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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여왕

여행의 여왕

: 무데뽀 정신으로 무장한 그녀의 아슬아슬 세계 여행

김정화 | 큰솔 | 2010년 04월 26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리뷰 총점8.5 리뷰 4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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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0년 04월 26일
쪽수, 무게, 크기 334쪽 | 488g | 143*210*30mm
ISBN13 9788990611970
ISBN10 89906119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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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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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망(!)의 삽질 제3탄은 중국 국경에서였다. 망할 놈의 비자 때문에 일이 계속 꼬이자 나는 오만 가지 정이 다 떨어져 전격적으로 중국을 뜨기로 했다. 그 바람에 한국 돈으로 70만원 정도 되는 중국 런민비를 그대로 들고 국경까지 와버렸다. 하는 수 없이 네팔에 가서 환전할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국경의 암환전상이 내게 접근해 의외로 좋은 환율을 제시했다. 예상했던 환율보다 상당히 좋은 환율에 귀가 솔깃해진 나는 앞뒤 재보지 않고 환전을 해버렸다. 그 많은 중국 런민비를 전부 네팔 루피로 말이다. 지구상에서 하루 10불 내외로 여행하는 게 가능한 몇 나라 중의 하나가 네팔이다. 그래놓고는 흡족해서 싱글벙글~ 결국 버스에서 만난 한국인 아저씨 더 이상 못 봐주겠다며 이렇게 덧붙였다.
“이런 말까진 안 하려고 했는데 말이야··· 그렇게 계산 못하고 머리까지 나빠서 세계를 어떻게 여행하겠다는 거야? 진짜 걱정된다~"

관광이고 뭐고 속히 파트나를 탈출하고픈 일념뿐이었다. 예전에 인도를 여행했을 때에는 노점상에서 파는 튀김이며 스위트도 잘 사먹었다. 여기는 인도니까! 나는 인도를 좋아하니까! 그런데 이번에는 도무지 그럴 용기가 나지 않았다 결국 나는 이번에도 호텔 식당에 가서 저녁을 먹었다. 가장 못사는 곳에서 가장 사치를 부리고 있는 것이다! 나는 심각한 위기감과 자괴감을 느꼈다. 나는 내가 현지인과 잘 어울리고 스스럼없이 함께 먹고 자는 여행자인 줄 알았는데 이제 보니 대단한 착각이었다. 이러면서 과연 여행을 계속해야 하는 건지 회의가 들었다.

그렇게 시작된 네 여자의 ‘대장금 놀이’는 마술레에서 2박3일 내리 밥만 해 먹고 살면서 절정을 이뤘다.
‘맛이 훌륭하오. 송 상국을 최고 상궁으로 임명하오.“
“양파 썰기는 서 상국이 맡으심이 어떠하겠소?”
“프라이팬이 부실하니 현 상국이 옆집 가서 좀 빌려오시구려.”

베두인 여자는 남편이 불편함 없이 놀고먹도록 조용히 뒤에서 밥해주고 자식 낳고 일하는 것을 당연한 도리로 여긴다. 한국인 형수처럼 자기주장을 하지도 않고, 남편도 육아에 공동 책임이 있다는 둥 망발도 하지 않고 말이다. 남자가 친구끼리 얘기하는데 어디 천한 여자가 끼어든단 말인가! 그런 걸 보면 역시 결혼은 베두인 여자와 해야겠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연애는 연애고 결혼은 결혼이니까! --- '어느 베두인 킬러의 이야기' 중에서

혼자 여행하다 몰타에 와서 한국인을 떼로 만나니 정말 좋더라고요. 그런데 한국인과 으샤으샤 하며 지낸 건 좋은데 부작용이 두 가지 있더군요. 하나는 투자한 돈과 시간에 비해 영어 실력이 거의 늘지 않은, 예상했던 결과! 또 하나는 전에 없던 향수병이 생긴, 전혀 예상치 못한 결과였습니다.

“내 남편? 이름도 기억 안 나!”
난 처음에 할머니가 농담하는 줄 알았다. 아니면 치매가 좀 있거나. 자식은 있느냐고 물으니 자기한테는 자식이 없는데 남편한테는 아들이 하나 있다는 것이다. 그녀의 남편은 아들이 있는데도 없다고 속인 채 그녀와 결혼했고, 그 사실을 수십 년 동안 그녀에게 숨겨왔다는 것이다.
“이게 그 이유야. 내가 남편의 이름을 잊어먹은 이유.”

