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용 트럭이라고 해서 군용 도로로 안 보이게 다닐 수는 없는 법. 불가피하게 고속도로와 기타 국도를 이용해서 달리게 되었는데 뒷자리에 앉은 사병 몇 놈이서 지나가는 길가에 우리 나라 아가씨들이 보이기만 하면 해괴한 소리를 지르며 손을 흔들고 웃고 난리를 부리는 것이었다. 이거 아주 남의 나라 와서 온갖 행패를 다 하는구나 싶어서 속이 부글부글하던 찰라에 그 놈들이 ?삐리리?라는 음란한 표현이 한국말로는 뭐냐고 물어보는 것이었다. 안 그래도 속이 뒤집어져 있던 필자의 고참 냉큼 ?나 바보? 라고 답을 해주었다. 결국 부대까지 오는 내내 그 놈들은 지나가는 아가씨들한테 ?나 바보?, ?나 바보? 하며 낄낄낄 웃어댔고, 그 꼴을 보면서 고참과 필자 역시 통쾌하게 웃어댔다. 그래도 열심히 온 천하에 자기들이 바보인 걸 인정하는 걸 보면 영 바보들은 아닌 듯싶어서 대견하게 봐주기로 했다. 기특한 놈들. --- p. 14
필자는 개인적으로 칠면조를 못 먹는다. 일단 조류는 싫어할 뿐더러, 언젠가 냄새나는 칠면조를 먹은 이후, 그 다음부터 칠면조는 쳐다보지도 않는다. 미국의 명절 중 추수 감사절(Thanks giving day) 때에는 그대들도 아시다시피, 칠면조 고기를 먹는다. 부대에서 추수 감사절 파티를 하고, 점심 식사 때 칠면조 고기를 먹는데 도무지 입을 댈 수도 없었다. 그러던 필자의 모습을 본 미군 하나가 대뜸 물었다.
?야! 오, 왜 안 먹어??
?칠면조 못 먹어, 왜냐하면….?
이라고 말하려는 순간, 그 넘이
?야 여기봐라! 오가 칠면조를 못 먹는데~~!?
라고 외쳐 일순간에 놀림감이 된 적이 있다. 물론, 분해서 나중에 한식당에 데려가 그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육개장과, 김치로 복수를 했지만….
늘 어디를 가든 항시 지극히 합리적인 인간임을 강조하는 미국인들은 자신들에게 이질적이어서 거부감을 주는 문화가 있다고 하면 앞뒤 생각 없이 ?미국식 잣대?로 과감히 평가한 후 미개 문화로 치부하는 만행을 저지르곤 한다. 물론, 그들도 ?문화 상대주의?에 입각하여 상대방의 방식을 존중하려고는 하지만, 그들의 근본에 자리잡고 있는 ?자문화 제일주의?와 미국의 방식이 최선이라는?독선과 오만?은 그들이 내뱉는 대화에서 그리고 그들의 문화에서 종종 확인할 수 있다. --- p. 19
미군 부대 내에서는 같이 자고 같이 밥을 벅는 생활이 매일같이 이루어지므로 이들 미국인의 인종별 생활 패턴을 관찰하기에 참으로 좋은 곳이다. 우선 백인과 흑인은 아침에는 서로 웃으며 인사하고 농담도 주고 받고 하지만 차라니 혼자 앉아서 먹을지언정, 또는 모르는 같은 인종의 테이블에 합석을 하지언정, 백인은 백인 집단에, 흑인은 흑인 집단에 소속되어 서로 섞이지 않는다. 심지어 어울려서 왁자지껄 이야기할 때조차 유심히 살펴보면 이들은 알게 모르게 물과 기름처럼 덩어리져서 갈라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P44
이발소를 이용하다보면 두 가지 색다른 풍경을 경험할 수 있다. 이발소 아저씨, 아줌마들은 카투사한테는 마치 적체된 물건들 처리하듯(물론! 다 그렇지는 않다) 대충대충 깎고 퉁명스럽게 ?거기 쿠폰 놓고 가세요?라고 하는 반면, 미군에게는 작품 만들듯 엄청난 공을 들여가며 끝에는 마사지까지 해주는 그 모습들….
