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션스에게 전화를 해야겠어.” 리버스가 말했다.
하지만 공중전화는 이미 누군가가 사용하고 있었다. 누군지 몰라도 수화기를 아예 여자 화장실로 들고 들어가버렸다. 술집의 소음 때문에 정상적인 통화가 불가능했던 모양이다. 전화선은 화장실을 찾는 손님들을 교살할 수도 있을 만큼 팽팽히 당겨져 있었다. 리버스는 잠자코 기다렸다. 하지만 자신도 모르게 벽에 붙은 전화기 본체로 자꾸 시선이 돌아갔다. 에라, 모르겠다. 그가 손가락으로 수화기 거는 곳을 꾹 눌렀다가 떼었다. 그리고 술꾼들 틈으로 슬그머니 들어가 몸을 숨겼다. 한 젊은 남자가 여자 화장실에서 튀어나와 수화기를 거칠게 내려놓았다. 그는 동전을 찾아 주머니를 뒤적였다. 한 닢도 남지 않았는지 그는 체념하고 바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리버스는 전화기 앞으로 다가갔다. 수화기를 들었지만 신호음이 들리지 않았다. 그는 다시 내려놓았다가 귀에 대보았다.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방금 전 남자가 부서뜨릴 듯 내려놓았을 때 고장이 나버린 모양이었다. 빌어먹을. 시간은 벌써 8시 30분이 다 되어 있었다. 아무리 서둘러도 옥스퍼드 테라스까지는 15분 이상 걸릴 것이다. 그는 오늘 일로 어떤 대가를 치르게 될지 궁금했다.
“술이 간절해 보이는 표정이군.” 리버스가 자리로 돌아오자 딕 토런스가 말했다.
“그거 알아, 딕?” 리버스가 말했다. “내 인생이 블랙코미디 그 자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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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리에서 일어난 홈스가 턱으로 책상 뒤에 놓인 여행 가방을 가리켰다. 밖에서 보이지 않도록 리버스가 나름 성의껏 숨겨놓은 것이었다. “제게 뭐 하고 싶은 말씀 없으십니까?”
“그래, 있어.” 리버스가 말했다. “이건 뇌물 보관용이야. 자넨 아직 뒷주머니만으로 충분하지?” 홈스는 그 말에 만족하고 나가줄 것 같지 않았다. 클락은 이미 자신의 자리로 돌아간 후였다. 리버스는 한숨을 내쉬며 목소리를 죽여 말했다. “보다시피 집에서 쫓겨났어.” 그 말에 홈스의 얼굴이 환해졌다. “아무에게도 얘기하면 안 돼. 자네와 나만의 비밀이니까.”
“알겠습니다.” 홈스가 말했다. “저기…… 저는 주로 하트브레이크 카페에서 저녁을 먹습니다만……”
“나중에 초창기 엘비스 곡들이 듣고 싶어지면 갈게.”
홈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베이거스 시절 엘비스도 괜찮습니다. 그러니까 제 말씀은…… 뭐 필요하신 게 있으시면 언제든지……”
“날 돕고 싶다면 나로 변장해서 농부 왓슨에게로 가봐.”
홈스는 고개를 저었다. “온당한 범위 내에서 부탁을 하셔야죠.”
--- p.43
그러던 어느 날, 센트럴 호텔은 화재로 소실되어버렸다. 누구에게도 충격으로 다가올 일은 아니었다. 지역 신문 기자들조차도 대형 화재 사건을 의욕적으로 취재하지 않았다. 물론 경찰은 내심 기뻐했다. 화재 덕분에 부담스러운 급습 계획이 취소되었기 때문이다.
다음 날, 모든 직원과 손님들이 무사히 대피한 것으로 알려졌던 화재 현장에서 시체 한 구가 발견되었다. 신원 확인이 불가능할 정도로 타버린 시체는 숯으로 변한 천장과 지붕보 틈에 끼어 있었다.
화재가 일어나기 전에 이미 숨져 있었던 시체.
거기까지는 리버스도 알고 있는 내용이었다. 에든버러 경찰이라면 모를 수 없는 사건이었다. 하지만 홈스는 왜 자신의 검은 수첩에 감질나게 하는 단서들을 쏟아놓았을까? 적어도 리버스의 눈에는 감질나게 하는 단서들로 보였다. 그는 관련 부분을 다시 훑어보았다.
--- p.61
“안녕, 브라이언.”
“안녕하세요, 경위님.” 홈스는 하이파이로 음악을 듣는 중이었었다. 그가 음악을 끄고 헤드폰을 목으로 내렸다. “팻시 클라인이에요.” 그가 말했다. “집에서 쫓겨난 후로 이것만 듣고 있어요.”
“테이프는 어디서 났지?”
“숙모님이 가져오셨어요, 감사하게도. 제가 뭘 좋아하는지 아시거든요. 깨어나 보니 침대맡에 놓여 있더라고요.”
순간 리버스의 뇌리를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혼수상태에 빠진 환자들에게 음악을 틀어준다는 말을 들었는데. 홈스에겐 팻시 클라인을 틀어준 건가? 어쩐지 빨리 깨지 않더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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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총경 사무실로 불쑥 들어갔다. 예고도 없이 나타난 리버스를 보고 왓슨이 흠칫 놀랐다.
“존,” 왓슨이 앉으라고 손짓하며 말했다. “자넨 왜 항상 곤란한 상황에 빠지는 건가?”
“주문을 외워대서 그런 것 같습니다, 총경님.” 리버스가 말했다.
“그게 무슨 주문인데?”
리버스는 어떻게 그것을 모를 수가 있느냐는 듯 깜짝 놀라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아브라카다브라.”
“존,” 왓슨이 말했다. “자넨 오늘부터 정직이야.”
“감사합니다, 총경님.” 리버스가 말했다.
--- p.304
“주신 자도 여호와시오,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번스가 말했다. “다리는 왜 그렇게 되셨습니까?”
“내향성발톱(발톱이 주변의 살로 파고 들어가 염증과 통증을 일으키는 질환)이야.” 리버스가 말했다. “주신 자는 여호와이신데, 취하신 건 병원이었어.”
--- p.3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