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달과 6펜스 … 9
과자와 맥주 … 235 몸의 삶과 작품에 대하여 몸의 삶과 작품에 대하여 … 421 서머싯 몸 연보 … 442 |
저윌리엄 서머싯 몸
관심작가 알림신청William Somerset Maugham
윌리엄 서머싯 몸의 다른 상품
역이철범
관심작가 알림신청
누구였는지 이름은 잊었으나, 자고로 사람은 영혼의 안정을 구하기 위해 날마다 자기가 좋아하지 않는 일을 두 가지씩 하는 게 좋다고 말한 사람이 있다. 이 현명한 교훈을 나는 충실히 지켜왔다. 그리하여 나는 아침마다 일어나고 저녁마다 잠자리에 든다. 그런데 본래 나에겐 고행을 자처하는 경향이 있어 매주 그 이상으로 가혹한 고통을 자신에게 가하고 있다. 매번 빼놓지 않고 [더 타임스] 의 문예면 부록을 읽는 것이다. 끊임없이 출판되는 수많은 책과 그 작품에 기대하는 저자들의 달콤한 꿈과 그들이 기다리고 있는 운명을 종합해 보는 것은 우리에게 유익한 훈련이 되기 때문이다. 많은 책 중에서 큰 성공을 거두는 것은 과연 몇 권이나 될까?
--- p.17 이윽고 손님이 모두 모여 식사가 시작되기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식당으로 안내할’ 의무를 지닌 상대 여자와 이야기를 나누며, 문명인들은 어째서 그렇지 않아도 짧은 인생을 이토록 지루한 모임으로 낭비하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p.29 그녀의 찢겨진 가슴속에도 사랑을 짓밟힌 비통함과 체면을 깎인 분함이―아직 젊은 나의 눈에는 그것이 저열해 보였지만―뒤섞여 있는 것처럼 느껴져 웬일인지 꺼림칙한 기분이 들었다.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이 얼마나 모순에 찬 것인지, 성실한 마음에도 얼마나 많은 기만이 있고 고결한 정신 속에도 얼마나 많은 천박함이 숨어 있으며, 사악한 마음속에도 얼마나 많은 선량함이 깃들어 있는지를 나는 아직 모르고 있었다. --- p.47 내가 보기엔 양심이란, 사회가 기성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만들어 낸 법규가 제대로 지켜질 수 있도록 인간의 마음속에서 언제나 그것을 지켜보고 있는 파수병과도 같다. 즉 저마다의 가슴속에 자리잡고 위법 행위를 감시하고 있는 경찰이나, 자아라는 성채 깊숙이 숨어든 첩자 같은 것이다. 인간은 남의 마음에 들고 싶은 욕심에 비난받는 일을 더없이 두려워하므로 자신도 모르게 적을 성문 안으로 끌어들이고 마는 곤경에 처하게 된다. 그러므로 양심은 그의 주인이 조금이라도 사회에서 이탈해 나가려는 기미가 보이면 미리 그 싹을 꺾어 버리려고 끊임없이 감시의 눈을 번뜩인다. --- p.63 나는 웃음을 참느라 입술을 깨물고 있어야 했다. 화가 치미는 일이지만 그가 하는 말은 사실이었다. 그리고 이 또한 내 결점이지만, 아무리 사악한 인간이라도 단둘이 있게 되면 어쩔 수 없이 사귀게 될 수밖에 없으니 정말 난처했다. --- p.152 우리는 모두 다 이 세상에서 외톨이이다. 황동(黃銅)탑 속에 갇혀서 동료들과는 부호로 의사를 소통하고 있을 뿐이다. 더구나 그 부호 또한 공통된 가치를 지닌 것이 아니며 그 뜻은 애매하고 불확실하다. 