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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수

철수

[ 2003. 9. 25 개정판 발행 ] 작가정신 소설,향-005이동
리뷰 총점7.3 리뷰 7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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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03년 09월 25일
쪽수, 무게, 크기 124쪽 | 264g | 크기확인중
ISBN13 9788972882107
ISBN10 8972882100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저자 소개 (1명)

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지금 내 입술과 손바닥을 가만히 만져보면 묘하게 차갑고 싸늘하며 나 자신에게도 느껴지는 한없는 거리감이 있다. 언제인가 나는 이런 말을 들었다.

'너는 너무 차가와 절망감에 몸이 떨릴 지경이다. 너의 입술은 처음부터 끝까지 달아오르지 않고 너의 몸은 미끈거리는 얼음 같다. 너는 이 세상에 태어나 한 번도 감동을 느낀적이 없는 늑대소녀의 눈동자를 갖고 있다. 너의 심장에 귀를 가까이 가져가보면 텅 빈 허공에 바람소리만이 들린다.'

불이 온통 꺼진 빈집은 빗물이 새고 있다. 주방과 현관에서 벽을 타고 빗물이 폭포처럼 흘러내리고 있다. 날 태워봐. 기름을 바르고 내 몸에 불 붙여봐. 마녀처럼 날 화형시켜봐. 쓰레기 봉지로 날 포장해서 소각로 속으로 집어던져봐. 나는 다이옥신이 되어 너의 폐 속으로 들어간다.
--- p.41
이것이 1988년에 일어난 일의 전부이다. 1988년은 나에게 시작이면 끝이었다. 내 인생을 통틀어 특별히 불행하지도 않았고 특별히 더 행복하지도 않았던 한 해였다. 그것은 1978년과 특별히 다르지 않았으며 1998년과 비교해볼 때 더 인상적이거나 덜 인상적이지도 않았다. 1988년에 일어났던 일들은 1978년에도 일어났으며 1998년에도 일어났을 것이다. 1988년에 만났던 사람들은 1978년에 지하철에서 내 어깨를 밀치며 지나갔었고 1998년의 밤의 주유소 거리에서 무감동한 눈길로 마주친 그들과 다르지 않았다. 그들은 가족이었고 낯선 중산층이었으며 영양실조에 걸린 군인들이었다. 서로가 서로에게 변소였고 타인이었고 벼랑이고 까마귀이고 감옥이었다. 그들은 영원히 그들에 지나지 않았다. 제 3의 불특정한 인칭들.
--- p.85-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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