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앞으로 이 책에서 비텐베르크, 보름스, 에르푸르트, 제네바, 취리히를 방문할 예정이다. 또한, 성당을 탐방하고 시내 광장에서 설교를 듣고 그 지성과 용기로 세상을 뒤흔들어놓았던 사람들을 만날 것이다. 그들의 용기와 비겁함, 배반과 신앙의 이야기를 들을 것이다. 그래서 여행이 끝날 즈음에는 우리 자신과 사회를 훨씬 더 깊이 이해하게 되리라 기대한다. 실제로 세상을 바꿀 수 있는 단 하나의 메시지에 대한 새로운 열정이 우리 안에 타오를 것이다.
---「서문」중에서
여행이 끝날 즈음엔 하나님이 불완전한 사람을 쓰신다는 사실이 분명해질 것이다. 우리는 루터의 용기에 탄복하면서도 그의 분노와 사사로운 앙심에 당황하기도 할 것이다. 우리는 존 칼빈의 지성에 깊은 감동을 하면서도 제네바 시의회가 이단 미카엘 세르베투스에 대한 화형 결정을 내렸을 때 그가 동조한 것이 과연 현명한 처사였는가에 의문을 제기할 것이다. 또한, 츠빙글리가 유아세례 교리를 거부한(그리고 신자에게만 세례를 주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자는 사형시킨다는 취리히 시의회의 결정에 동의한 사실에 깊은 실망을 보일 것이다.
이 모든 것을 통해 신앙은 값을 치러야 한다는 사실을 배운다. 콘스탄츠 공의회에서 자기 신념을 피력했다는 이유로 화형당한 얀 후스, 리마트 강에서 강제 수장된 펠릭스 만츠, 그리고 신앙 때문에 순교한 허다한 사람들을 보며 우리는 새삼 놀란다. 독일에서 가물거리는 작은 불빛이 활활 타오르는 불길로 번져 결국 온 세상에 빛을 발하기 전까지 하나님이 얼마나 오랜 세월 이 세상을 흑암 가운데 내버려 두셨는지를 보면서 놀랄 것이다.
---「서문」중에서
면죄부는 기독교의 발전과 궤적을 같이하는 유구한 역사를 갖는다. 이방 종교에는 범죄에 대한 형벌을 헌금으로 대신하는 관행이 있었다. 교회는 이 아이디어를 차용하여 사람이 죄의 결과로 받아야만 하는 합당한 벌을 돈을 받고 면해주는 일을 종종 했다. 교회 초기 몇 세기 동안 박해를 견디다 못해 신앙을 부인한 사람들이 있었다. 이들 중 다시 교회로 복귀하기를 원하는 사람에게 대부분 교회 지도자들은 진정으로 회개했다는 증거로 처방받은 선행을 실천할 것을 요구했다. 그들을 징벌 없이 재입교시키면 왠지 ‘손쉬운 믿음 만능주의’라는 인상을 심어줄 것 같았다.
죄인이 뉘우침의 증거를 제시해야 한다는 발상은 기독교 초기 몇 세기에 걸쳐 다양한 양상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교회의 입장은 점점 한 방향으로 고착화했다. 죄에 대한 처벌로 선행을 해야 하지만, 형편상 선행을 못 하거나 대신 ‘헌금’을 하고 싶다면 기꺼이 수락했다. ‘헌금’은 특정 죄를 범한 것에 대한 대가 지불 혹은 벌칙이었다. 종국에는 교회가 처방하는 어떤 기부도 타당한 것으로 간주했다.
면죄부는 고해성사의 일부로 여겨졌다(지금도 그렇다). 통회, 보속(補贖), 죄 사함의 기도 후에도 죄의 현세적 결과라는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그리고 이는 헌금 제공으로 처리된다. 고로 면죄부는 교회 지도자가 개인의 죄에 대한 현세적 징벌을 면제해주는 행위였다.
---「3. 비텐베르크 문」중에서
자신의 신학을 발전시켜 가는 과정에서 루터가 긴박하게 해결해야 할 의문이 하나 있었다. 오직 성경만이 믿음과 실천의 문제에서 절대 확실한 기준인가? 그에게 닥쳐오는 갈등을 보면서 루터는 그렇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루터는 이 하나의 신념을 가지고 수백 년 동안 진화를 거듭해온 교회 전통에 도전장을 내민다.