어떻게든 마음속에 간직한 소중한 것을 남에게 전하려 피나는 노력을 하지만 상대에겐 그것을 받아들일 만한 힘이 없다. 그리하여 우리는 어깨를 나란히 하면서도 동료들을 알 수 없으며, 그들 또한 나를 알지 못한 채 맞닿는 법이 없는 평행선상을 오로지 혼자 쓸쓸히 걸어가는 것이다. --- p.163 로이는 내 표현이 마음에 안 든 모양이었다. 평소에도 내가 농담을 해도 남들이 웃지 않는 일이야 많으니까 상관없다. 가끔 생각하지만 세상에서 가장 순수한 예술가는 자기 농담에 자기 혼자 웃음을 터뜨리는 해학가가 아닐까. --- p.331 우리는 에드워드의 사진을 계속 구경했다. 세상에 겨우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을 즈음의 모습, 콧수염만 기른 모습, 나중에 수염을 싹 밀어버린 모습 따위. 나이가 들수록 얼굴은 점점 야위고 주름살이 늘었다. 젊었을 때의 모습은 고집스럽고 평범해 보였다. 그러나 점점 피로에 지친 고상한 모습으로 바뀌어갔다. 인생의 경험과 사색과 야심이 빚어낸 변화였다. 젊은 선원 시절의 사진을 다시 한번 보았다. 거기에는 벌써 모든 것을 초월한 듯한 태도의 조짐이 숨어 있었다. --- p.400 작가의 인생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시련으로 가득 찬 삶이다. 우선은 가난과 세상의 무관심을 이겨내야 한다. 조금 유명해지고 나서도 방심해선 안 된다. 세간의 평판이 얼마나 불안정한지 알고 있어야 한다. 모든 것은 변덕스러운 대중의 손에 달려 있다. 취재를 요청하는 신문기자, 사진을 찍으려는 사진사, 원고 독촉을 하는 편집자, 세금을 빼앗아가는 공무원, 오찬에 초대하는 상류사회 사람, 강연을 의뢰하는 협회 간사, 결혼해 달라는 여자, 이혼해 달라는 여자, 사인해 달라는 젊은이, 배역을 달라는 배우, 돈 좀 빌려 달라는 낯선 사람, 부부간의 문제에 대해 조언을 구하는 대담한 부인, 자기 작품을 비평해 달라는 성실한 청년, 그리고 대리인, 출판인, 지배인, 재미없는 사람, 숭배자, 비평가, 작가 자신의 양심―이 모든 것들에 작가는 끊임없이 대응해야 한다. 그 대신 작가에게도 한 가지 보상이 있다. 뭔가 가슴에 맺힌 응어리가 있으면―괴로운 추억, 친구를 잃어버린 슬픔, 보답 없는 사랑, 상처 받은 자존심, 친절을 베푼 사람에게 배신당한 분노 따위―어떤 감정이든 고통이든 모조리 글로 써버릴 수 있는 것이다. --- p.416 |
‘어느 천재 예술가 초상’에 숨은 이야기!
『달과 6펜스』는 작가인 화자가 자신의 젊은 시절을 추억하며, 죽은 뒤 ‘천재’로 불리게 된 화가 찰스 스트릭랜드의 반평생을 이야기하는 구성의 소설이다. 스트릭랜드는 보통 인상파화가인 폴 고갱을 모델로 한 인물로 여겨지지만, 실제로는 둘 사이에 닮은 점이 많지 않다. 따라서 이 소설에 그려진 예술가상은 몸이 창작한 것으로 생각하는 편이 적절하다. 이 소설에서 인상 깊은 점은, 화자가 첫머리부터 스트릭랜드라는 예술가의 ‘위대함’을 되풀이해서 강조한다는 점이다. 독자는 그를 가깝게 알고 지냈다고 주장하는 이 냉소적인 화자를 통해 그 천재의 ‘창조적 충동’의 근원을 찾는 여행을 떠나게 된다. 스트릭랜드의 생애는 참으로 비범하다. 런던 주식중개인으로 일하며 평범한 가정의 좋은 아버지, 좋은 남편으로서 17년을 보낸 뒤, 어느 날 느닷없이 모든 것을 버리고 그림을 그리기 위해 홀로 파리로 간다. 