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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우주들

작은 우주들

: 클라우디오 마그리스 선집 2

[ 양장 ] 인문 서가에 꽂힌 작가들이동
첫번째 리뷰어가 되어주세요 | 판매지수 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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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7년 03월 30일
판형 양장?
쪽수, 무게, 크기 352쪽 | 570g | 138*222*30mm
ISBN13 9788954644891
ISBN10 89546448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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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할 줄도 모르고 행복해할 줄도 모른다는 것, 시간을 불태워 당장 끝장내려는 격분을 누른 채 끝까지 시간과 순간순간을 살아낼 줄 모른다는 것, 아마 원죄란 이런 것이 아닐까. 설득으로도 안 되는 것, 미켈슈테터는 그렇게 표했다. 원죄는 죽음을 끌어들이고, 죽음은 삶을 소유하여 시간의 흐름 속에서 모든 순간을 견딜 수 없게 만들어 삶의 시간을 파괴하며 질병이라도 되는 듯 빨리 지나가버리도록 다그친다. 시간을 죽인다는 것은 완화된 형식의 자살인 셈이다.--- p.152~153

스테파노는 지상의 소금이다. 그와 함께 있으면 떠들썩하고 공포스러운 상황 속에서도 덜 외롭다고 느꼈다. 그가 더이상 존재하지 않게 되자, 이제 많은 사람이 웃으며 살아가는 일이 더 어려워졌고, 매순간을 깊숙이 있는 그대로 향유하기도 힘들어졌다. 그는 여전히 이런 이야기를 들려준다. “놀고 있는 어린 성 루이지 곤차가에게 어느 경건하고 거만한 친척이 물었다지. ‘만약 네가 몇 분 뒤에 죽는다는 걸 알면, 넌 뭘 하겠니?’ 아이가 답했다지. ‘계속 놀 거예요.’”--- p.162

세월이 흐르면서 작별의 조총弔銃 소리는 점점 늘어갈 것이며, 일제히 울려퍼지는 북 소리에 그 소리가 새해 첫날을 위한 것인지 장례식을 위한 것인지도 더이상 알 수 없게 될 것이다. 어쨌든 페체토에서는 공동묘지조차 밝고 잘 정돈되어 있으며, 그 무덤들이 “새로운 휴양객들과 이방인들의 선망 대상이 되어가고 있다”고 비토리오 베네데토 신부는 장담했다.--- p.171

토리노 출신 독일어문학자라는 말은, 운명과도 같은 근대와 타협하고, 마르크스주의의 요람이자 그 유토피아의 강점과 약점을 보여주는 이데올로기적이고 역사적인 무대였던 독일과 타협할 것을 뜻했다. 토마스 만이 말했듯, 횔덜린을 읽는 마르크스의 꿈, 말하자면 소외로부터 해방된 세상의 산문과 마음의 시 사이의 타협은 근대 독일 문학의 핵심이었고, 토리노의 문화는 그 꿈을 충분히 체험했다.--- p.178

꼬치에 꿰어 돌아가는 어린 양 옆에서, 자기 배로 관광객들을 데리고 갔다가 라브 섬에서 돌아온 미로가, 벌써 오래전부터 해오던 이야기인데 매년 약간씩 다르게 바뀌곤 하는 이야기를 꺼낸다. 이차대전 중에 라브 섬의 캄포르 만에서 멀지 않은 곳에 독일군 장교들의 감독하에 로아타 장군이 지휘하는 이탈리아군이 세웠던 강제수용소가 있었는데, 그 고문자들 중 한 명이 휴양객 차림으로 돌아왔더라는 이야기다. 그 수용소에서 어린이를 비롯해 많은 슬라브인과 유대인이 죽었다. 매년 여름 라브 섬에서 누군가는?늘 대부분 독일인?관광객을 보고 예전 고문자들 중 하나가 틀림없다고 주장하고, 다른 사람들은 그가 옳다거니 틀리다거니 반박하다가, 얼마 후면 이 모든 잡담과 염탐도 허무 속으로 녹아든다. 시간은 메이크업 전문가이며, 윤곽과 표정을 조정하고 손질한다. 따라서 오랜 세월 뒤에는 손톱이 뽑힌 채 땅바닥에 쓰러져 있던 누군가를 위에서 바라보던 그 얼굴을 알아보기 어렵게 되고 만다. 게다가 살인자들은 대개 매우 평범한 모습이고 많은 사람과 비슷하다.--- p.212

