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7년 독일 남부 뷔르템베르크의 칼프에서 태어나 목사인 아버지와 신학계 집안의 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1890년 신학교 시험 준비를 위해 괴핑엔의 라틴어 학교에 다니며, 뷔르템베르크 국가시험에 합격했다. 1892년 마울브론 수도원 학교를 입학했으나 기숙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시인이 되기 위해 도망쳐 나왔다. 1899년 낭만주의 문학에 심취한 헤세의 첫 시집 《낭만적인 노래》와 산문집 《자정 이후의 한 시간》이 출간됐다. 특히 첫 시집 《낭만적인 노래》는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인정을 받았으며, 문단에서도 헤세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1904년 장편 소설 《페터 카멘친트》를 통해 유명세를 떨치게 되었으며 문학적 지위가 확고해졌다. 같은 해 아홉 살 연상의 피아니스트 마리아 베르누이와 결혼했으나, 1923년 이혼하고 스위스 국적을 획득했다. 1906년 헤세의 자전적 소설 《수레바퀴 아래서》를 출간했다. 1919년 자기 인식 과정을 고찰한 작품 《데미안》과 《동화》, 《차라투스트라의 귀환》을 출간했다. 인도 여행을 통한 체험은 1922년 출간된 《싯다르타》에 투영되었다. 1943년 《유리알 유희》를 발표하였으며, 1946년 노벨문학상과 괴테상을 동시에 수상했다. 1962년 8월 9일 세상을 떠날 때까지 자기실현을 위해 한시도 쉬지 않고 꾸준히 노력했다. 뇌출혈로 사망한 후 아본디오 묘지에 안치되었다.
그녀는 아무런 대답도 없이 고운 손으로 내 두 손을 잡았다. 그 손의 따스함이 장갑을 통해서 내 온몸으로 전해져왔다. 나는 그녀와 함께 나아갔다. 이상야릇한 꿈을 꾸는 듯한 기분이었다. 행복, 부끄러움, 따스함, 쾌감, 당혹스러움 때문에 나는 거의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한 15분쯤 우리는 함께 달렸다. 그러고 나서 잠시 쉬게 되자, 그녀는 내 손을 잡고 있던 작은 손을 천천히 놓으며 “고마워”라는 말을 남기고는 서서히 멀어져갔다. ---「빙판 위에서」중에서
그가 잠들 수 없었던 그날 밤, 그는 이러한 결론을 얻었다. 전에 일어났던 일들을 반복한다는 것은 부질없는 짓이다. 나는 앞으로도 많은 여자를 사랑할 수 있을 것이고, 몇 년간 나의 눈과 손은 밝고 부드러울 것이며, 뭇 여성은 나의 키스를 아주 사랑할 것이다. 그러고는 또 이별을 하겠지. ---「저녁에 시인은 무엇을 보았는가」중에서
이 세상에는 사랑에 대한 믿음이 거의 없고 여기저기에서 사랑이 불신과 마주치기 때문에 사랑의 길은 이토록 가기가 힘들다. 이 세상은 부정(不正)이란 병을 앓고 있다. 또한 사랑과 인도주의와 형제 의식의 결핍으로 훨씬 더 병들어 있다. 무기를 지니고 몇천 명씩 같이 행진을 함으로써 고취되는 형제 의식은 군사적 형식이건 혁명적이건 간에 나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다.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중에서
여러분은 혹시 사랑에 빠져본 적이 있습니까? 물론 있겠지요. 그러나 여러분은 사랑이 무엇인지를 여전히 모르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요, 여러분이 그것을 모를 수도 있다는 말을 내가 하고 있는 겁니다. 여러분은 언젠가 밤새도록 눈물을 흘려본 적이 있습니까? 그리고 한 달 내내 잠 못 이룬 적도 있습니까? 시를 짓거나 잠시나마 비통한 마음으로 자살을 생각해본 적이 있습니까? 예, 나는 이미 예전에 이러한 일들을 경험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사랑은 아닙니다. 사랑은 이것들과는 다른 무엇입니다. ---「이것을 이해하나요」중에서
우리 각자는 매일의 개인적인 체념에서 오래된 경험을 한다. 어떤 관계도, 우정도, 느낌도 우리에게 진실하게 남아 있는 것은 없다. 확실하지 않다는 그 느낌에 우리는 우리 자신의 피를 바치지 않았고 사랑과 공생, 제물과 싸움도 제공하지 않았다. 각자는 서로 사랑하기가 얼마나 쉬우며, 또 진정으로 사랑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아름다운지를 체험한다. 사랑은 다른 모든 일상의 가치처럼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사들일 수 있는 기쁨은 있지만 살 수 있는 사랑은 없다. ---「사랑」중에서
예전에는 사랑하는 것보다 사랑받는 것이 특별한 즐거움이라고 믿었다. 나는 이제 아무 반응이 없는, 혼자서만 가슴 졸이는 사랑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경험했다. 그렇지만 나는 낯선 여인이 나를 사랑하고 남편으로 맞기를 원하는 것에 대해 조금도 자부심을 갖지 않는다. 행운은 소망 이외의 것을 충만케 하는 데 전혀 관계가 없으며, 사랑에 빠진 청년들이 비록 고통스럽다 할지라도 그들의 괴로움에는 어떠한 비극도 없다는 것을 나는 차차 이해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