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동아시아 삼국의 근대 언론매체에 관한 사전이다. 19세기 중반부터 1945년까지 한국과 중국, 일본에서 발행된 신문과 잡지를 대상으로 하여 각 매체별로 서지 정보를 수록했다. 그에 더하여 발행 취지와 경위, 지면 구성의 특성, 주요 기사와 논설에 대한 해설, 매체와 관련된 이념적 ? 사회적 문제들에 관한 정보를 실었다.
언론매체는 사회 구성원들에게 정기적으로 사건과 사실에 관한 정보를 전달하고 그에 관한 분석과 해설을 제공한다. 그를 통하여 사회 구성원들의 의사소통을 매개하고 여론과 정체성 형성에 영향력을 미친다. 근대 동아시아 세계에서도 그랬다. 서세동점의 역사적 조건 속에 놓인 동아시아 여러 나라에서는 19세기 중반 이후 수많은 신문 ? 잡지 매체가 등장했다. 이 매체들은 각국의 국민국가 건설과 근대화 과정 속에서 각이한 민족적, 국민적, 계급적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에 커다란 역할을 담당했다.
그래서 인문학과 사회과학의 여러 학문 분야 연구자들은 일찍부터 언론매체에 주목해 왔다. 그 속에는 동아시아 각 나라의 근대적 자의식 형성 궤적을 추적할 수 있는 풍부한 텍스트 자료가 담겨 있는 까닭이다. 오늘날에는 그 의의가 더욱 증대하고 있다. 지식정보 전산화가 눈부시게 진전됨에 따라 연구자들이 언론매체 원문 자료에 더욱 손쉽게 접근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한국은 물론이고 일본과 중국에서 온라인을 통해 언론매체 원문정보를 제공하는 도서관들이 해마다 늘어나고 있다.
이 사전을 편찬한 취지는 바로 여기에 있다. 언론매체 자료에 대한 접근 가능성이 확장되면 될수록, 자료의 미궁 속에서 제 갈 길을 찾아갈 수 있는 유용한 안내도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 사전은 한국학과 동아시아학 분야의 연구자와 학생들에게 언론매체 자료에 대한 신뢰할 만한 안내도를 제공할 목적으로 편찬되었다.
이 사전에 등재된 매체가 동아시아 세 나라에서 근대 시기에 발간된 모든 신문과 잡지를 망라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힘이 닿는 대로 가능한 한 많은 매체를 싣고자 노력했다. 하지만 모든 매체를 빠짐없이 수록하는 것은 우리의 역량을 벗어나는 일일 뿐만 아니라 애초에 목표로 삼았던 바도 아니다. 우리는 각 나라의 사회적 공론 형성 과정에서 주목할 만한 의의가 있는 것은 빠트리지 않으려고 애썼다. 전국적 영향력을 가진 매체는 모두 망라하고자 했고, 영향력 범위가 협소한 매체라 하더라도 발간 시기가 짧지 않다면 수록하기를 망설이지 않았다.
표제어에 오른 언론매체의 숫자는 1823여 종이다. 이것을 종류별로 나눠보면 신문이 약 35%, 잡지가 약 65%에 달한다. 나라별로는 한국의 매체가 약 40%, 중국 매체가 약 30%, 일본 매체가 약 30%에 이른다. 시기별로 나눠보면 창간연도를 확인할 수 있는 매체 가운데 1910년 이전에 창간된 것이 25.5%, 1910년 이후에 창간된 매체가 전체의 74.5%로서 다수를 점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사전은 역사학, 문학, 언론학, 지역학을 전공하는 30여 명의 연구자들이 다년간 지혜와 노력을 기울여서 만든 책이다. 공동연구진이 결성된 것은 2005년 성균관대학교 동아시아학술원 내에서였다. 공동연구 참가자들은 한국연구재단의 기초학문육성 프로젝트의 지원을 받아 이후 3년간 이 사전의 기획, 집필, 편집 등의 업무를 나눠 맡았다.
