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 마라 거미야
나는 집을
대충 돌본단다
거미를 두고 노래한 잇사의 작품이다. 물이 너무 맑아도 물고기가 살 수 없듯이 거미도 너무 깨끗한 곳에서는 집을 짓지 못한다. … 집안 구석구석을 청소할 때 사람들은 거미줄을 먼저 거두어낸다. 그렇다면 시인이 거미에게 “걱정 마라”고 말하는 까닭이 어디에 있을까? 이 물음에 대한 답은 바로 “대충 돌본단다”는 구절에 들어 있다. 거미 같은 벌레가 살 수 있는 것은 바로 이 ‘대충’의 미덕 때문이다. ‘대충’을 다른 말로 바꾸면 ‘함께’나 ‘더불어’라는 뜻이 될 것이다. 다른 개체나 종이 인간과 더불어 살아갈 수 있도록 배려해주는 것이야말로 ‘대충’의 참다운 의미라고 할 수 있다. … 한낱 벌레에 지나지 않는 거미에 대한 애정이 무척 남다르다. (본문 96~97쪽)
구약성서는 때로 자연파괴나 환경오염의 위험성을 경고하기도 한다. 과학과 기술이 눈부시게 발달한 오늘날과는 달라서 아직 자연파괴나 환경오염이 중요한 문제로 떠오르지 않은 이 무렵에 벌써 자연과 환경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것이 무척 놀랍다. 히브리어에는 ‘생태학’이라는 말은 말할 것도 없고 ‘자연’이라는 말조차 없었다. 구약성서에 등장하는 여러 선지자 가운데에서도 이사야는 환경재앙을 예고한 첫 번째 선지자로 꼽을 만하다. (본문 253쪽)
체로키족 추장 롤링 선더(우르릉천둥)는 … 잡초나 약초를 ‘협력자’라고 부르는 것이 아주 놀랍다. 그들에게 이 세상에서 자라는 모든 풀은 우주 가족의 일원일 뿐이다. 아무 곳에도 쓸모가 없다고 하여 잡초를 귀찮게 여기는 문명인에게 “이 세상에 잡초란 것은 없다”는 그의 말은 그야말로 우르릉거리는 천둥소리처럼 정신이 번쩍 들게 한다. 모든 풀은 그 나름대로 존재 이유와 가치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존중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본문 207쪽)
환경오염과 언어오염 -언어생태학
문학작품과 문화를 통해 동서양의 생태주의 사상을 돌아본 저자는, 결론에 이르러 언어와 환경과의 상관관계, 즉 언어생태학에 주목한다. 미국의 언어생태학자 드와잇 볼링거가 “물과 공기 그리고 빛과 소리처럼 흐르는 것은 하나같이 오염물질을 지니고 있으며 그것은 언어도 예외가 아니다”고 밝혔듯이, 저자는 언어오염이 공기오염보다 훨씬 더 폭넓게 진행되며, 그것은 우리의 지적 책임감을 약화시키고 결국 우리의 정의와 양심도 병들게 한다고 카를 포퍼의 말을 빌려 현 시대의 언어오염에 대해 일갈한다. 그리고 이렇게 결론짓는다.
