짚신벌레는 하나의 세포로 이루어진 생명체, 즉 단세포 생물입니다. 물론 뇌는 없습니다. 세포막과 그 위에 가느다란 털 같은 섬모가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장애물을 만나면 피합니다. 자신의 생명에 관계된 고온, 저온, 극단적인 산성, 염기성 물로부터 도망갑니다. 그리고 먹이가 되는 세균을 발견하면 가까이 다가가 잡아먹을 수 있습니다. 이런 여러 가지 판단과 행동은 모두 짚신벌레의 ‘피부’에 해당하는 세포막으로부터 비롯된 기능입니다. 짚신벌레의 선두, 쉽게 말해서 머리에 ‘부딪히는 자극’이 발생하면 세포막 안쪽과 바깥쪽의 전위차가 사라지고(신경 과학에서 흥분에 해당하는 ‘탈분극’이라 는 현상), 반대로 꼬리 부분을 자극하면 안쪽의 전위차가 커집니다(신경 과학에서의 ‘과분극’). 그리고 선두가 무언가에 부딪혀 탈분극이 됐을 경우, 섬모 막에 있는 ‘칼슘 나트륨 채널’이라는 칼슘 이온만을 통과시키는 구멍을 통해 칼슘이 흘러들어갑니다. 그 결과로 섬모의 움직임이 빨라지는 탓에 헤엄치는 속도 역시 빨라집니다. 이런 작용 덕분에 짚신벌레가 물속에서 무언가에 부딪혔을 때 그것을 피할 수 있다는 것이 오사카대학 나카오카 야스오中岡保夫 박사의 설명입니다.
또한 온도에 대해서도 선두부에서는 온도가 높아지면 탈분극이 일어나고, 꼬리 부분에서는 반대로 온도가 내려가면 탈분극이 일어납니다. 이 때문에 장소에 따라 섬모의 움직임이 바뀌고 그 결과 짚신벌레는 자신에게 ‘쾌적한’ 온도가 유지되는 장소로 이동할 수 있다고 합니다.
물의 산성, 염기성, 먹이가 되는 세균의 존재가 일으키는 화학적인 자극도 수용체에서 감지해 이에 따라 섬모를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이들 수용체가 받아들인 정보를 집중 처리하는 뇌 같은 조직은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 모든 자극을 받아들인 각 부위가 반응해서 움직이는 것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짚신벌레는 ‘판단’하고, 자신의 생명 유지에 맞는 ‘행동’을 취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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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대 미국의 바덴 신경과학연구소에서 일하던 그레이 월터W. Grey Walter 박사는 ‘거북이’라는 별명의 로봇을 만들었습니다. 이 거북 로봇은 빛을 감지하는 센서와 접촉을 감지하는 센서, 그리고 방향을 바꾸기 위한 모터(키 모터)와 움직이기 위한 모터(구동 모터)로만 이루어져 있습니다. 빛을 감지하면 키 모터가 정지합니다. 무언가와 접촉하면 빛 센서가 일단 정지하고, 키 모터와 구동 모터가 움직이고 멈추는 것을 빠른 속도로 반복합니다. 딱 이렇게만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러나 이 거북 로봇은 생물체와 같은 행동을 보여 주었습니다.
방에 광원이 있으면 거북 로봇은 빛을 향해 달려갑니다. 어떤 이유로 진로가 바뀌어도, 한동안 이곳저곳을 둘러본 뒤 다시 광원을 발견하고 달려갑니다. 방 안에 있는 장애물에 부딪히면 거북 로봇은 그 장애물을 피해 전진하든가, 장애물을 밀어 버렸습니다.
거북 로봇을 발명한 월터 박사는 이 로봇을 ‘유사 생명’, ‘학습하는 기계’라고 불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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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양각색의 놋쇠나 금속 타악기를 합주하는 ‘가믈란gamelan’이 라는 인도네시아의 민속음악이 있습니다. 오하시 박사팀은 발리 섬에서 가믈란을 연주하던 연주자가 트랜스(황홀) 상태에 빠지는 모습을 목격하고, 그 원인이 귀에는 들리지 않은 음파의 영향이라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그런데 라이브 연주 때는 트랜스 상태가 되더라도, CD에 녹음된 연주로는 트랜스 상태가 되지 않은 겁니다.
일반 CD에는 주파수 2만㎐까지의 소리만 녹음됩니다. 하지만 가믈란 라이브 음원을 해석해 보면 사실은 10만㎐ 이상의 소리까지 섞여 있지요. 이 라이브 음원을 들을 경우 뇌파나 혈중 호르몬 수치에 변화가 생깁니다. 또한 연구팀은 피험자의 머리부터 아래까지 소리가 통하지 않는 물질을 씌우고, 다시 한 번 가믈란의 라이브 연주를 듣게 했습니다. 그러자 놀랍게도 생리 현상을 포함한 모든 영향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이 결과로부터 오하시 박사팀은, 고주파수의 소리가 귀가 아닌 몸 표면에서 수용된다는 가설을 세우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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