어느 날 한 경찰이 그를 풀어주었는데, 그더러 귀를 잘 열고 있으면서 누가 체제에 대해 불평하는지 자기들에게 보고하라고 했단다. “그런 것은, 제기랄, 나는 절대 해본 적이 없어요.” 그래도 풀려난다는 생각에…… 하지만 그는 해결책을 찾아냈다. 토요일마다 그는 몰래 경찰에게 갔고, 누가 욕을 했는지, 언제나 비가 온다는 둥 물고기가 별로 없다는 둥 누가 불평을 해댔는지, 누가 장모와 싸웠는지, 누가 삶이 힘들고 어렵다고 말했는지 소상히 그들에게 이름을 알려주었다. 몇 주 동안 이런 고발만 해대자 경찰은 그 쓸모없는 정보원을 그냥 내버려두기에 이르렀고, 마르코는 늘 하던 어부 일로 돌아갔다는 것이다.--- p.222

로자리야는 루베니체에서 성직자가 상대적으로 많이, 세 명이나 나온 것에 대해 자랑스러워하고, 교회를 돌보고, 꽃병에 물을 갈아주고, 촛불을 켜는 일들에 만족해하고 있다. 그 위에까지 와본 일부 관광객이 크리스마스 때 규칙적으로 보내주는 엽서를 자랑할 때도 있다. 주름살투성이 얼굴로 장난꾸러기처럼 근시 눈가에 웃음을 지으며 날렵하게 움직이는 그녀는, 작고 가볍다. 삶의 어떤 중력도 그녀를 아래로 끌어당기지 못할 것이다. 시간이 되면 한 번 훅 부는 바람에 깃털처럼 천국으로 갈 것이다.--- p.230~231

한 젊은이의 발이 조개껍질을 밟고, 그 조개껍질은 부서진다. 날카로워진 파편에 발이 다친다. 생명의 피다. “사랑은 호두와 같아./ 깨뜨리지 않으면 맛볼 수 없어.” 조개껍질이 바닷가에 부서진 채 펼쳐져 있다. 바닷물이 그 발의 흔적을 씻어 없애준다. 세월이 조수처럼 흐르고, 파편들은 둥글어지고, 또다른 맨발 아래서 곱게 부서져 사라진다.--- p.234

코테초게임에서는 이기는 사람이 진다. 더 많은 카드를 얻고 더 많은 점수를 얻는 사람이 지는 것이다. 바로 이런 이유로 삶이랑 닮았다고 토니는 말한다. 삶은 종종 (아주 가벼워 보이지만 조만간 무거워져 당신을 아래로 끌어당기고 마는) 다이아몬드 에이스나 스페이드 킹처럼, 이런 매력적인 것까지 포함하여 많이 쌓으면 쌓을수록 더 많이 우리를 기만하기도 한다. 상대편이 게임에서 지게 하려고, 시공간곡률이나 하느님의 마음속에 있는 거미줄처럼 언제나 준비되어 있는 계산들과 개연성을 끊어나가면서 완승할 때처럼, 실제로 매번 이겨 모든 걸 거둬들일 일이 없는 한 말이다.--- p.239~240

C는 공원을 안심할 만한 곳으로 만들고 꺾인 꽃을, 주위의 모든 그림자를 잊도록 해준다. “정말로 예쁜 빨간 물고기이구나.” 물이 가득한 그릇을 들고 앞으로 지나가는 아이한테 호의를 보이며 이렇게 말하는 그는, 배를 거의 허공으로 향한 물고기나 아이의 얼굴에는 신경도 안 쓴다. “정말 예쁘네. 좋겠구나.” 아이는 아무 말이 없다.--- p.299

저녁 무렵이 되면 목을 지키고 있어야 한다. 하늘은 깊고 검푸른 빛이고, 핏빛 송진 같은 석양이 나무 몸통을 따라 흘러내리다 까진 무릎에 맺힌 피처럼 나무허리 틈새에도 물든다. 지척에서 박쥐 한 마리가 날다가 산책로에서 흔들리고 있는 가로등 아래로 훅 지나가자, 순간적으로 그 그림자가 거대해져서는 얼굴 위로 밤처럼 커다란 날갯짓이 느껴진다. 밤은 드높아, 저 위를 바라보노라면 현기증이 난다. 세상은, 모든 감각을 다 잃을 때까지 반복되는 한 낱말이다.--- p.305

트리에스테다운 것이란 활력과 우울이며, 모든 타협을 의식하고 있되 타협에 굴할 때라도 이것이 곧 타협임을 잊지 않고 거기에 이끌리지 않는, 순수함에 대한 향수다. 청소년기에 요구되는 진정한 삶을 위한 책무이자, 노년기에 지녀야 할 거짓 삶에 맞서는 의식이다. 이제는 술집에서 흥청망청하는 난봉밖에 안 남아 있으니 말이다.
--- p.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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