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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나는 말

하늘을 나는 말

엔시 씨와 나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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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7년 05월 22일
쪽수, 무게, 크기 424쪽 | 464g | 128*188*25mm
ISBN13 9791160071443
ISBN10 116007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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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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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 : 정경진
상명대학교 일문과를 졸업했다. 완벽한 번역은 없다지만 마음만은 늘 완벽을 바라며 번역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오노 후유미의 『영선 가루카야 기담집』을 비롯하여 『늘 그대를 사랑했습니다』 『막이 오른다』 『절망노트』 『방랑탐정과 일곱 개의 살인』 『안구기담』 『나의 계량스푼』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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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고교 시절에는 맹장 수술을 했을 때 빼고는 지각, 결석, 조퇴는 물론이고 청소 한 번 땡땡이친 적 없던 내가 지금은 완전히 지각 상습범이 되었다. 도시가 여자를 타락시켰다.
하지만 조증 상태가 갑작스럽게 찾아오는 날도 있는 법이다. 이날은 새벽 세 시까지 책을 읽은 것치고는 비교적 일찍 눈이 떠졌다. 참고로 내 취미는 문학부 학생답게 헌책방 순례다. 전날 데려온 책은 1929년 판 신초샤(新潮社) 세계문학전집. 프랑수아 코페의 『사자의 발톱』을 읽고 스스로 대견한 마음이 들었다.
--- p.13

책장의 책이 전부 종이로 커버가 씌워져 있었다. 책등에는 멋스러운 필치로 제목을 적어놓았는데 그게 끝이 아니었다. 책상에 올려둔 책 몇 권을 흘끔 봤더니 표지 뒷면에도 글이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문장 맨 앞 ‘p. 몇’은 당연히 쪽수일 것이다. 아마도 책 안에 줄을 긋는 대신에 커버 뒷면에 따로 메모해두는 것 같았다.
그런 식으로 중요한 부분을 적어두면 나중에 하나의 일람표가 돼서 편리하다. 하지만 그것은 부차적인 것이고, 교수님은 책 자체를 더럽히는 것이 싫은 것이 아닐까. 그 마음은 나도 충분히 이해한다.
--- p.25

“짐작입니다만, 라쿠고 좋아하지요?”
이 또한 대단한 비약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네.”
라쿠고도 가부키(음악과 무용이 어우러진 일본 전통 연극)도 초등학생 때부터 좋아했다. 대학생이 되어서는 정기승차권이 생겨서 우에노에 들르는 날이 많아졌다(우에노에 ‘스즈모토’라는 유명한 라쿠고 연예장이 있다).
“사실 아까 문을 열었을 때, 여학생을 한 명 구해야 하는데 하고 생각하던 참이었습니다. 그런데 문 앞에 여학생이 있더란 말이죠. 느낌이 왔습니다.”
점점 더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혹시 슌오테 엔시라는 라쿠고가(落語家)를 압니까?”
--- p.33

여름 열흘간 숙부 집에 가는 것은 참 즐거운 일이었지만, 딱 하나 싫은 것이 있었습니다. 그 집에만 가면 악몽을 꾸는 겁니다.
그런 이야기를 하면 겁쟁이라고 할까 봐서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꿈은, 가만히 앉아서 나를 보고 있는 남자 꿈이었지요. 지금도 그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스오(무사의 예복)에 에보시(무사가 쓰던 두건의 일종), 묵직하지만 둔하지 않은 느낌이었어요. 그리고 눈빛은 아주 날카로웠습니다. 어둠 속에서 그 눈동자가 원한인지 모멸인지 모를 빛을 한량없이 내뿜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어린 나를 경악하게 만든 건, 그 배였습니다. 남자는, 할복을 하고 있었던 겁니다. 무겁게 가라앉은 어둠 속에서도 붉은 선혈만은 선명하게 떠올랐고, 가른 배는 끔찍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어린 마음에도 참으로 이상한 꿈이구나, 하고 생각했지요.
--- p.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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