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국에서의 삶은 치열하지만 외롭다. 고백하자면, 거기에 하나님이 늘 함께 계셨다. 숲 속 길을 홀로 걸으며 묵상하노라면, 주시는 말씀이 마음에 와서 닿곤 했다. 인생을 통해서 주신 은혜가 컸는데, 갚을 길이 없어서 늘 빚진 마음이었다. 결국은 마음에 켜켜이 쌓아 놓기만 했던 말씀을 펼쳐 놓는 것이 조금이라도 감사를 표현하는 길이 아닐까 싶었다.
페이스북에 한두 개씩 올리던 글을 몇 분이 읽고 책을 내자고 했다. 그저 혼자서만 느끼던 말씀의 편린들을 모아서 사람들 앞에 내어 놓는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다. 함께 이 길을 걷는 친구들이 용기를 주어서 마음을 열 수 있었다고 감히 고백한다.
이 책에 얹은 글들은 한 마디로 정의하기는 힘든 성격을 가지고 있다. 스무 살 시절부터 해오던 묵상이 글의 기본적인 틀이다. 다른 글들과 조금 차이가 있다면, 그 묵상을 히브리어 성경 위에 올려놓았다는 점일 게다. 혹시라도 번역성경이 가질 수 있는 본문의 한계를 약간이라도 뛰어 넘을 수 있다면, 속뜻을 보다 정확하게 알 수 있으리란 생각 때문에 히브리어 원문이 필요했다. 그 위에다 주석적인 정보를 가공해서 집어넣었다. 설교자들의 입장에서 보자면, 복잡한 주장을 한쪽 방향으로만 펼쳐놓은 주석은 별로 유용하지 않다. 만일 누군가 일차적으로 이런 지식을 추려서 전달할 수 있다면 목회자들의 강단이 보다 풍성해질 수도 있겠다 싶었다. 굳이 말하자면, 이 책은 히브리어 본문에 기초한 묵상과 주석적 지식들이 함께 뭉뚱그려진 창세기 해설집이다. 읽으시는 분들이 설교자라면, 마음껏 퍼다가 사용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혹은 평신도 가운데서도 본문의 깊이 있는 의미를 찾기 원하시는 분들이 있다면, 함께 내용을 들여다 볼 수 있을 것이다.
한 가지 더 말할 것이 있다. 묵상의 방향은 다분히 일반적인 통념을 벗어나 있다. 본문을 조금 비틀어서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려고 애썼다. 지금까지 해오던 많은 이야기를 확대해서 그냥 글로 옮기는 작업은 무의미하다고 생각했다. 결국 설교는 본문으로 돌아가야 하며, 각 사람의 깊은 읽기를 통해서 그 속의 뜻을 파헤치는데서 출발해야 한다는 열망이 이 책 안에 담겨있다.
어렵고 힘든 시절을 보낼 때에, 하나님이 내 속에 글들을 담으셨다. 이것을 펼쳐 놓게 되었으니, 무엇보다 하나님의 은혜에 깊이 감사한다. (프롤로그 중에서)
하나님이 흙덩어리에 불어넣으신 생기는 히브리어로 ‘느샤맛 하임’이다. ‘하임’은 생명이라는 뜻이고, ‘느샤마’(하임과 연결하기 위해서 연계형으로 바꾸면 ‘느샤맛’이 된다)는 여러 가지 설명에도 불구하고 ‘호흡’이라는 뜻으로 이해하는 것이 가장 분명하다. 말하자면 하나님은 흙덩어리가 숨을 쉴 수 있도록, 자신의 호흡을 거기에 집어 넣으셨다. 이런 호흡의 전이가 일어나자, 흙덩어리가 숨을 쉬면서 살아있는 존재, 즉 진정한 생령이 되었다.
이러한 창조가 내게도 일어났다. 이 창조는 과거에 멈춘 일이 아니다. 오늘 이 시간에도 진행형이다. 하나님이 나를 살리셨다면, 현재의 삶에서 내가 살아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사건을 경험해야 한다. 나는 언제 어떻게 하나님의 능력에 부딪힌바 되었는가? 인생 가운데 그런 체험이 있는가? 하나님이 내 삶 안에 들어오시기 전에 나는 어떤 존재였는가? 그리고 하나님이 내 삶에 역사하신 후에 나는 어떻게 변해 있는가?
아담에게 하나님의 호흡이 들어가자 그만 하나님의 숨이 인간의 숨이 되었다. 대단한 일이 일어난 것이다. 나는 지금도 코로 호흡하면서 살고 있다. 나의 숨은 누구의 것인가? 나의 호흡 전체가 하나님의 숨과 다름이 없다. 하나님이 인공호흡을 하셔서 삶의 숨통을 열어주셨기 때문에(“생기를 코에 불어넣으셨다”/창 2:7), 내가 목숨을 유지하고 살아 있을 수 있다. 나의 날숨과 들숨이 하나님의 것이라니, 이것 참 영광이다.
--- p.46-47
하나님의 생기가 흙에게 임하자, 그 흙이 살아있는 존재가 되었다. 무엇이든지 하나님이 건드리시면, 근본적인 성격이 바뀐다. 죽음이 생명으로, 무생물이 생물로, 생각 없음이 생각 있음으로, 좌절이 소망으로, 슬픔이 환희로 바뀐다.
--- p.45-46
인생은 기본적으로 하나님이 움직이셔야 앞으로 나가는 방주다. 물론 방향 또한 그러하다. 이것을 깨달을 때 비로소 홍수는 끝이 나고, 인생은 아라랏 산에 도착할 수 있다. 내가 지금 방주 속에 들어있음을 알고, 바깥에서 나를 움직이시는 분을 인식할 때 비로소 인생이 달라진다.
--- p.70
하나님은 때로는 꽃길 전문가이시다. 꽃길을 걷고 싶은 자,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의 계획을 의지할지어다.
--- p.374