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캐럴
하지만 이런 즐거운 풍경은 다음에 이어질 정겨운 모습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멋진 모자에 잿빛 실크 드레스를 입은 할머니와 화려한 프릴을 단 셔츠를 입고 하얀 네커치프를 꽂은 할아버지는 응접실 벽난로 한쪽에 놓인 의자에 앉아 있고, 조지 삼촌네 아이들과 수를 헤아리기 힘든 많은 아이들이 난로 앞에 앉아 오기로 한 손님들이 도착하기만을 목을 빼고 기다리고 있다. 그때 마차가 서는 소리가 들리고 창밖을 내다보던 조지 삼촌이 “제인이 도착했다!”라고 외치자 아이들은 문가로 우르르 몰려 나가 우당탕 계단을 뛰어 내려간다. 잠시 후 “와아!” 하는 아이들의 함성에 묻혀 로버트 고모부와 제인 고모가 계단을 올라오는 소리, 아기가 놀란다고 야단치는 유모의 목소리도 연신 들려온다. 이윽고 할아버지가 아기를 받아 안고 할머니는 고모에게 키스를 하고, 이 시끌벅적한 광경이 가까스로 잠잠해질 때 또 다른 고모 부부가 더 많은 사촌들을 데리고 도착한다. ---「크리스마스 축제」중에서
나는 그가 하려는 말이 무엇인지 이해한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이미 그의 굳어진 표정과 내가 말하는 동안 뚫어지게 쳐다보며 집중하려 애쓰는 모습에서 그의 청력이 정상이 아니라는 사실을 눈치 챘던 것이다.
“우린 동병상련이군요.”
나는 내 말의 의미를 설명하려고 그와 나를 번갈아 가리키며 말했다.
“우리가 똑같이 머리가 허옇다는 사실 말고도, 똑같이 불행하다는 점에서 말이오. 선생이 보다시피 나는 불쌍한 절름발이요.”
나는 처음 장애를 의식하고 힘겨운 세월을 보내온 이후 그가 웃으면서 내 손을 잡았을 때처럼 불구가 된 내 다리가 고맙게 느껴진 적이 없었다. 그의 웃음은 그날 이후로 내 인생의 길을 밝혀 주었다. 우리는 나란히 앉았다. ---「『험프리 님의 시계』에 실린 크리스마스 에피소드」중에서
그랬다. 지금 이 순간에도 스크루지는 그 말을 믿을 수 없었다. 두 눈으로 환영을 보고 또 보고, 바로 눈앞에서 쳐다보고 있는데도 차갑게 얼어붙은 유령의 눈동자에서 뿜어져 나오는 냉기가 몸에 느껴지고, 난생처음 보는 유령의 턱과 볼을 감싸는 머릿수건의 올까지 똑똑히 보이는데도 그랬다. 그런데도 스크루지는 여전히 자신의 감각을 믿지 않으려고 했다.
“아니 웬일인가? 나한테 무슨 볼일이라도 있는 건가?”
스크루지가 평소의 쌀쌀맞고 빈정대는 목소리로 말했다.
“많지.”
말리가 말했다. 틀림없는 목소리였다.
“대체 당신은 누구야?”
“내가 누구였느냐고 묻게나.”
“좋아. 당신은 누구였소? 깐깐하군, 유령치고는.”
스크루지가 목청을 높이며 물었다.
스크루지는 ‘유령 주제에’라고 말하려다가 이 말이 더 적절하다고 생각해서 얼른 바꿨다.
---「크리스마스 캐럴」중에서
네모난 팽이, 노래가 나오는 팽이, 바늘 상자, 펜 끝을 닦는 헝겊 뭉치, 냄새를 맡으면 정신이 번쩍 드는 약병, 놀이에 사용하는 대화 카드, 부케 손잡이, 눈부신 금색 이파리를 붙인 진짜 과일들, 깜짝 놀랄 만한 것들을 채워넣은 모조 사과, 배, 밤도 달려 있었다. 내 앞에 앉은 예쁘장한 여자아이는 기쁜 얼굴로 옆에 앉아 있는 역시나 예쁘장한 제 친구에게 “여긴 뭐든지 있어”라고 속삭였다. 마법의 과일처럼 나무에 주렁주렁 매달려 사방에서 비치는 빛을 받아 화려한 자태를 내뿜는―어떤 아이들은 다이아몬드 같은 눈으로 탁자보다 훨씬 높은 트리를 넋을 놓고 우러러보고, 어떤 아이들은 소심하게 가슴 졸이는 어머니나 숙모, 유모에 질질 끌려갔다.―이 각양각색의 잡동사니들은 어린 시절의 환상을 생생하게 되살려주었다. 그것들을 보고 있으면 트리에 쓰인 나무들은 어디에서 어떻게 자란 것인지, 이 모든 물건들은 어떻게 생겨나 장식물이 된 것인지 생각하게 된다. ---「크리스마스트리」중에서
“크리스마스에는 난롯가에 누가 오든지 막지 않을 거라고.”
그러자 알 수 없는 목소리가 다시 묻는다. “시든 이파리가 깔린 거대한 도시의 그림자도? 이 세상을 어둡게 만드는 그림자도? 죽음의 도시 그림자도?”
그렇다. 하다못해 그런 것도 맞아들일 것이다. 해마다 크리스마스가 되면 우리는 고개를 돌려 그 도시를 바라볼 것이다. 그러면 그곳의 주인들은 말없이 우리가 사랑했던 사람들을 데려오리라. 이맘때면 우리는 죽음의 도시, 그 저주받은 이름으로 불리는 곳에서 온 사람들과 함께 모일 것이다. 그리하여 언젠가 약속한 대로 죽음이 목전에 왔을 때 우리는 죽음을 거부하지 않고 받아들일 것이다. 그 도시의 사람들은 다정한 사람이기에!
---「늙어가는 우리에게 크리스마스란 무엇일까?」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