파리에서는 의식주에 거의 신경을 끈 채 그림에만 몰두하면서 주위 사람들에게 냉혹하고 잔인하게 대한다. 그 뒤 그는 방랑을 거듭하다 남태평양의 섬 타히티로 흘러들어가, 마지막으로 집 한쪽 벽 가득 대작을 남긴다. 인습적인 런던에서 예술가의 도시 파리로, 파리에서 남태평양의 현관문인 마르세유로,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남태평양의 ‘원시적’이고 ‘관능적’인 자연이 풍부한 타히티로 이동하는 궤적은, 퇴폐한 분위기가 떠도는 영국 사회에 자리 잡은 병마라고도 할 수 있는 인습, 체면에 대한 집착, 위선적 도덕관 등을 스트릭랜드가 한 꺼풀씩 벗겨내며 원시의 동물적 상태로 회귀해 가는 여정이다. 오리엔탈리즘 예술혼의 심오한 맛! 『달과 6펜스』에서 타히티는 서양의 ‘오리엔탈리즘’적 시선을 바탕으로, 색채 풍부한 ‘에덴동산’이라는 자연에 둘러싸인 관능적인 이미지로 그려진다. 스트릭랜드의 아내인 타히티인 여성 아타는 서양인이 상상하는 동양여성의 전형에 가까운 순종적이고 헌신적인 인물이다. 스트릭랜드는 이렇게 자연 풍부한 세계에서 영감을 얻어, 마침내 “원시의 숲을 연상케 하는 관능적이고 정열적이고 주체할 수 없는…… 그러나 동시에 소름 끼치는 무언가, 사람을 공포의 구렁텅이로 밀어 넣는 무언가”를 표현하는 경지에 도달한다. 그러나 그는 풍부한 자연으로부터 예술적 영감과 함께 병을 얻어 육체를 갉아 먹힌다. 원시성과 매혹적인 관능으로 서양 예술에 새로운 숨결을 불어넣기도 하지만, 동시에 서양인에게 끔찍한 위험을 초래할 수도 있는 곳. 이처럼 이 소설에는 서양이 동양에 품는 전형적인 이미지가 알기 쉽게 반영되어 있다. 작중에서 타히티는 영원한 원시 낙원처럼 그려지지만, 호텔이 있어 화자와 스트릭랜드는 숙박도 하고 서양식 요리도 먹는다. 이는 이 섬이 문명에 물들지 않은 원시 세계라고 믿는 것은 완전한 망상이며, 실제로는 자본주의의 영향으로 근대화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소설의 결말 부분에서 화자는 스트릭랜드의 전 아내를 찾아가는데, 그녀는 남편에게 버림받은 걸 불행히 여기기는커녕 스트릭랜드의 명성과 작품을 이용하여 부를 쌓으며 영리하게 살고 있었다. 즉, 스트릭랜드의 예술혼은 아내의 손을 거쳐 대중 속에 부질없이 소비되어 버리는 얄궂은 결과를 맞은 것이다. 몸은 『달과 6펜스』에서 ‘어느 천재 예술가의 초상’을 그리고 그 내면에 다가가려 했다. 단, 변화하는 세계라는 틀 안에 이 초상을 넣어보면 짓궂게도, 예술가와 예술이 신성하게 여겨졌던 시대는 지나갔음이 뚜렷이 드러나도록 장치되어 있다. 다시 말해 이 소설은 제1차 세계대전 전후 세계에서 예술이 놓인 위치를 거시적으로 바라보고, 예술이나 예술가의 의미가 자본주의나 대중 소비사회의 발전에 따라 어쩔 수 없이 변화되고 있음을 부각한다. 조금 더 파고들어가 보면, 이 소설은 몸의 분신인 화자가 ‘예술’의 알레고리인 스트릭랜드상을 탐구하는 이야기라고도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그것은 이류 취급을 받았던 통속작가 몸이 작품에 몰래 끼워 넣은 빈정거림이기도 하고, 일류 예술에 대한 끊임없는 동경이라고도 할 수 있다. 해학적으로 바라본 인간의 즐거운 삶! 