더욱더 한국에 있는 개들과 가족의 얼굴을 보고 싶었다. 그런데 망할 놈의 느려 터진 인터넷! 겨우 연결됐나 싶으면 서로 공허하게 “여보세요” 소리만 하다 끊어야 했다. 평소라면 포기했을 일이다. 하지만 때가 때인지라 간절했고 오기가 났다. 그래서 집요하게 ‘새로고침’을 클릭하고 있는데 메신저에 새로운 메시지가 들어왔음을 알리는 깜빡거림이 떴다. 클릭해보니 아버지의 메시지였다. 칠순이 넘은 노인네가 언제 배웠는지 촛불 켠 케이크 모양의 이모티콘을 보내신 거다.
“정화야, 생일 축하한다!”
순간 목이 메고 눈물이 쏟아졌다.
이렇게 사서 고생하면서, 이렇게 미운 사람이나 만들면서 과연 여행을 계속해야 하는 걸까?

내 에스파뇰 개인 교사였던 모니카는 나를 가르치며 한국어 하나를 제대로 외웠다. “까먹었어!”모니카가 “muy bien(잘했어!)”하면 좋아서 몸을 흔들어대고, 모니카가 숙제를 낼라치면 “mucha tarea(숙제 넘 많아)~”라며 멋대로 공책을 덮었다. 그러면서 나는 한 문장에 영어와 한국어와 에스파뇰을 다 섞거나 그래도 안 되면 애교와 우김 기능을 자동 작동시켰다.

김치 재료를 사러 처음 한인촌에 갔을 때 나는 타임머신을 타고 1980년대 초반 한국의 어느 읍내에 떨어진 줄 알았다. ‘또또와풍년집’, ‘고향식품’, ‘만나분식’ ‘서울떡방앗간’···. 이런 향수 어린 간판들을 달고 한국보다 더 한국적인 거리 풍경이 이역만리 아르헨티나에 펼쳐져 있었다.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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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의 말

영어와는 고등학교 졸업 이후 담쌓고 지냈고, 나이는 서른에서도 한참 후반인 데다, 허리 디스크에 툭하면 장 트러블로 고생하는 저질 체력이고, 전셋집을 빼서 마련한 여행 자금 3500만원이 재산의 전부인 여자! 바로 2007년 당시의 나다.

그런데 신기한 건, 여행을 하면서 보니 내 핸디캡이 오히려 메리트로 작용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는 것이다. 혼자 다닌 까닭에 행운을 더 많이 만날 수 있었고, 여자인 까닭에 세상의 소수자에게 더 마음을 내줄 수 있었으며, 나이가 많은 까닭에 꽃 같은 나이에 여행했을 때보다 더 깊고 넓게 세상을 볼 수 있었다.

여행을 하기 전 나는 하기 싫은 일과 미운 사람 투성이였고 사사건건 날을 세우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돌아온 지금은 하고 싶은 일과 좋은 사람이 너무 많아 우선순위를 고심하는 사람이 되었다. 또 희망, 믿음, 미래 등 전에는 가까이하지 않던 단어들을 지금은 내가 먼저 얘기하고 있다. 심지어 오늘은 무슨 일로 기쁘게 될까 기대하며 하루를 시작해서 이따금 스스로에게 묻는다. “미친 거 아냐?”

나조차 믿을 수 없는 이러한 변화는 723일 이라는 적잖은 시간을 길 위에서 보낸 덕분이다. 혼자 배낭여행을 하는 사람은 하루에도 수십 번씩 ‘결정'을 해야만 한다. 숙소에서 행선지까지 사소한 것도 일일이 선택해야 하고 끊임없는 돌발 상황에 즉각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결정도 책임도 누구에게 돌릴 수 없는 나의 몫. 그 결과는 수없는 자기환멸과 자기애의 롤러코스트였다. 그렇게 723일을 보내고 났더니, 내가 무슨 마늘과 쑥만 먹고 100일을 버틴 곰이라고 새로운 사람이 되는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지난 723일간 내가 겪은 길 위에서의 절망과 기쁨과 감동을! 그래서 아쉽고 부족하지만 이 책을 세상에 내놓는다. 그리고 감히 기대해본다. 업그레이드된 『단군신화』와 함께 탄생할 제2, 제3의 웅녀들을! 더불어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며 그녀들이 하게 될 이런 말을!

“그까이꺼 세계 여행~”
“그까이꺼 리스타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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