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더 이상 울지 않고, 흔들리지도 않습니다. 모두 제자리를 찾아, 가고 왔습니다. 문득 정신을 차렸을 때 사위는 고요했습니다. 너무 고요해서 제가 꿈속에서 운 것은 아닐까 싶습니다. 당신이 떠난 줄 알지만 저는 자주 놀랍니다. 낮은 발소리에도 놀라고 낙엽 뒹구는 소리에도 놀랍니다. 나뭇잎이 공연히 떨어지고 발소리가 저 혼자 날 리 있겠습니까. 저는 잎 지는 소리에 당신이 왔음을 압니다. 초겨울 빈 가지에 걸린 달빛이 홀로 외롭습니다.
--- 본문 중에서
사람은 떠난 후에야 비로소 그리워지는 법입니다. 하물며 우리는 함께 있어도 그리워했는데 당신이 가시고 없으니 그리움이야 오죽하겠습니까. 강물은 굽이굽이 만나고 헤어지기를 거듭하지만 끝내 다시 만나는 법이라고 하셨지요. 걸음을 재촉한 강물도, 더디 흐른 강물도 바다에서 만나기는 매한가지라고 당신은 힘겨운 목소리로 말씀하셨지요. 저는 당신이 힘겹게 이어가신 말씀을 잊지 않았습니다. 당신은 서둘러 떠나셨고 저는 남았지만 우리는 바다에서 만날 것입니다.
착한 남자가 있다. 더 없이 착한 여자가 있다. 아들을 극진히 생각하는 아버지는 아름다운 여자를 만나면 아들이 불행해진다는 예언에 따라 여자를 만나지 못하게 한다. 운명은 착한 남자와 착한 여자를 만나게 하고 운명적으로 두 남녀를 갈라놓는다. 사랑이 있다. 착한 이들 사이에 사랑이 생겨났다. 이들로 인해 조선 중기의 가족 세사에 지극한 사랑의 무늬가 있음을 알 수 있게 되었다. 불멸의 사랑은 편지로 남았다. 사랑이라는 몰약이 발라진 육체는 썩지 않았다. 역사가 알지 못하고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사람들이 그들만의 사랑의 역사를 만들었다. 착한 사람들이 감동할 수밖에 없는 소설이 우리 앞에 놓였다. - 성석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