이 사전은 언론매체 자료의 활용 가능성을 확장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과 동아시아의 역사와 문화 연구에 유용하기 쓰이기를 바란다. 특히 한국의 연구자들이 일국적 울타리에 갇히지 않은 채 동아시아적 지평 위에서 자국인의 근대적 를 바란다.을 고찰할 수 있도록 도움이 되기를 기대한다. 중국과 일본의 연구자들에게도 동일한 효과를 제공할 수 있다면, 망외의 다행이겠다.
---발간사 중에서
한국ㆍ중국ㆍ일본의 최초의 언론매체
동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출간된 근대 언론매체는 무엇인가? 이 사전은 이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해 준다. 학계의 연구성과에 따르면 동아시아에서 최초로 간행된 언론매체는 1815년 영국 선교사들이 말레이시아 말라카에서 발행한 ??찰세속매월통기전(察世俗每月統記傳)??이다. 이 매체는 중국어로 간행되었는데, 기독교 교리를 중국 사회에 전파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잡지였다. 이 잡지는 중국인들에게 서양 근대과학 지식을 소개하는 데에도 역점을 두었다. 중국인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중국 역사상 최초로 표점을 사용했고, 지명과 인명을 사용할 때에는 따옴표를 사용했다. 이는 신식 표점부호 제정의 기원이 됐다.
일본에서 간행된 최초의 언론매체는 ??재팬 헤럴드 (The Japan Herald)??이다. 개항장인 요코하마에서 영국인 저널리스트가 발행한 주간 영자신문으로, 개항장에 거주하는 외국인을 주된 독자층으로 삼았기 때문에, 무역, 통상, 요코하마 항국의 출입항 선박 등에 관한 정보가 게재되었다. 한편 일본어로 발간된 최초의 언론매체는 1871년에 요코하마에서 간행된 ??요코하마마이니치신문(橫浜每日新聞)??이다. 가나가와현에서 자금을 댄 이 신문은 지방정부의 시책을 주민에게 전달하는 기관지였다.
한국 최초의 언론매체는 1883년에 간행된 ??한성순보??이다. 김옥균을 비롯한 개화파가 발간을 주도했으며, 근대적 형태를 갖춘 최초의 신문이다. 월 3회 발행됐으며 원래는 국한문 혼용체를 사용하고자 했으나, 활자여건상 순한문으로 표기하였다. 한성순보의 영향을 받아서 이후에 다수의 민간신문이 속출하게 됐다.
3국을 비교해보면 한국의 근대 언론매체가 가장 더디게 발간됐음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한성순보??는 조선시대에 수백 년간 발간되던 ??조보(朝報)??의 전통과 잇닿아 있음에 유의해야 한다. 전통시대에 오랫동안 언론매체의 역할을 해 오던 ??조보??의 내재적 발전의 연장선상에서 근대 언론매체가 출현한 점에서 이채로운 특성을 갖는다고 볼 수 있다.
한국 ? 중국 ? 일본을 넘나드는 시대정신, ??신사회??
동아시아 3국에서는 같은 시기에 시대정신의 공유가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한국, 일본, 중국에서 1910~20년에 발간된 ??신사회??가 그 좋은 예이다. 서세동점의 거대한 조류에 임하여 동아시아 각 민족은 새로운 사회의 도래에 대한 강렬한 열망을 공유했다. 일본에서는 1915년에 ??신사회??라는 명칭의 평론잡지가 저명한 사회주의자 사카이 도시히코(堺利彦)의 손으로 발간되었고, 중국에서는 같은 명칭의 잡지가 1919년에 베이징기독청년회에 의해 발간되었다. 한국에서는 1926년에 동일한 제호의 잡지가 서울에서 발간됐다. 이 잡지는 민족 간의 적대심을 극복한 새로운 이상사회의 도래를 갈구하는 사회문제 종합지였다. 비록 발간주체는 사회주의자, 기독교도 등으로 나뉘지만 그들 내부에는 이상사회를 전망하는 공통 요소가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