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발견된 소설가의 애호가들은 『열정』과 『유언』 두 소설 을 읽은 후 『하늘과 땅』을 통해서 산도르 마라이의 새로운 면을 접한다.
독자는 감정적이고 장황한 독백, 은유와 연상으로 가득 찬 대화를 통해서 등장 인물들의 긴장된 관계를 체험한 후, 여기에서 잠언식으로 간결하게 응축되고 농축된 문장에 놀란다. 긴 줄거리와 이야기 대신 서너 줄 아니면 열 줄의 세심하게 가다듬은 단상들과 마주한다. 『하늘과 땅』은 예리한 관찰, 감명 깊은 인상에 대한 성찰, 위대한 정신의 판단과 고백을 가득 담고 있으며, 시인의 뛰어난 언어 기교에 힘입어 주옥같은 문장들을 엮어낸다.
이 책은 무엇에 관한 것인가?
하늘이나 땅에 관한 것이 아니라, 저자가 『하늘과 땅』 사이에서 만나고 뜻밖에 마주치고 보고 인식한 것, 작가에게 충격을 주고 두려움을 불러일으키고 작가를 놀라게 하고 즐겁게 하고 기쁘게 하거나 분노하게 한 것이 문제된다. 작가는 이 모든 것을 세심하게 고르고 선택하여 금세공사처럼 갈고 다듬는다.
마라이의 날카로운 시선은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 특히 글을 쓰는 사람, 평범한 시민, 정신과 예술에 위대한 업적을 남긴 사람들을 깊이 파고든다. 마라이는 또한 여인들도 진지하게 관찰한다. 대부분 아름답지만 교만하고 현명하지만, 남자는 아닌 여자들. 마라이는 삶과 죽음, 사랑과 정열, 문학과 문학인, 우연히 자신의 귀와 눈에 이른 세상사 크고 작은 모든 것을 여기에 글로 붙잡아 둔다. 그 가운데는 세계사와 문학사의 진실로 극적인 사건들뿐 아니라 종종 당혹스러울 정도로 사소한 이야기들도 있으며, 이것들은 전부 마라이의 손길 아래서 문학으로 승화한다.
독자는 책의 다양한 주제에 심취하고, 아주 단순한 사물이나 평범한 사건을 문학의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작가의 능숙함에 매료당한다. 이 이름다운 글들과 시나 다름없는 자연 영상들은 지성과 감정을 똑같이 감동시킨다. 마라이는 여기에서 깊은 인식과 독특한 신념을 언어를 통해 형상화시킬 뿐 아니라 감동적인 추억과 느낌들 또한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그래서 이따금 반어적일 때도 있지만 대부분 자명하고 명백하게 표현하는 단상들에서 마라이 문학의 중심 사상을 읽을 수 있다. 작가는 다른 어느 책에서도 이처럼 자신에 대하여 많은 이야기를 한 적이 없으며, 인간과 예술가로서 자신의 솔직한 모습을 분명하게 보여 준 적이 없다.
『하늘과 땅』은 1942년 처음 출간되었다. 언론에 글을 발표하고 신간을 출간할 때마다 늘 그랬듯이, 당시 저명한 문인이었던 마라이는 이 책에 의해서도 독자들에게서 뿐 아니라 시대 정신을 대표하는 비평에 의해서도 인정받았다. 뛰어난 문인의 작품은 사회적인 경향, 사회 분위기를 따르지 않아도 무시할 수 없는 법이다. 그러므로 저자의 명예를 드높이는, 이 책에 대한 당시의 여론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언어 예술가’, ‘말의 마법사’, ‘번득이는 정신’, ‘오인의 여지없는 필력’이라는 언론의 칭송과 더불어, 국가의 존립이 문제되는 위급한 시기에 분명한 입장을 표명하지 않고서 절실한 시사 문제'를 외면하는 것은 국민에게 죄를 짓는 행위라는 흘려들을 수 없는 나무람의 말도 들린다.
『하늘과 땅』이 출판되던 시기 1942년과 마라이가 이 책의 대부분을 집필했을 1941년을 떠올려 보자. 1938년 이후 헝가리는 서쪽에서 히틀러 제국과 경계하고 있었으며, 1941년에는 소련 연방과의 전쟁에 휩쓸려 들었다. 같은 해 영국이 헝가리에게 전쟁을 선포한 뒤를 이어, 헝가리는 미국에 선전포고를 한다. 헝가리 의회는 세 번째 유대인 개정법을 승인한다. 이 법안은 무엇보다도 기독교인과 유대인과의 결혼을 금지하였다. (마라이의 부인이 유대인이었다). 제대로 무장을 갖추지 못한 헝가리 군은 러시아 군과 정면 충돌한 결과, 1942년과 1943년 사이 겨울에 완전히 섬멸 당했다. 전사자 사만 명에, 칠 만 명이 포로로 붙잡혔다.
아니, 이러한 사건들이 마라이에게 무관할 리 없었다. 마라이에게는 틀림없이 다른 의도가 있었으며, 시대적인 사건을 외면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이러한 압박감과 당혹감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출구를 일에서 찾았으며, 이러한 마라이의 심정은 『하늘과 땅』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나는 다른 나라로 여행할 수 있는 입국 허가증도 돈도 없다. 내가 속하는 시민 계층은 본래의 모습을 잃어 간다. 그것은 스스로 구현하는 것, 시민을 더 이상 품어 줄 수도 지켜 줄 수도 없다. 어디로 도피할 것인가?
나는 이 무언의 유폐, 흰 종이의 치외 법권, 내가 하는 일에서 도피처를 찾는다. 그것이 아니면 어디로 도피할 수 있겠는가...."
마라이가 이 암울한 시대에 차츰 일상적인 사건을 멀리하고 창작 활동에 전념한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입장을 명확하게 표명했다. (그렇지 않다면 “방패를 높이 들고” “깃발을 휘두르는” 당시 사람들이 어떻게 그의 말에 귀를 기울였겠는가). 마라이는 언제나 자신의 방식대로 몇 계단 높이 서 있었다. 일종의 연단에 올라서서 사람과 사건, 상황을 판단하고 스스로의 인식과 진실을 널리 알렸다.
그러나 이 책의 2부 ‘시론’에 실린 글보다 정신적인 궁핍과 박해, 전쟁에 대한 더 솔직한 고백, 더 설득력 있는 의견 표명이 과연 있을 수 있을까.
"내게는 글을 쓰는 것 말고 시대와 세상에 저항할 수 있는 다른 무기와 힘이 없다. 여기저기서 나라들이 강제로 찢기우고 합병된다. 시대 정신의 금자탑을 쌓는다는 명분으로 몇 세대에 걸쳐 전쟁을 강요하고, 협정을 욕보이고,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다리를 폭파한다...그런데도 무엇 때문에 나는 참고 있는가? 무엇이 내 목숨을 부지해 주는가? 무엇을 믿는가? 냉정하고 순수한 정신, 화해를 모르는 무자비하고 진실한 정신, 이 정신을 누구도 훼손할 수 없고, 부인하면 반드시 벌을 받고, 속이는 사람은 결코 성공을 거두지 못한다. 이 정신은 그런 모든 일에 의연하다. 이러한 정신이 영원히 존속하리라는 믿음은 이 세상 무엇보다도 강하다. 나는 오로지 그것만을 믿고, 그것만이 내 목숨을 부지시켜 준다. 그래서 나는 삶을 끝장 내지 않는 것이다. 맹세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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