“언어생태학자들은 … 극단적인 태도를 취하기도 하지만, 될 수 있는 대로 인간중심주의적인 태도를 버리고 다른 개체나 종의 입장에서 생각하려고 애쓴다. 예를 들면 꽃은 이제 인간의 눈과 코를 즐겁게 해주기 위해 존재하는 대상이 아니라 ‘식물에 속한 친구’다. 비록 식물로 분류되고 있을망정 친구처럼 수평적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이다. 종이는 단순히 인간의 문화생활을 편리하게 해주는 대상이 아니라 ‘나무가 죽은 시체’다. 달걀은 단백질이 풍부한 식품이 아니라 ‘인간이 빼앗은, 닭이 낳은 알’이며, 우유도 영양분이 많은 완전식품이 아니라 ‘인간이 훔친, 암소의 젖’일 따름이다. 장미를 장미라고 부르지 않고 다른 이름으로 불러도 그 실체는 마찬가지이듯이 이름이 무슨 대수냐고 할는지 모르지만, 이렇게 새롭게 이름을 부를 때 자연에 대한 태도는 크게 달라진다.” (본문 33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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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진하의 <나는 마음 놓고 하모니카를 분다>가 다루는 생태주의는 첫 연의 “뚝, 뚝, 꺾어다 찐 옥수수마다 통통한 벌레들이 / 둥지를 틀고 살았던 흔적이 / 꺼뭇꺼뭇하다”는 구절에서 잘 드러난다. 옥수수는 바로 옥수수벌레가 사는 집이다. … 인간이 집을 벗어나 살 수 없고 새가 둥지를 벗어나 살 수 없듯이 옥수수벌레도 옥수수를 벗어나서는 살아갈 수가 없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온갖 농약과 살충제를 사용하여 벌레를 집에서 몰아낸다. … 그러나 지금 시인이 먹고 있는 옥수수는 다르다. 옥수수마다 하나같이 통통한 벌레들이 ‘둥지를 틀고 살았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다. 농약이나 살충제를 걱정할 필요가 없기에 시인은 벌레집까지도 ‘후후 입김을 불어넣으며’ 옥수수를 뜯어먹는다. (본문 59쪽)
동양과 서양, 그리고 아메리카 원주민의 녹색사상
예로부터 동양 문화권에서는 자연과 환경에 깊은 관심을 기울여왔다. 저자는 2장과 3장에 걸쳐 동양의 문학작품에서 나타나는 녹색사상을, 우리나라와 일본, 중국의 전통 시가를 통해 살피고 있다.
중국 전통 시가인 한시(漢詩)의 대표적인 생태문학작품으로는 도연명(陶淵明)의 <귀거래사>와 연작시 <음주>, 이백(李白)의 <산중문답> 그리고 두보(杜甫)의 <춘망> 등을 예로 들었다. 일본의 전통 시가는 짧은 시구(詩句)인 하이쿠(俳句) 작품을 중심으로 분석했다. 대표적인 하이쿠 시인으로는 마츠오 바쇼, 요사 부손, 코바야시 잇사 세 사람을 꼽는데, 특히 저자는 이 세 시인이 지은, 이를 비롯하여 벼룩, 파리 같은 벌레를 소재로 한 이른바 영물시(詠物詩)를 소개하고 시인들의 작은 생명체에 대한 깊은 애정을 확인한다. 더불어 우리나라의 전통 시가에서도 이와 같은 영물시를 찾아볼 수 있다면서 백운 이규보(白雲 李奎報)를 예로 든다. 우리나라의 근대시에 나타난 생태주의는 김소월, 이병기, 남궁벽, 박세영, 권구현의 작품을 중심으로 분석했다.
기독교를 근간으로 하는 서양 문화권은 성서에 나타난 생태주의를 통해 들여다보았다. 특히 저자는 구약성서와 고대 및 중세 서구에 나타난 “인간중심주의”와 모든 생명체에 대한 “계급주의”(본문 307~308쪽의 ‘존재의 쇠사슬’ 도표 참조)가 내포한 위험성을 지적하는 한편,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한 신약성서와 중세 이후 나타나는 “만물평등주의”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
아메리카 원주민의 녹색사상은, 고대 동양 문화권의 그것과 유사하다. 저자는, 인간을 포함한 모든 존재(심지어 바위와 물조차)가 육체와 영혼과 그림자로 이루어져 있다고 믿는 정령신앙(精靈信仰)에 기초한 물활론적(物活論的) 세계관을 가진 원주민들의 삶과 문화는, 미국의 기술문명에 지친 젊은이들과 함께 20세 중후반 인권운동과 반문화운동의 한몫을 톡톡히 해냈다는 점을 지적한다.(본문 186쪽 ‘눈물짓는 인디언’ 참조) 아울러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진 시애틀 추장과 롤링 선더(우르릉천둥) 추장 등이 남긴 말을 통해 아메리카 원주민의 자연관을 심층적으로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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