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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문명이 잃어버린 생각하는 손

[ 양장 ] 호모 파베르 프로젝트-01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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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0년 07월 30일
쪽수, 무게, 크기 496쪽 | 1037g | 153*224*30mm
ISBN13 9788950925574
ISBN10 8950925575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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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신자유주의와 인간성의 파괴(The Corrosion of Character)』(원작 1998년, 한국어판 2002년),『뉴 캐피털리즘(The Culture of the New Capitalism)』(원작 2006년, 한국어판 2009년) 등 다수의 저작에서 꾸준하게 삶의 가치와 일의 의미를 추적해온 리처드 세넷은 그간의 저서 중 가장 공을 들인 이 책『장인』에서 인간사회 모든 활동 중에서 물과도 같은 근본 재료인 인간의 노동과 일을 들여다본다. 일 자체를 위해서 일을 훌륭히 해내려는 욕망을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로 파악하는 세넷은 인간이 일하는 모습을 조명하고자 광활한 시공으로 독자를 안내한다. 상고시대의 그리스 도공, 로마제국의 이름 없는 벽돌공, 거대한 성당을 지어 올렸던 중세 석공, 르네상스 예술가를 비롯해 근대의 노동자, 리눅스 프로그래머, 건축가, 의사 등 현대의 전문 직종에 이르기까지 일하는 인간의 모습이 그의 시선을 통해 드러난다. 그것은 일하는 모든 인간 안에서 ‘살고 있지만’ 잘못된 제도와 어긋난 이데올로기로 고통받는 장인, 바로 우리가 잊고 사는 우리의 모습이다. 우리에게 잊힌 그를 불러내는 세넷의 대화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p.6

장인(匠人)이라고 하면 곧바로 그 이미지가 떠오른다. 창문 너머로 목수의 작업장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나이 든 사람이 보이고 그 주위로 견습하는 도제들과 작업도구들이 보인다. 질서정연한 실내에는 의자 부품들이 죔쇠로 나란히 고정되어 있고 나무 깎는 생생한 냄새가 코를 찌른다. 목수는 작업대에 몸을 기울여 상감(象嵌) 세공에 쓸 정밀한 칼집을 내고 있다. 지금 이 작업장은 길 아래쪽 가구 공장으로부터 위협을 받고 있다.
그리 멀지 않은 곳의 어느 실험실에서도 장인의 모습을 구경할 수 있다. 이곳의 젊은 실험실 조교는 탁자 옆에서 눈썹을 치켜뜬 채 무언가에 골몰하고 있다. 탁자 위에는 죽은 토끼 여섯 마리가 절개된 복부를 드러내고 누워 있다. 그녀가 양미간을 찌푸린 이유는 토끼들에게 주사를 놓은 뒤로 뭔가가 잘못됐기 때문이다. 그녀는 지금 실험 절차를 잘못 수행했는지, 아니면 실험 절차 자체가 잘못된 것인지 알아내려고 고민 중이다. (중략) 장인은 무언가에 확고하게 몰입하는 특수한 ‘인간의 조건’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이 책의 목표 중 하나는 실제적인 일에 임하여 몰입하면서도, 일을 수단으로만 보지 않는 인간의 모습을 설명하는 것이다.---pp.43-44

작업장(workshop)은 장인이 생활하는 집이다. 말 그대로 작업장의 전통은 그랬다. 중세 장인들은 그들이 일하는 곳에서 먹고 자고 아이들을 길렀다. 여러 가족이 함께 사는 집이기도 했던 작업장은 규모가 작아서 한 곳당 기껏해야 열댓 명 정도가 기거했다. 근대 이후의 공장은 수백 명에서 수천 명이 일하는 공간이지만, 중세의 작업장은 이런 모습과는 전혀 달랐다. 그러니 19세기에 난생처음으로 산업화 광경을 목격한 사회주의자들의 눈에 일터이자 집이었던 작업장이 낭만적으로 비쳤던 것도 이해할 만한 일이다. 카를 마르크스와 샤를 푸리에(Charles Fourier), 클로드 생시몽(Claude Saint?Simon)은 모두 작업장을 인간의 정감이 흐르는 노동공간으로 바라봤다. 그들은 또 이 공간에서 인간이 머물 훌륭한 집을 봤던 것 같다. 서로 얼굴을 맞대고 사는 사람들이 일과 생활을 함께 영위하는 공간으로 보였을 법하다.---p.95

