함께 민주수호국민협의회를 결성, 유신철폐 개헌 서명운동에 참여했으며 〈씨알의 소리〉 편집위원으로 참여한다.
1975년 10월, 불현듯 송광사로 돌아간다. 인혁당 사건이 발생, 8명의 민주화 운동을 하던 젊은이들이 사형당하는 것을 보고 큰 충격을 받는다. 한편 반체제 운동의 한계를 느끼고 송광사로 가 뒷산 중턱에 불일암을 짓고 홀로 수행한다.
1976년, 스님의 대표적인 저서, 『무소유』가 발간된다.
1987년, 미국 LA에서 김영한 보살(1999년 작고함)이 자신의 소유인 대원각의 대지 7천여 평과 건물(40여 동) 일체를 불교의 수행도량으로 바꾸어달라며 기증할 뜻을 밝힌다. 하지만 법정스님은 완곡한 사양의 뜻을 밝힌다.
1992년, 저작 활동으로 명성이 높아져 불일암으로 많은 불자들의 방문이 이어지자 다시 출가하는 마음으로 불일암을 떠나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강원도 산골, 화전민이 버리고 간 오두막에서 지내기 시작한다.
1993년 7월, 「연못에 연꽃이 없더라」는 글을 발표해 정부의 종교 편향 정책을 지적한다. 1993년 8월, 지인들의 권유로 순수 시민운동 ‘맑고 향기롭게 살아가기 운동’을 시작한다.
1995년, 맑고 향기롭게 살아가기 운동이 조용히 정착하면서부터 김영한 보살이 거듭 대원각을 법정 스님께 기증하겠다는 뜻을 밝힌다. 네 차례나 사양하던 법정 스님은 주변 사부대중의 간청을 수락해 김영한 보살의 뜻을 받아들이기로 결심한다. 다만 스님 개인이 아닌 조계종단의 이름으로, 자신은 상징적인 관리자(주지가 아닌 회주)의 입장에서 대원각을 기증받겠다는 의지를 천명한다.
1997년 12월 14일, ‘맑고 향기롭게’ 근본도량 길상사 창건 법회를 연다. 4천여 불자가 참여한 가운데 경내 극락전에서 이계진(현 국회의원) 아나운서의 사회로 창건 법회가 진행된다. 각 언론사의 열띤 취재 경쟁 속에서 천주교 김수환 추기경이 창건 법회에 참석해 축사를 하여 다시금 화제를 불러일으킨다. 이날 법정스님은 “길상사가 가난하면서도 맑고 향기로운 도량이 되길 바란다”면서 “선택된 맑은 가난, 즉 청빈은 삶의 미덕이며 마음의 평화를 이루게 하고 올바른 정신을 지니게 한다”는 내용의 법문을 한다. 한편 법정 스님께 길상화(吉祥華)라는 법명을 받은 김영한 보살은 개원 법회에 참석해 “없는 것을 만들어서 드려야 하는데 있는 것을 내놓았을 뿐이니 의미가 없다”고 말해 모든 이들의 가슴에 환희심을 일으킨다.
2004년, 그간 격월로 해오던 ‘맑고 향기롭게’ 근본도량 길상사에서의 대중 법문을 연 2회, 4월과 10월 두 번 한다.
2007년 10월, 폐암 진단을 받는다. 그러나 이 병고도 당신을 찾아온 친지 중 하나라며 어르고 달래며 지내시겠다는 것을 친지 및 상좌들이 수차례에 걸쳐 간곡히 권유해 치료를 위해 도미한다. 세계 최고 권위의 의사들조차 성공률 4%라며 치료를 주저했으나 ‘이분은 수행자로 일반인들과는 전혀 다르다’는 친지들의 강력한 주장에 치료를 시작, 현대 의학으로는 설명이 불가능하다며 담당 의사들이 놀랄 정도로 회복한다.
2008년 2월, 미국에서의 치료를 마치고 귀국한다. 이후 다시 길상사에서의 정기 대중법문 하시고, 글도 다시 쓰실 정도로 회복한다.
2009년 4월, 병고가 재발하여 치료, 요양한다.
2010년 3월, 사단법인 맑고 향기롭게 이사장, 길상사의 ‘어른 스님’으로 주석하시다가 11일 입적한다. 13일 송광사에서 다비식을 거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