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한 살의 봄은 암울했다. 마귀할멈으로 통하는 외국인 교수의 글쓰기 수업은 영문학도 지망생이라면 누구도 피해 갈 수 없는 필수 과목이었고, 다른 단과대학까지 소문이 파다할 만큼 악명 높은 전설의 난코스였다. 수업을 통과한 상위 30퍼센트만 영문학 전공 승인을 받을 수 있었기에 학생들 눈에서는 불이 뿜어져 나왔다. 나 또한 밤새 불을 내뿜으며 에세이를 작성했지만, 매번 돌아오는 것이라곤 빨간색 코멘트로 난도질 당한 글과 그 옆에 날려 쓴 C뿐이었다. 수업을 따라가기는커녕 그날 내주는 숙제조차 알아듣기 버거웠다. 전사자의 몰골로 돌아온 과제를 수정하느라 또 밤을 새고, 외국서 살다온 친구에게 사정해서 첨삭까지 받은 후에도 여전히 날려 쓴 C를 받는 날이면 절망의 다크서클이 청춘을 시들게 했다. --- p.16
여행 준비의 압권은 뭐니뭐니 해도 세계 일주 항공권을 발권하기까지의 과정이었다. 세계 일주 항공권이라니. 여행사 직원들은 그런 건 듣도 보도 못했다는 반응이었고, 항공사 직원들조차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세계 일주 항공권은 정해진 항공 요금으로 아무리 먼 거리도 마음껏 이동할 수 있도록 전 세계 여러 항공사들이 제휴를 맺은 프로그램인데, 무엇보다 치명적인 매력은 그 가격이다. 대륙 간 이동을 포함해 총 20회의 비행이 가능한 4대륙권 항공권 비용이 370만 원 정도였는데, 우리나라에서 남미의 한 국가만 가려고 해도 200만 원이 넘게 들었던 것을 생각하면 얼마나 파격적인 가격인지 알 수 있다. --- p.61
이집트에 가기 전, 이집트에 다녀왔다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그곳은 국가적인 사기 집단이라고, 누구든 그 사기 행각을 피해 갈 수는 없다고 경고했다. 저마다 당한 사기 행각을 침 튀기며 늘어놓았고, 그중 최고는 피라미드에서의 낙타 사기라고 했다. 처음에는 한번 타보라고 막 권하는데, 일단 타고 난 뒤에는 돈을 내지 않으면 내려주질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애초에 금액을 정하고 낙타 투어를 시작했어도, 나중에 내릴 때가 되면 몇 배로 뻥튀기가 된다고 했다. 이집트인들은 그걸 ‘박시시Baksheesh’라고 부른다고 했다. 나는 낙타 사기 이야기를 수도 없이 들으며, 피라미드에 가더라도 절대 낙타만은 타지 않으리라 굳게 다짐했다. --- p.180
어디 오래된 친구들뿐인가. 호주 미션 비치에서 외롭지 않게 함께 있어준 스위스 친구들, 뉴질랜드의 악몽을 신나는 모험으로 바꿔준 로저, 마추픽추에서 내게 산소호흡기를 씌워준 여행자, 아르헨티나에서 돈을 다 잃었을 때 서슴없이 돈을 부쳐주었던 사람들, 장기 여행에 지쳐 있던 마음을 치유해 준 팔레스타인 사람들… 어려움에 처할 때마다 아무 대가 없이 충심으로 도와주었던 그 셀 수 없는 낯선 친구들이 아니었다면, 내 여행은 진작 끝이 났을 것이다. 처음에는 도움을 준 사람에게 되갚을 수 없는 여행자의 처지에 마음이 무거웠는데, 차츰 또 다른 누군가에게 마음의 빚을 갚아 나가는 즐거움을 알게 되었다. 나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을 만났을 때 기꺼이 수고하는 마음, 대가를 요구하지 않고 남을 돕는 마음을 나는 여행을 통해 비로소 배우기 시작했던 것 같다. --- p.229~230
‘이런 사람들은 처음 봤어.’ 나는 그들을 보며 생각했다. 어쩜 이 많은 사람들이 하나같이 유쾌하고 에너지가 넘치는지. 낯선 이에게 이토록 스스럼없이 애정과 호의로 다가오는 사람들은 정말 처음이었다. 보고타뿐만이 아니었다. 카르타헤나에서도, 메데진에서도, 마니살레스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어떤 여자 여행자가 말했었다. “콜롬비아는 심지어 여자들까지 친절한 나라”라고. 그들은 정말로 남녀를 막론하고 나를 혼자 두는 법이 없었다. 옷가게에 들어가면 점원들이 장사는 뒷전이고 한 시간 동안 내 옆에 붙어 한국인과 일본인의 차이에 대해 논쟁을 벌이고, 길을 물었더니 아예 하루 종일 나와 동행을 해주었다. 식당에서 소심하게 웨이터를 부르면 걱정도 말라는 듯 주위 사람들이 대신 소리쳐주고, 내가 먹은 밥값을 옆 테이블에서 내주거나 생각지도 않은 맥주 한 병이 배달되기도 했다. --- p.342
여행은 자칫, 깨고 나면 허탈한 한여름 밤의 꿈이 될 수 있다. 보통 현실을 피하기 위해 떠난 여행은 돌아와서 더욱 힘들어진다고 하지만 철모르고 덤빈 무용(武勇)의 대가이든, 너무 진하게 배어버린 여행의 흔적이든 여행은 후유증을 남기기 마련이다. 사랑이 지나간 자리에도 길게 흔적이 베이는데, 삶을 던져 떠난 모험에 흔적이 남지 않는 게 도리어 이상하지 않은가. 여행이 주는 자유로움을 몰랐을 때보다 오히려 더 힘들고 치열한 싸움이 될 수도 있다.
--- p.362~3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