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에 분석 훈련 차원에서 심리치료에 참여했을 때, 이에 대해 깊이 생각해본 적이 있었다. ‘심리치료사’로서의 나와 ‘어머니의 특별한 도우미’로서의 나를 분리해준 이 과정 덕분에 나는 개인적으로 성장했고 연구도 더욱 발전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뒤, 어머니와 나에 대해 글을 쓰면서 비로소 내 안의 진정한 목소리를 발견하게 되었다. 글을 쓰면 쓸수록 어머니의 자아상이 내 자아상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그 때문에 내가 어떻게 어머니를 위한 도우미 역할을 하게 되었는지 더욱 확실히 알게 되었다. 나는 어머니와 내가 윗세대에서 일종의 일그러진 거울을 물려받았음을 깨달았다. 제니와 그녀의 어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병실에 들어가 혼수상태에서 태아처럼 웅크린 채 죽어가는 어머니를 보았을 때, 흐물거리는 빨간 젤리가 든 반투명 컵과 뜯지 않은 반 파인트짜리 탈지 우유가 침대 옆 쟁반에 놓인 게 보였다. 어머니의 숨소리는 인공호흡기의 일정한 박자와는 달리 불규칙하고 나지막했다.
이런 어머니에게 젤리와 우유라니, 정말 우스웠다. 어머니가 죽어가든 아니든 영양사들이 분명 영양분을 충분히 공급하고 있을 텐데 말이다. 난 빛을 차단하는 무거운 셔터 같은 그녀의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어머니는 마지막 말을 내게 건네셨다.
“집에 가고 싶구나.”
난 그때 마지막으로 어머니를 위해 그 익숙한 역할을 또 한 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려울 때 어머니를 도와주던 내 특별한 역할 말이다. 하지만 의사들이 한 말을 급히 떠올리며 마음을 다잡았다. 맞서 싸우든 아니든, 어차피 병원에서 돌아가실 테니까. ---pp.22-23
고대 신화에 등장하는 자아도취에 빠진 소년 나르키소스는 연못에 비친 자기 모습을 보고 사랑에 빠져 오래도록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결국 물속에 빠져 죽는다. 그런데 우리는 이 나르키소스라는 인물에는 익숙하지만 이 신화에 함께 등장하는 요정 에코는 이야기 속에서 나르키소스가 그랬듯 무심히 지나친다. 에코는 제우스의 아내인 헤라에게 벌을 받았다. 여신 헤라가 남편 제우스와 에코 사이에 부정한 일이 있었다고 오해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헤라는 에코가 평생 누군가에게 먼저 말을 건넬 수 없게 만들어버렸고 결국 에코는 누군가가 자신에게 건넨 말만 되풀이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에코는 잘생긴 나르키소스를 흠모했다. 어느 날 에코는 나무 뒤에서 동경에 가득 찬 눈빛으로 나르키소스를 바라보며 그가 말을 걸어주길 기다렸다. 때마침 근처에 친구들이 있다고 생각한 나르키소스가 큰 소리로 말을 건넸다. 그러자 자신에게 말을 건넨 것으로 착각한 에코가 다시 되받아쳤고, 그 소리에 나르키소스는 누가 나타날지도 모른 채 “이리 와!”라고 소리쳤다. 그 말에 용기를 얻은 에코가 밝은 곳으로 나와 “이리 와!”라고 똑같이 외치며 나르키소스를 향해 두 팔을 벌렸다. 그러나 자신에게만 관심이 있는 나르키소스는 에코를 보고도 고개를 돌려 외면했고 절망감과 수치심에 싸인 에코는 결국 자기 목소리만 되받아쳐 들려오는 어두운 동굴 속에 숨어 살게 된다.
여기서 에코가 느끼는 고립감은 자신이 나르키소스의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느낌에서 비롯된 것이다. 나르키소스가 그 자신만 바라보았기 때문에 에코를 외면한 것처럼, 일부 어머니 특히 자아상이 왜곡된 어머니들은 자신만 바라보는 내적 응시의 경향이 있어서 딸들을 간과할 때가 많다.
여기서 ‘간과한다’는 말은 ‘보지 못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보다는 딸을 나름의 요구, 생각, 감정을 가진 하나의 개인으로 보지 못한다는 뜻이다. 물론 어머니를 나무라는 것은 아니다. 어머니는 어쩔 수 없이 딸의 분리를 막을 수밖에 없다. 어머니 자신 역시 자기 어머니에게서 완전하게 독립하지 못한 여성으로서, 자신의 어머니 대신 딸을 그 자리에 놓기 때문이다. ---pp.89-91
여성들이 어머니에 대한 좋지 않은 감정을 스스로 용납하기 어려운 이유가 무엇일까? 그리고 이러한 감정을 피하기 위해 그런 여성들은 어떤 보호막을 세울까? 이번 장에서는 이런 점에 대해 살펴보고 화, 분노, 애증, 적대감, 난처함, 분개, 원한, 좌절, 짜증 등의 감정으로 괴로움을 겪거나 구속당하지 않고 잘 대처하기 위해 두 번째 생각고리를 어떻게 사용할 수 있을지도 알아보려 한다. 이는 드러내기, 내버려두기, 밑바닥까지 느껴보기의 세 단계로 구성되며 궁극적으로 ‘엄마를 향해 내재된 분노를 직시’하는 것이 목표다.
물론 모든 딸이 어머니에 대한 좋지 않은 감정을 억누르고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런 감정을 드러낼 때 딸들은 저마다 잘못된 방식으로 감정을 드러내거나 이를 다루기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일 때가 많다. 그리고 딸마다 느끼는 감정의 깊이가 다르고, 부정적인 감정뿐 아니라 동시에 어머니에게 많은 사랑을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공통적인 특징, 즉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감정의 깊이에 상관없이 딸의 마음속에 숨겨진 힘겨운 감정들이 있으며, 유년기 어머니에 대한 불편한 감정을 인정하고 이를 직면하지 않으면 이는 결국 자신을 억압하는 방식으로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
---pp.176-1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