1850년대 중엽에 러스킨은 런던 레드라이언 광장 곁의 한 집에 노동자대학(Working Men’s College)을 세우는 일에 힘을 보탰다. 그의 친구 폴린 트리벨리언(Pauline Trevelyan)에게 보낸 편지에서 러스킨은 자신의 학생들을 이렇게 묘사했다. “한 번에 약 200명 정도씩 돌아가며 짤막한 강의를 할 생각이네. 내 강의를 들을 사람들은 실내 장식가와 글쓰기 교사, 가구 장식가들이 될 테고 석공, 벽돌공, 유리 제작공, 도공 등이 되겠지.” 이 강의를 통해 일반형에 씌워놓은 겉치레 가면을 벗겨내서 기계적 생산의 본질인 획일성을 학생들에게 일깨우는 게 그가 의도했던 목표 중 하나였다.“ 인쇄업을 확 뒤집어놓고 싶네. 이 시대의 커다란 해악이 그것과 화약일세. 혐오스러운 인쇄술이 모든 해악의 근원이라는 생각이 드네. 이것이 모든 면에서 획일적인 생활을 받아들이도록 사람들을 길들이고 있단 말일세.”러스킨은 장인들의 오감을 일깨우기 위해 새로운 공간을 만들고자 했다. 옛날처럼 정말로 개성을 담은 몇 안 되는 물건을 진중하게 구상하고, “하루 종일 누구라도 그 안에 들어가 보면 언제나 좋은 것밖에 볼 게 없는 공간”이 그가 바라던 것이었다. 그는 학생들이 중세 후기의 그림이나 조각은 물론, 18세기의 유리와 같은 수제품에서 불규칙성이 주는 깊은 맛을 즐길 줄 알기를 원했다.---pp.185-186

흙으로 물건을 만들어온 오랜 역사는 물질을 각하는 의식이 어떻게 유발되는지 그 세 가지 방식을 보여준다. 즉 물건에 변화를 주고, 물건에 표시를 남기며, 물건을 우리 자신처럼 생각하는 행위다. 이 세 가지 행위에는 각각 나름의 구조가 자리 잡고 있다. 첫째로, 변형은 일반형의 발전과 형태의 결합, 영역이동을 통해서 일어난다. 둘째로, 물건에 표시를 남기는 행위는 정치적 행위이기는 하지만 특별한 의도가 있는 게 아니라 자신이 발 디딘 세계에 객관적인 자기 존재를 표출하는 훨씬 원초적인 차원의 행위다. 셋째로, 물건에 인간의 의미를 이입하는 의인화에서는 비유의 위력과 상징을 만드는 기법을 볼 수 있다. 흙을 빚어 만든 물건의 역사를 보면, 이와 같이 요약하는 게 무색하리만큼 이 세 가지 중 어느 것도 그리 단순하지 않았다. 흙을 생업으로 삼았던 이들은 아주 느리지만 일과 세월의 변화에 대응했다. 기술변화에 대응했고, 작업자의 존재감을 짓밟는 정치적 억압에 대응했으며, 물건에 투영되는 인간 속성들의 충돌에 대응했다. 흙이란 재료를 단순히 음식을 해먹거나 집을 짓는 데 필요한 물건으로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공리주의적인 생각에 빠져 있다면, 흙이라는 이 원초적 물질에서 생겨난 문화의 대부분을 우리 머릿속에서 지워버리게 될 것이다.---pp.235-236

