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에 들어 있는 글들을 쓸 때 나는 젊었고, 지금보다는 순수했던 것 같습니다. 재출간 작업을 하면서 다시 읽어 보니 그런 생각이 듭니다. 열정적인 만큼 치기가 만만치 않았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꾸미지 않은 목소리를 듣는 것 같은 쑥스러움이 없지 않습니다. 그 시절의 치기를 극복했는지 몰라도, 그 과정에서 잃어버린 순수와 열정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신앙과 문학과 삶이 내 주제라는 고백은 달라지지 않았지만, 그리고 어떤 면에서는 더 성숙해지기도 했겠지만, 태도도 여전한지 자신하지 못하겠습니다. 신앙도 문학도 삶도 결국 태도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그때의 목소리를 다시 들어보는 것이 아주 의미 없지는 않을 것 같다는, 알 수 없는 용기가 생겼습니다. 몇 개를 빼고, 몇 개는 더하고, 문장을 조금 만지긴 했지만, 이 책에는 신앙과 문학과 삶에 대한 내 젊은, 서툴지만 뜨거운 사랑이 거의 그대로 들어 있습니다. 그것들만 전달되면 좋겠습니다.
---「2017년 서문에서」중에서
이제까지 소설을 써 오면서 나는 종종 가슴속이 텅 빈 항아리처럼 허전해지는 경험을 하곤 했습니다. 소설로는 형상화할 수 없는, 보다 직접적이고 명쾌한 말들이 내 속에서 솟구치는 것은 그런 때입니다. 고백하건대, 나는 내가 신학을 공부한 기독교인이라는 사실을 한 번도 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여기 실린 글들은 나의 영혼에서 터져 나온 말들의 모음입니다. 고단한 여정의 길모퉁이마다 표지판을 세우는 심정으로, 나는 이 글들을 썼습니다. 때로 질타하고, 때로 속삭이고, 때로 어루만진 이 모든 말들은 애초에 나를 향한 것이었습니다. 신앙과 문학과 삶이 나의 주제이고, 또 이 글들의 주제입니다.
내가 그런 것처럼, 길을 찾아 나선 나의 이웃들에게 아주 조그만 표지판 구실이라도 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보잘것없는 글들을 책으로 묶어 낼 용기를 냈습니다. 진정으로 이 길을 그대와 함께 가고 싶습니다.
---「1991년 초판 서문에서」중에서
사람은 어떤 어려운 책보다 더 읽기 어려운 책이다. 책을 이해하고 파악하는 것보다 사람을 이해하고 파악하는 것이 훨씬 어렵다. 사실은 우리가 책을 읽는 것도 사람을 읽기 위해서다. 사람을 읽기가 어렵기 때문에 사람을 잘 읽으려고 책을 읽는 것이다. (…) 책을 읽지 않으면 그 안에 어떤 내용이 들어 있는지 알 수 없는 것처럼 사람도 참으로 깊이 만나지 않으면 그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제대로 알 수 없다. ---「쌓아 둔 책」중에서
창이 부재에 가깝게 투명할 때, 우리는 창을 잃는 대신 그 창을 통해서 모든 것을 얻는다. 창이 투명하기를 그칠 때, 우리는 창을 얻고 그 대신 모든 것을 잃어버린다. (…) 영혼의 창을 투명하게 해야 한다. 한없이 투명하여 우리의 존재는 거의 부재에 가깝게 해야 한다. 그때, 안 보이던 신이 다시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그때, 비로소 세상이 무의미의 꼬리표를 떼고 의미의 풍요로움으로 눈부시게 빛나기 시작할 것이다. 그때, 우리는 ‘그분이 있음에 내가 있는’ 그런 삶을 살게 될 것이다. ---「신의 일식」중에서
우리를 구원하는 예수의 힘이 총이나 칼 같은 물리력이 아니었음을, 오히려 낮아질 수 있는 데까지 낮아지고 무력해질 수 있는 데까지 무력해진 그분의 사랑이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부드러움이 단단함을 이긴 사건, 무능이 힘을 이긴 사건, 약함이 강함을 이긴 사건, 사랑이 증오를 이긴 사건, 십자가 사건을 우리는 그렇게 이해한다. 그와 같은 역설이 바로 예수 사건의 요체라고 믿고 있다. ---「큰 이름의 그늘에 열매가 없네」중에서
“소리의 세계도 아니고, 침묵의 세계도 아닌, 그 어떤 곳에 가서 살자”라고 마침내 제임스는 말한다. 그들이 모르고 있을 리 없다. 그런 세계가 지상의 어떤 특정한 장소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모든 고귀한 가치를 지닌 것들이 그러하듯 그 동경의 세계 또한 오직 그들의 마음속에서만 발견될 수 있으리라는 것을. 마음속에 사랑이 자리를 잡으면 그 사랑 때문에 우리의 마음은 천국이 되고, 우리 마음에 천국이 이루어지는 순간 지상의 모든 장소가 사랑의 장소가 될 수 있음을 그들은 알고 있었을 것이고, 우리 또한 알고 있다. ---「침묵 속의 길」중에서
시인은 우리가 서로 귀 기울이기 위해 태어났다고 말한다. 서로 이해하고, 서로 사랑하기 위해 태어났다고 이야기한다. 시인은 ‘귀 기울이는 것’이, 곧 ‘이해하는 것’이고 ‘사랑하는 것’임을 간파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인생이라는 것도. (…) 시인은 ‘서로’라는 단어를 반복해서 사용함으로써, 우리 존재가 관계 가운데 있으며, 더 나아가 우리 각자가 관계 그 자체라는 생각을 암시하고 있다. ---「잘 듣는다는 것」중에서
우리가 보는 것, 우리가 관심하는 것, 그것이 우리 인생의 방향과 삶의 질을 총체적으로 결정한다. 우리의 삶은 결코 우리가 보는 것, 관심하는 것 이상일 수 없다. 일상을 뛰어넘고, 소유를 초월하고, 땅을 박차고 치솟아 올라 비행하는 그 자리에, 존재가 있고 하늘이 있다. 우리의 궁극적 관심의 대상인 무한이 있다. (…) 우리는 지금 무엇을 보며 살고 있는가? 무엇에 궁극적 관심을 두고 살아가고 있는가? 땅인가, 하늘인가? 아래 있는 것인가, 위에 있는 것인가? 먹는 것인가, 나는 것인가? 소유인가, 존재인가? 일상인가, 초월인가?
---「하늘에 이르는 길」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