물론 처음에는 이상해 보였지만 ?돈 안 내고 깎는 것도 어딘데?라는 얄팍한 심정으로 그 풍경엔 큰 의미 부여를 하지 않았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Main post 이발소에는 사람이 득실득실했다. 5~6사람인가 기다려 내 차례가 되었고, 나를 담당하는 아주머니 ?어떻게 깎으시겠어요?란 말도 없이 서슬 퍼런 가위를 들이대는 것이었다. 대꾸하기도 귀찮고 ?군인이 무슨 스타일 따지긴…?이란 생각도 들어 가만 있는데, 자리에 않기 무섭게 불과 2분여 만에 다 끝났다는 것이었다. 본인 그때 한 달 동안 머리를 안 깎았고 그 동안 십수 년 머리를 깎은 경험으로 미루어볼 때 도저히 2분 만에 해결될 수준은 아니었다. 더군다나 거울을 보니까 군데 군데 머리가 삐져나오고 잔털 제거도 안 되어 있었다. 이게 무슨 장난도 아니냐 싶어
?아줌마, 다시 깎아 주세요.?
라고 말했더니 다 깎았다는 말씀뿐이었다. 내가 구체적 증거를 제시하며 다시 깎아야 할 필요성을 제기했더니, 아주머니 왈
?이거 사람 바쁜데 군인 아저씨 되게 귀찮게 하네.?
두둥~ 성깔 보통 아니기로 소문난 본인 즉각 반응했다.
?아줌마, 나 돈 낼 테니까 다시 깎아주세요.?
분위기 순간 썰렁해졌다.
?아니… 뭐 그럴 것까지야….?
얼버무리시는 아주머니
?아니오. 돈 낼 테니까 다시 깎아주시고 마사지도 해주세요.?
그때 본인 쿠폰도 내고 5달러 60센트도 내고 내키지 않는 마사지도 받고 막사로 돌아왔다. 나보다 어른인 아줌마에게 대들었다는(?) 찜찜함도 있었지만 만약 미군이 그 아줌마에게 불만을 제기했다면 그런 식으로 말할 수 있었겠는가? ?물론 아니다?란 생각에 더욱 우울해졌다. 그 후론 다시 그 이발소는 안 갔지만 그 이후로도 비슷한 대접을 받고 비통해하는 동료들의 이야기는 끊임없이 들려왔다. --- p. 104
'선은 악을 이긴다‘
이와 같은 이미지는 영화에서 유기적으로 작동하면서 미군의 긍정적인 모습을 만들어간다. 보기에도 똑똑하고 절도 있게 보이는 선남선녀 주인공들을 보며, 우리는 미 군대의 엘리트적 모습을 떠올리게 되고, 때로 그들의 휴머니스트적 면모를 보면, 이들에 대한 딱딱한 이미지는 사라지고 친숙함마저 느껴진다. 마지막에는 ‘주인공이 항상 승리’라는 모습을 보며, 우리는 ‘정의’를 보게 되고 미군은 곧 정의로 인식한다. 이렇듯 소재를 달리하는 군대 영화들이지만, 공통적으로 미 군대를 긍정적 이미지로 묘사한다. 그렇다면 왜 국방성이나 헐리우드는 군대의 이미지 개선을 위해 아낌 없는 투자를 하는 것일까?
오늘날의 미군은 ‘미국의 군대’만은 아니다. 한국, 일본, 독일, 중동 등 거의 전세계에 배치되어 있기 때문에 유일의 ‘평화 유지군’이라 할 만하다. 미군이 전세계 무력 분쟁과 평화를 위해 개입하지 않는 곳이 없으니, 분쟁 당사국은 ‘내정 간섭’이라며 반발이 심하다. 그뿐 아니라, 미군들이 세계 각지에 주둔하면서 저지르는 범죄로 인해, 주둔국의 미군에 대한 정서 또한 염려되는 현실에서 미국은 문화적 차원에서 ‘우회적 방법’을 선택한다. “이미지는 모든 것을 삼킨다”라고 한 스튜어드 유웬의 지적에 충실하기라도 하듯, 미국은 미 군대의 이미지를 과잉 포장하여 영화라는 매개체로 전달하고 있다. 헐리우드 블로버스터 영화의 전세계적 영향력을 미 국방성은 간파하고 있는 것이다. --- p.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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