처음에 루터는 다툼을 피하려 했다. 하지만 그를 에워싼 유명세의 회오리에 계속 말려 들어갔다. 그는 이 모든 상황을 당혹스러워했고, 훗날 자신이 “눈가리개를 한 말처럼 인도를 받았다”라고 회고했다. 몇 개월 지나지 않아 마르틴 루터는 독일 전역에 알려졌고 사랑과 증오를 한 몸에 받는 존재가 되었다. 그는 자신이 순진무구하게 시작했던 논란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감당할 수밖에 없었다. 그에게 복음을 깨닫게 해준 성경책은 이제 복음을 옹호하고 지켜낼 능력을 부여할 것이다.
---「5. 위대한 발견」중에서
종교개혁 역사에서 루터와 에라스뮈스 사이의 논쟁은 어느 정도로 중요할까? 로마 가톨릭교회는 루터와 갈라서게 된 핵심 사안이 의지의 자유 문제라고 보았다. 루터와는 대조적으로 로마 가톨릭은 인류가 전적으로 타락한 게 아니라고 주장한다. 최초의 타락으로 인류는 도덕적으로 병들긴 했지만 죽지는 않았다. 사람들은 은혜받기 위해 마음을 준비하고, 구원 과정에서 하나님과 협력함으로써 자신의 구원에 기여할 수 있다. 그리고 우리가 이전 장에서 배웠듯이, 구원에서 하나님과 협력할 수 있다는 가톨릭교의 가르침 때문에 영생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선행은 매우 중요하다.
---「10. 분쟁, 불일치, 운명」중에서
츠빙글리는 로마 가톨릭교회와의 쟁점을 67개 항목으로 발표했다. 시의회는 츠빙글리가 발표한 문서를 수락했을 뿐 아니라 그에게 설교를 계속할 것을 독려했다. 츠빙글리는 공개적으로 이단 혐의를 벗었으며 그의 ‘67개 조’는 최초의 개혁파 신앙고백으로 정립되었다. 그가 새로운 교리를 설교한다는 혐의가 제기되자 그는 이렇게 답변했다. “복음이 무엇입니까? 복음은 1,522년이나 된 해묵은 것입니다.” 복음은 신약성서만큼이나 유서 깊다는 논지였다. 더러는 분개했지만 아무도 그를 반박하지는 못했다.
---「13. 츠빙글리: 취리히를 개혁하다」중에서
칼빈에 대한 호불호가 분명히 갈림에도 불구하고 지난 5백여 년간 그의 영향이 지속해서 이어져 왔다는 사실은 아무도 부인할 수 없다. 마르틴 루터의 영향은 대체로 독일에 국한되었던 반면, 존 칼빈의 영향력은 유럽 여러 나라로 퍼져 나갔다. 역사가 윌리엄 스티븐슨의 말이다. “홀로 내버려 두었더라면 루터주의는 침몰했을 가능성이 크다. 종교개혁이란 배가 계속 떠 있기 위해서는 칼빈주의가 필요했다. 그리고 전 세계적으로 볼 때 우리는 칼빈을 근대의 가장 위대한 종교적 세력으로 기억할 것이다.”
---「15. 칼빈: 제네바를 개혁하다」중에서
가톨릭교회가 참 하나님을 예배하므로 전통과 미신이라는 측면은 못 본 척 넘겨야 한다고 말하는 개신교인을 이따금 본다. 하지만 예수님이 지상에 다니셨을 때 바리새인 역시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하나님을 예배했다. 예수님은 그들이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한다]”라고 말씀하셨다. 그렇다. 인간의 전통은 바리새인의 하나님 경배를 무의미한 것으로, 허사로 만들었다.
가톨릭교회는 오직 그리스도를 통해, 오직 은혜로, 오직 믿음으로만 구원받는다는 확신을 강하게 반대해왔다(여전히 그렇다). 구원은 믿음에 대한 반응으로 전가된 하나님의 의로서 거저 주어진 선물이거나, 그렇지 않으면 우리의 협력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내 요지는 둘 중에 하나라는 점이다. 우리가 받는 의는 구원하는 믿음에 대한 직접적 반응으로 주어지는 하나님의 온전한 선물이다. 그게 아니라면 세례, 미사, 최후 의례 등의 성례를 통해 매개되고 선행과 결합한 것이어야 한다. 둘 중 하나인 것이다. 양립은 불가하다.
---「17. 종교개혁은 끝났는가?」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