『과자와 맥주』는 서머싯 몸이 소설가로서도, 극작가로서도 성공을 거둔 원숙기에 쓴 작품이다. 마음에 드는 남자라면 누구에게나 몸을 허락하면서도 마음은 더없이 아름다운 로지의 삶을 중심으로, 문단의 내막과 문예론 등을 에세이 형식으로 그렸다. 몸은 오랫동안 작가로서 폭넓은 활동을 펼치며 많은 작품을 남겼는데, 그중에서도 이 소설은 『인간의 굴레』, 『달과 6펜스』와 더불어 손꼽히는 명작이다. 몸도 자신의 작품 가운데 『과자와 맥주』를 가장 좋아한다고 밝힌 바 있다. 그의 여든 번째 생일을 기념하여 하이네만 출판사에서 이 작품을 1천 부 한정 호화판으로 찍어내기도 했다. 보통 사람들은 명성을 얻으면, 그때까지의 삶이 어떠했든 현실에 안주하며 거드럭거리게 마련이다. 특히 허영심 강한 아내가 저명인사다운 생활을 유난스럽게 연출한다면 더욱 그렇다. 하지만 모험으로 가득 찬 자유분방한 삶을 즐기는 사람에게는 그렇게 거드럭거리는 태도가 우스워 보일 뿐이다. 이처럼 저명인사가 애써 체면을 차리고 잘난 체하느라 고생하는 모습을 몸은 우스꽝스럽게 그려냈다. 『과자와 맥주』가 간행된 뒤, 등장인물 가운데 드리필드와 키어의 모델이 누구인지를 놓고 큰 논란이 일었다. 드리필드는 그즈음 이미 세상을 떠난 토머스 하디를, 키어는 소설가 휴 월폴을 풍자한 인물로 알려졌다. 사람들은 빅토리아 시대 대작가 하디에게 무슨 불경한 짓이냐며 비난했다. 또한 월폴은 키어가 자기를 풍자한 인물임을 바로 깨닫고는 항의 서한을 보내기도 했다. 냉소적이고 희극적이며 ‘어른의 동화적인 책’ 『과자와 맥주』의 화자인 소설가 애셴덴은 몸 본인을 투영한 인물이다. 그가 동료 작가 앨로이 키어의 전화를 받는 첫 장면은 매우 유명하다. ‘외출했을 때 누가 전화를 걸어와서, 중요한 볼일이 있으니 돌아오면 바로 전화해 달라는 전갈을 남겼다면 그 일은 이쪽보다 저쪽에게 더 중요한 일인 경우가 많다. 선물을 하거나 친절을 베풀려고 할 때는 그다지 서두르지 않는 법이다.’ 인간과 인생을 멀리서 해학적으로 바라보는 작가의 태도가 첫머리에서부터 잘 드러나 있다. 몸은 스스로 재미난 이야기를 늘어놓는 이야기꾼이라고 자처했다. 『과자와 맥주』 처음 부분에서 전화에 대해 가볍고도 날카롭게 묘사하는 소설 도입부를 읽는 사이에 독자들은 인간과 인생에 통달한 냉소적인 화자의 이야기에 끌려들어 마지막까지 흥미진진하게 귀를 기울이게 된다. 화자의 이야기에는 줄거리와 상관없는 내용도 군데군데 섞여 있다. 귀족 제도를 폐지하는 대신 귀족들에게 문필업을 시켜주자는 농담인지 진담인지 알 수 없는 이야기, 작가가 쓰는 소설기법 논문은 결국 자기변호의 산물에 불과하다는 흥미롭고도 전문적인 이야기 따위, 온갖 내용들을 독자는 자연스레 받아들이게 된다. 또한 몸은 중간에 라신의 희곡이나 말라르메의 시 구절을 은근슬쩍 인용한다. “이걸 누가 알아보겠어?”하고 교양 있는 독자의 자존심을 슬쩍 건드리면서 독자에게 도전하는 것이다. 작품 제목인 ‘과자와 맥주’는 셰익스피어의 『십이야』에도 나오는데, ‘인생의 향락, 삶의 쾌락’을 뜻하는 관용구이다. 이것은 로지와 그녀가 가져다주는 쾌락을 의미한다. 이 소설에는 또 ‘소문나면 안 될 가정의 비밀’이라는 부제목도 붙어 있다. 이것도 드리필드 미망인, 키어, 트래퍼드 부인 같은 사람들의 관점에서 본 로지를 뜻한다. 제목도 부제목도 참으로 적절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