촉감은 지능적인 손에 대한 여러 가지 문제를 던져준다. 철학에서도 그렇지만, 의학의 역사에서도 촉감이 눈과는 다른 종류의 감각 정보를 뇌에 전달하는지를 둘러싸고 오랫동안 논쟁이 뒤따랐다. 촉감은 날카롭고 급속하게 번지는‘무제한적인’정보를 실어 나르는 반면, 눈은 일정한 틀에 갇힌 이미지만을 전달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벌겋게 달아오른 난로에 손을 대면, 돌발적인 트라우마처럼 온몸이 자지러진다. 하지만 아무리 끔찍한 광경을 보더라도 두 눈을 감기만 하면 충격은 순간적으로 완화된다.
(중략) 직업상 손을 많이 쓰는 사람들에게 생기는 굳은살은 국부적 촉감의 아주 특수한 사례로 들 수 있다. 원리적으로 보자면 굳은살이 박여서 피부가 두꺼워지면 감각은 당연히 둔화될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 정반대의 일이 나타난다. 굳은살은 손에 퍼져 있는 신경 말단을 보호함으로써 탐색 행위의 머뭇거림을 줄여준다. 이런 일이 나타나는 생리학적 근거는 충분히 밝혀지지 않았다. 하지만 나타난 결과로만 보면, 굳은살은 미세한 물리적 공간을 파악하는 손의 감각을 예민하게 하고 손가락 끝의 감각을 더욱 자극한다. 굳은살이 손에 하는 역할이 볼록렌즈가 카메라에 하는 역할과 같다고 상상해볼 수 있겠다.---pp.248-249

이 장에서는 골치 아픈 문제 하나를 간략히 살펴본다. 디드로는 그가 탐방했던 인쇄공이나 식자공(植字工)들이 생업으로 하는 일인데도, 다른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있게 설명하지 못한다는 걸 알게 됐다. 나 역시 손과 눈이 어떻게 조화를 이루는지 말로 명료하게 옮기는 것이 불가능함을 느낀다. 언어는 물리적인 동작을 묘사할 때 곤욕을 치른다. 그중에서도 무슨 일을 하라고 일러주는 말처럼 알아듣기 어려운 말도 없다. 구매자가 직접 조립해야 하는 책장을 샀다고 치면, 글로 써놓은 설명서를 보고 따라 해야 하지만 잘 되지 않는다. 짜증은 점점 치솟고, 이렇게 하라고 가르쳐주는 그 말과 그렇게 움직이려고 하는 우리 몸을 가르는 거대한 괴리를 실감하게 된다.---p.289

한 정신분석 학파에서 완벽주의의 동태를 좀 더 자세히 탐색했다. 정신분석학자 오토 컨버그(Otto Kernberg)는 스스로 다그치는 행동이 다른 사람들의 판단으로부터 자신을 가리는 방패로 쓰인다고 본다. 쉽게 말해 “나를 가장 혹독하게 비판할 사람은 나이니, 당신이 판단할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다. 컨버그 학파의 정신분석학자들은 이러한 방패 뒤에는 “도무지 성에 차는 게 없다”는 확신이 자리 잡고 있다고 주장한다. 삶은 공연이 펼쳐지는 무대요, 나는 무대 앞에 앉은 비평가인 셈이다. 지켜봐도 썩 눈에 차는 게 없다. 나는 나 홀로 나를 평가하는 전문가다. 정신분석학자들은 이러한 현상에 대해 자기애(나르시시즘narcissism)의 범주로 묶어서 보는데, 컨버그는 ‘경계선적 성격 장애(borderline personality disorder)’로 본다. 그러니까 완벽주의자가 품질을 평가하는 잣대는 신경증과 정신병증의 경계선에 걸쳐 있다는 이야기다. (중략)
앞에서 살펴본 내용들은 일정한 형태의 강박관념에서 나타나는 부정적 측면이다. 하지만 장인의 강박관념은 정신분석의 틀이나 베버의 틀에는 잘 맞지 않는다. 단적으로 실기작업의 일상적인 행동은 일하는 사람을 그들 밖으로 끄집어낸다. 완벽주의에는 격심한 내적 동요가 따르지만, 몸에 익은 실기작업에서 생기는 꾸준한 리듬은 오히려 스트레스를 줄여준다. 철학자 아드리아노 틸거가『백과전서』의 삽화들을 보면서 장인의‘부지런한 평정심’이 배어난다고 했던 것은 바로 이런 의미를 전달하고 있다. 더욱이 구체적인 물건과 작업 절차에 집중하는 장인의 정신 상태는‘할 수만 있다면’하고 되뇌는 자기애에 빠진 사람의 탄식?는 아주 대조적이다.---pp.403-405

굽은 발로 절룩거릴지라도 그 자신이 아니라 자기 일을 자랑스러워하는 헤파이스토스. 우리 자신에게서 발견할 수 있는 가장 존엄한 인간의 모습이 바로 그일 것이다.
---p.4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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